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고후 12:7-10절
제 목 :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의미하는 것
일 시 : 2024. 3. 17.
고후12:7-10/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삶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12제자들과 초대교회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삼대사역중에 하나가 병을 고치시는 것인데 바울의 가시가 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순들을 거부감 없이 너무나 쉽게 받아드립니다.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삼대사역(가르치고,선포하시고,치유하신,마4:23)에 근거해서 치유사역을 행하고 가르칠 때마다 사람들은 꼭 바울의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병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었지만 치유를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누구 간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에 의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병이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고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후12: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가 아니라 사탄이 보낸 사자라고 말씀합니다. 사자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천사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눅1:13,고후11:4,갈4:14절에서 말입니다. 따라서 이 사자는 바울을 괴롭히도록 마귀가 보낸 마귀의 사자요, 어둠의 천사였습니다.
1. 따라서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분수에 넘치지 않게(겸손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잘못된 추측을 합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겸손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보내셨다는 말씀을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겸손이 중요하지만,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보면 스스로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벧전5: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겸손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높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즉 스스로 겸손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셔서, 높아지고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고후12:7절에서 교만에 대해 말했다고 추측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바울에게 진정으로 교만과 오만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깨뜨려서 겸손케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원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스스로 겸손하라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굴종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겸손은 안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고후 12:7절을 통해서 보면 자만하지 않게 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자만하다란 스스로를 위로 끌어 올리다, 즉 거만하게 되다, 자고하다 라는 뜻입니다. 자만하지 않기 위하여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다란 그가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크다란 탁월하게, 풍부하게, (훨씬 더)초과하여 우수하게, 측정할 수 없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받은 계시와 성령의 나타남이 은사들은 너무나 탁월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영광을 받았습니다. 즉 죽은 자를 살리고(행20:9-12), 귀신이 쫓겨나며(행16:16-18), 그 외에도 다른 많은 기적들이(행19:11-12)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얹어도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나도 바울처럼 되고 싶어, 나에게도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고 싶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가더라도, 나도 바울처럼 지진이 일어나서 풀려 나고 싶어!(행16:25-33)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선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는, 나도 삶에서 그런 종류의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탄 마귀의 입장에서는 바울의 하는 일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가치를 떨어뜨려서 그가 높아지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후12:7절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바울이 한량없이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도록 사탄이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었던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준 것입니다.
저는 많은 병든 사람들이 저는 사도 바울과 같아요 하나님께서 제게 육체의 가시를 주셔서 제 안에 그 가시가 있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바울에게 육체의 가지가 온 것은 계시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계시로 신약성경절반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울 정도로 풍성한 계시가 없는 사람들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변명의 구실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가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보낸 것입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바울을 때려눕히려고 보낸 마귀의 사자였습니다.
2. 바울이 가진 약함이란 연약함이 아니라 부적절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병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약한 것들이라는 용어가 다음 구절 안에서 두 번이나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후12:9-10/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weakness)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infirmity)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infirmity)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weak)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약함이라는 단어를 어떤 종류의 병을 이야기하는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이 사람은 병(infirmity/허약,병,결점)이 들었어요 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병든 사람을 보내는 장소를 진료소(infirmary)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는 약함이라는 단어가 주로 병과 관련된 의미만으로 쓰이고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던 당시에는 약함이 병에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롬8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롬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라고 했습니다. 두 단어에 주목하겠습니다. 연약함(infirmities)과 마땅히(ought)라는 두 단어 뒤에 나온 세미콜론에 유의하십시오. 우리가 마땅히 무엇을 기도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연약함(infirmities)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시면 연약함이라는 단어가 병만이 아니라 약함이나 부족함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롬8:26절에서 연약함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방식입니다. 때문에 어떤 것을 놓고 어떻게 기도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약함이요 부족함이며 연약함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약함과 질병이 아닙니다.
3.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연약함은 병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후12:9절에서 바울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라고 말한 것이 병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이 말하고 있던 것이 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장과 절이 구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장과 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편지였습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연약함이라는 단어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11: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3절부터 자신이 약한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의하고 설명하며 나열하고 있습니다. 고후11: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라고 했습니다. 23절부터 나열되는 약한 것들의 목록을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의 뒷부분에서 바울이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30,고후12:8)라고 말하면서 약한 것들이 무엇임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고를 넘치게(격무/과로)하는 것을 약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에서 연약함과 스트레스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고후11:23-24/...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고후11:2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쇠몽둥이와 비슷한 것으로 세 번이나 잔인하게 얻어맞았습니다. 이것은 종종 매를 맞는 사람들의 발을 때려서 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한 번 돌로 맞고(고후11:25)라고 했습니다. 돌에 맞은 이 사건은 행14:19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이 돌에 맞은 그 순간 죽었다고 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고후11:25-30/...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4. 따라서 그의 연약함은 핍박자로부터 받는 박해와 고초였습니다.
