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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미지 드로잉 예술작품을 감상하겠습니다......이 예술작품은 드로잉아트 예술감독 김진규씨의 작품입니다. 이 분은 2005년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드로잉(drawing)이란 프랑스어 데생(dessin)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주로 채색 없이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표현기법이라고 합니다.
김진규예술 감독은 드로잉아트로 이른바 잘나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의 눈앞에 거대한 검은 손들이 나타나면서 자신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라고 했는데 자신은 공황장애만은 아닌 어떤 신비한 영적인 힘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을 깨달았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커다란 검은 손 네 개가 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누님이 있는데 집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집에서 쫓아내 전도사와 결혼해 사모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집안이 핍박 했고 자신도 조카들을 만나면 “예수는 없다. 사람들이 속고 사는 것이다. 네 엄마와 아빠가 말하는 예수는 뻥이다. 그러니 교회 나가지 마라.”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님을 핍박한 동생을 위해 8년간 기도일지를 쓰며 동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김진규 감독은 검은 손이 나타날 때마다 자신을 괴롭게 하여 숨이 막혀 죽음까지 경험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병원에 실려 가면서 자신의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서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의사들이 자신을 살리려고 모습도 보였는데 영혼이 땅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깜깜한 어둠을 보면서 공포에 질렸다고 합니다.
그 후 전도사인 매형과 함께 오산리 기도원으로 가는데 자동차 뒷좌석에서 여전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 있는데 차창밖에 갑자기 자신의 눈에 보이던 창밖의 풍경이 사라지고 오직 자동차도로만 보이는데 강렬한 빛을 나타내더니 예수님의 모습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더니자신의 눈에 보인 예수님은 너무나 밝고 환한 빛 속에 나타났는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검은 손과 자신의 목덜미를 강하게 붙들고 있던 흑암의 세력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병마에서 놓여 자유 함을 얻고 기도원에 도착해서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러오기를 “내가 너에게 준 재주로 나를 증거 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후 김진규 예술감독은 성령님의 역사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드로잉아트로 국 내외 각 교회에서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는말하기를 ...“주님께서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무리 애쓴다고 하더라도 그 수고는 헛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연약한 우리를 성령님께서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롬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순간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한 주간 앞두고 붙잡은 말씀이 있습니다. 행1:4-5인데 우리예수님 승천하시면 제자들과 작별하게 되는데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에 주님은 저들의 빈자리가 너무 클 것을 아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 저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는데 구름이 저들을 가리워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에겐 함께 계셨던 예수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말씀대로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지막 만찬을 베푸셨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약속한 것을 기다리기 위해 다 모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은 페스바이 넘어가는 날 애굽 에서 해방되는 날 축제입니다. 그리고 50일째 오순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예수님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교회력대로 우리가 4월17일 부활절을 지키고 오늘 오순절 50일째 되는 날 예수님 말씀대로 “몇 날이 못 되어”~~~~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감사 절기입니다....... 먹고 마시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감사 절기입니다. 하나님! 금년에도 곡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첫 곡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찬송합니다.........그래서 오순절 날은 금식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고행하는 절기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히브리사람들은 성령님이라든가, 사람의 영이라든가,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 ‘루아크’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어로 ‘루아크’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는 안보이지만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나무가 흔들릴 때 동풍인지 남풍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예수님 성령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실 때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 때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사람도 그러하니라.......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마가요한 다락방에서 오순절을 지키며 모인 120명의 무리들이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며 사모하는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임한 바람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 라는 뜻은 수직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즉 하늘로부터 내린 강한 바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현상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문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개인적인 생생한 체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간증한 적도 있습니다. 청년시절 삶의 방황기 때였습니다. 그 때는 교회 마당만 밟던 시절 믿음이 없을 때 제가 어느 날 새벽잠을 깼는데 비몽사몽간에 일어나더니 마치 강한 바람에 밀려 그냥 집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 없이 어디론가 그냥 뒤에서 누가 미는대로 가는 거예요 얼마쯤 갔을까요? 그래서 가는 곳이 2층 개척교회로 올라가는 겁니다. 교회를 갈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뒤에서 계속 미는거예요 그래서 그냥 2층 교회로 올라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교인들은 아무도 없고 의자 없는 예배당 마루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데 그져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 것입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믿음 없는 제가 어찌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갑니까?....어린아이도 아닌데 왜 혼자 딱딱한 마루 바닥에서 홀로 울고 있습니까? 저에게 임한 위로내리신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고 없이 부른 바람처럼 성령의 역사는 언제 어느 때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때 거부하지 마십시오...... 받아드리십시오...... 사모하십시오
3절....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경 곳곳에는 불로 나타난 하나님 임재하심이 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비추어주며 광야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상에서 우상숭배자를 이긴 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쓰러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마가요한 다락방 좁은 자리에 모인 120명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데 불도 아니고 혀도 아닌 불의 혀 같은 것이 저들의 머리위에 임한 것입니다.
