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게르(Ger)는 본토인이 볼 때 이방인, 낯선 사람, 타지인, 외인이다. 낯선 마을이나 타국에 거주하게 된 거류민(居留民)들입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기야 아담과 하와는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원조가 아니던가요? 구약의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역시 게르 신분이었고, 이집트에 거류하던 이스라엘 자손들 역시 게르 신분이었습니다. 훗날 나오미도 모압 땅에서 게르 신분으로, 그녀의 모압 며느리 룻 역시 베들레헴에서 게르였습니다.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한 유대인들 역시 그 땅의 게르였고, 세월이 한참 흘러 하늘 집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자발적 게르가 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이 땅에서 게르 신분으로 삽니다.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 3:20).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수 최희준(1936~2018)이 부른 대중가요 “하숙생”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넷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이 가요는 인생을 나그넷길에 비유합니다. 어찌 보면 성서적 가르침과 일맥상통하기까지 합니다. 왜? 인생 자체가 게르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흥얼대는 이 가요 “하숙생”은 마치 인생무상을 읊조리는 구약 전도서 메시지의 현대 번역 가요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숙생” 노래를 듣다가 더 오래된 가요 한 곡이 떠오릅니다. 백년설 선생이 부른 “나그네 설움”이란 가요입니다. 1940년에 발표된 노래로 가사는 이렇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부둣가) 고동 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발 벗어 돈 지
십 년 넘어 반평생
… …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 할 지평선에 태양도 없어
새벽 별 찬 서리가 뼈 골에 스미는데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쏘냐
구성진 목소리로 들려오는 애수에 찬 흘러간 노래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LP판 레코드로 대중에게 들려진 때가 언제던가요? 1940년입니다. 일제강점기(1910~1945)입니다. 식민 지배 아래 신음하던 민족의 상황을 나그네의 삶에 비유하여 피압박민족의 설움을 표현한 것 같지 않은가요? 이와 비슷한 상황의 시편이 있습니다.
“나그네 설움”을 묵상(?)하다가 떠오르는 시편 구절입니다. “나그네”로 번역된 히브리어 “게르”가 두 번 등장하는 시편 119편 19절과 54절입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자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갈증(渴症)이 나 불렀던 율법 찬가 119편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그네(게르)로 다시금 확정하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덧없는 세상살이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동안, 우리가 어디에 머무는 곳이든지 거기에서, 당신의 가르침은 우리의 노래가 되었습니다.”라고. 달리 말해 “나그네”는 자신이 이 세상의 거류민으로서,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외국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지침과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19절) 바로 직전 구절에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18절, 27절, 129절)라고. 여기서 “놀라운 일” “기이한 일”이란 문구는 출 3:20과 15:11에서 사용된 용어로 이집트 제국의 압제로부터 구원과 구출 받은 사건을 가리킵니다. 달리 말해 시인은 자신을 구원과 구출이 절실하게 필요한 외인(alien), 이방인, 낯선 자라고 말하면서입니다.
중요한 점은 시인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을 신뢰하면서 집 없이 떠돌며 사는 이스라엘, 방랑하는 이스라엘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동일시는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의 세대들에게 매우 의미가 있었을 것이고, 그 후 여러분과 저에게도 영원히 시의적절한 문구가 되었습니다. 달리 말해 신실한 사람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그들에게 하늘 위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찬송 384장을 불러보세요.
나에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나에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渴)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첫댓글 노래를 통한 묵상도 재미있군요.
하늘의 위로를 구하며 찬송을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