고후11:23절 이하에 나열된 모든 약함이라는 단어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참아 낸 박해와 고초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몇 구절 뒤에 바울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고후12:9/...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고후12:9절에 나온 약한 것들은 문맥상 바울이 복음을 위해 당한 모든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연약함(약한 것들)이라는 단어는 결코 병과 관련지어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문맥과 상관없이 취해서 사탄의 가시가 질병을 일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롬8:26절에서는 연약함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가지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나 명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사탄이 보낸 사자였다는 사실을 보았는데(고후12:7) 많은 사람들은 이 연약함이라는 용어 때문에 그것이 병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에서 볼 때,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겪었던 박해와 고초를 묘사하기 위해서 여러 다른 방식으로 연약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고후12:1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밝힙니다. 고후12: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고후12:10절이 약한 것들이라는 단어가 육체의 병을 뜻한다고 추측하지만, 같은 구절에 나열된 나머지 네 단어와 고후 11:23-33절의 문맥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고후12:10절에 나열된 나머지 네 가지 단어는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입니다. 네 가지 모두 육체의 병을 말하고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오히려 연약함이란 바울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고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능욕이란 모욕, 명예훼손, 손해, 손상을 말합니다. 궁핍은 복음 때문에 특정한 것이 없이 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박해와 곤고는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네 가지 모두는 이 성경구절(고후11:23-12:10)의 문맥과 일치합니다. 바울이 육체의 병을 뜻하기 위해서 연약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이 구절에서 나열된 나머지 다른 것들과는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주님을 위해 겪었던 고초를 가리키기 위해 연약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5. 가시라는 단어의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또한 고린후서라는 편지를 받았던 고린도교회 가운데 유대인배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초기 작품을 통해 육체의 가시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민33:55/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이 들어가서 거할 땅(가나안)에서 이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이들이 그들을 박해하고 부패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않고 그대로 살게 한다면, 이스라엘자손들은 그들로 인해 오염되고 타락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23:13/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좋다, 모세가 민수기 33:55에서 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말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민수기 33:55절은 사람들을 가리켜 채찍이나 눈의 가시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삿2:3/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육체의 가시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고린도후서를 읽은 당시 독자들은 구약성경 민33:55절,수23:13,삿2:3절에 나오는 비유적인 표현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위의 구약성경 구절 각각에서 말하는 가시는 전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의 육체의 가시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박해를 일으키도록 사탄이 보낸 사자, 곧 마귀적인 인격체요, 어둠의 천사였다는 또 하나의 성경적인 증거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이 육체의 가시를 언급한 것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도인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축복을 받지만, 우리는 멸시를 받고 이 땅의 악으로 여겨집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고전4:9-13/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그가 참고 견뎌냈던 고초와 박해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 악마같은 사자가 바울이 가는 곧 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바울을 박해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능력과 기적과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승리 가운데 행하였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박해와 파선과 구타와 투옥과 거절과 비난 또한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사탄은 바울에 맞서고자 이 반대세력(사람들/핍박자)을 이용하였습니다. 바울의 삶과 사역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지만, 그를 위해 치러야 할 값(대가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사도 바울처럼 위대한 전도자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많은 사람들이 복음전도사역 앞에서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자 바울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핍박자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바울의 메세지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려고 그렇게 사울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그에 따르는 능력은 좋아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박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바울처럼 그렇게 고난을 받고 싶지는 않아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울 같은 복음전도자가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6. 주님께서 바울에게 네 은혜가 족하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 곧 사람들을 통해 박해를 조장하는 이 악마같은 천사(핍박자와 박해자)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을 통한 박해(핍박), 바로 이것이 바울이 가진 육체의 가시의 정체입니다. 바울은 그 가시(사탄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의 핍박과 박해)를 제거해 달라고 예수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고후12:9/...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박해로부터는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생애 후반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서 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딤후3: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당시만 해도(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아직 이 진리(딤후3:12)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주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열심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빌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는 심지어 박해로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그 박해를 멈추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너는 박해로부터는 속량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박해를 다룰 수 있는 나의 은혜를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박해로부터 속량하셨고, 모든 박해를 멈추게 하셨다면,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들이 결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바울 자신이 바로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믿는 자들을 찾아내어 때리고 감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고, 심지어는 스데반을 돌려 쳐 죽이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행7장).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든 박해자를 제거하셨더라면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멈추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다른 뺨을 돌려 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박해자들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지라도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것이 강력한 증거가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질병으로부터는 속량을 받았지만 박해로부터는 속량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10-12/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으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으며, 또한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면 반드시 (사탄의 가시=사자)사람들로부터 박해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질병으로부터는 속량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가시는 질병이 아니라 박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질병이 나에게 침투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쫓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하심으로 시103:3절에서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셨다는 구원의복을 온전하게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고후12:7-10절을 읽고 바울과 같이 경건하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바울이 가진 육체의 가시는 누가 보낸 것이었습니까?
2. 바울이 가진 약함은 질병이 아니라 무엇이었습니까?
3. 바울이 가진 연약함은 질병이 아니라 누구로부터 기인한 무엇입니까?
4. 구약성경이 말씀하는 가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주님께서 바울에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이 주시는 의미는?
6. 마5:10-12절에 따르면 주님께서 박해자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1.사탄
2.롬8: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바를 알지못하나니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리라 이말씀에서 어떤것을 놓고 어떻게 할 지 알지 못하는것이 바로 약함이요 부족함이며 연약함입니다
3.핍박자로부터 받는 박해와 고초입니다
4.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5.너는 박해로부터는 속량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박해를 다룰수있는 나의 은혜를 줄것이다 곧 우리가 계속해서 박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다른빰을 돌려되고 예수님을 따르는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박해자들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지라도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사랑을 나타낼때 그것이 강력한증거가되며 하나님께서는 그증거를 사용하십니다
6.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때 박해는 구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며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전도자의 삶을 살게되면 사람들(사탄의 가시 =사자)로부터 박해가 따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