불은 어떻습니까?.......뜨겁습니다.불의 상징인 태양은 뜨거운 불덩어리입니다. 쳐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특히 불쌍한 한 영혼을 생각하면 먼저 마음이 뜨겁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불은 태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쇠붙이도 녹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굳은 마음을 녹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녹입니다..... 고집스런 마음을 녹입니다....... 완고한 생각을 녹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녹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겸손한 마음이 되게 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불이 꺼지면 끝장입니다....... 유럽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지만 술집으로 바뀌어 마귀의 무도회장으로 변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령의 불 길로 원수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고,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는 마귀를 틈타지 못하게 할 수 있도록, 교회에 성령의 불이 다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184장 ♪♪ 불길 같은 주 성령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 주소서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
이제 마가요한다락방에서 모인 120명이 드디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절.....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우리가 자주 사용한 성령충만 120명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성령충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충만이란 마치 유리컵에 물을 가득 채웠을 때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내 중심에 가득 채워지면 세상 어떤 유혹 들이 침범해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왜요!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는 것을 인식하고 동행하며 살아가는데 성령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성도에게 직접 들은 간증입니다. 교회를 나가면서도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끓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맛있는 담배연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음식물을 토하듯 쓴물을 토해내어 더 이상 담배를 피울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 중심은 성령님이 계시기에 먼저 탄식하십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못된 성질 못된 버릇을 고쳐주십니다.
롬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런데 이런 성령 충만함이 제자들에게 나타나면서 저들이 방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자기가 알지 못하던 말로 말을 한 것입니다. 120명 각자가 저마다 다른 말로 말을 했습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 저들이 자기의 난 곳 방언이어서 저마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말로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알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통역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마가 요한 다락방에 임한 성령충만으로 가득 찰 때 그 중심에 누가 가장 리더 역할을 했습니까?....... 베드로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비겁쟁이가 아닙니다. 담대해졌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부활을 유대인들에게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은?..... 40일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던 그 유대인들이 회개한 것입니다. 마음이 찔림을 받았어요 어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수 있습니까? 제가 죽어야했습니다. 이런 양심의 호소 소리가 드린 것입니다.
행2:37........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마음에 찔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때 주님 품으로 돌아온 자들이 3000명.... 5000명이 회개했습니다.
오래전 영국의 유명한 한 목사님이 교회의 한 모임에서 “성령충만”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은혜가운데 회중에게 임하여 하나님께서 목사님 설교로 통해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목사님 목회실로 들어왔는데 슬픈 얼굴을 한 청년이 뒤따라 들어오더니 “목사님! 성령 충만한 것이 제게는 하등 소용이 없으니 어떡하면 좋죠?”
청년은 구석에 놓인 휴지통을 가리키며 “저는 휴지 바구니처럼 구멍투성이입니다. 저는 성령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곧 빠져나가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청년이여, 저 바구니가 바다에 던져진다면 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네 ” 구멍이 있건 없건, 틈이 많건 적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으로 채움 받을 수 있다고 청년에게 위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은 우리가 성령 충만으로 채워지면 신바람 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으로 채워지는 기름 부으심이 우리 주향성도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