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똥꼬 할아버지
최중한
제주도에 있는 손주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아들이 성장해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둘씩이나 낳을 줄 몰랐다. 하루하루 손주들 크는 모습은 생명의 신비였다. 네발로 기던 손자가 두 발로 섰을 때, 옹알이하다 하부지 ᄄᆞ라해요라고 사랑한다며 입이 떨어졌을 때 전율이 돋았었다. 손자는 세 살이 되더니 하부지라는 호칭을 못생긴 똥꼬 할아버지로 불렀다. 할아버지를 친구처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나이가 찼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영상 속 다섯 살 손녀는 “풍뎅이가 사마귀를 먹네”라고 중얼거리며 유리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병 속의 사마귀는 식량으로 넣어준 풍뎅이와 싸우고 있었다.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가 바뀌었다는 이변을 관찰하는 손녀의 진지한 표정에서 어떤 숭고함을 느꼈다. 손녀는 책에서 배운 대로 사마귀가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체험으로 사물을 체득하려는 다섯 살 손녀의 배움이 커 보였다.
늦가을 어느 날, 손주들과 같이 서귀포 물영아리 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아들 일행과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혼자 늦게 출발했다. 편백나무가 두 줄로 늘어선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확 터진 말 방목장 초지가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메뚜기, 잠자리, 곤충들이 누렇게 변한 목장 초지에서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눈앞에 가을 색으로 위장한 사마귀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접근하자 위험을 느낀 사마귀는 톱니처럼 날카로운 앞발을 번쩍 들고 달려들었다. 장갑 낀 손으로 잡아 상자에 담았다. 손녀가 곤충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듣고 관찰학습용으로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오름 중턱에 이르자 아이들은 전망대에 올라 제주의 넓은 평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녀에게 사마귀를 선물했다. 손녀는 사마귀에게 줄 먹이를 같이 찾자고 했다. 주변을 살피다 풍뎅이 모양의 곤충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사마귀가 이것도 먹을 수 있을까?”. “그렇지 하온이는 요리를 잘하잖아. 맛있게 요리해주면 먹을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 사마귀는 움직이는 것만 먹는대, 요리하면 움직일 수 없어 안돼”. “아하 그래, 할아버지는 몰랐네”. 손녀는 사마귀에 대한 정보를 할아버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손녀와 소통하기 위해 사마귀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수컷보다 월등히 몸집이 큰 사마귀 암컷은 오월에 수백 개의 알을 낳고 십일월경에 생을 마감한다. 암컷은 짝짓기하는 순간 식욕이 발동하는 별종의 미식가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고 암컷의 먹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유난스러운 공처가다. 일찍 부화하여 성체가 된 암컷은, 짝짓기를 시도하기 위해 먼저 접근하는 수컷을 먼저 잡아먹고 짝짓기를 서두르지 않고 식사 후에 시도한다. 늦게 성체가 된 암컷은 서둘러 짝짓기를 끝내고, 이후 접근하는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마귀 암컷은 선택할 수 있는 배우자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며 짝짓기와 식욕의 선후를 조절하는 영악한 곤충이다. 그렇다고 수컷은 암컷에게 언제 성충이 되었냐고 물어볼 처지도 안 되니 사마귀 수컷의 운명도 구차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일부 수컷은 짝짓기 도중 유난스러운 아내의 입덧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는 애처가도 있다고 한다. 부화한 유충은 형제끼리도 잡아먹어 개체 수를 조절한다.
손녀는 코로나 종식 후 큰 할아버지 댁에서 대가족과 설 명절에 처음으로 대면했다. 아들은 딸에게 증조부모님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을 제한했던 시기에 태어난 세 살 손녀는 많은 사람이 한 집에 모인 모습을 처음 보았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손녀를 데리고 조상들이 계신 선산으로 성묘하러 갔다. 삼면이 산으로 막혀있고 제절 앞으로 넓은 들판이 보이는 선산은 눈에 덮여 고요했다. 부모님 묘소 앞에 자리를 펴고 모두 경건하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이 광경을 보던 손녀가 갑자기 큰 소리로, “야, 니네들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외침은 골짜기 적막을 깨트렸다. 노령화로 젊음의 생기가 메마른 집안에, 세 살 손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은 파격적이었다. 어른들은 미소로 쳐다볼 뿐 차례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차례가 끝나자 아들은 손녀에게 아빠의 할머니가 여기 계시고, 아빠의 할아버지는 저기 계신 거라며 출생의 뿌리를 설명했다. 손녀는 손가락으로 산소를 가리키며 그럼 땅속에 있는 것이냐고 묻더니, 빨리 파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 부부는 제주도를 수시로 드나들며 두 손주를 돌보고 있다. 삼월이 되자 학년도 친구도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었다. 사월 초 다섯 살 손녀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울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를 묻자 할아버지와 같이 놀겠다는 것이다. 며느리는 네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다고 떼를 쓰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전으로 돌아갈 것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협박했다. 손녀는 결국 엄마의 결기에 겁을 먹고 등원했으나 다음 날 아들 부부가 출근한 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아들 부부는 출근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낼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며느리에게 어린이집에 손녀의 결석 이유를 통보하라고 전했고 손자만 데리고 등원에 나섰다. 영문을 모르는 손자는 자신의 애물, 공용을 손에 들고 유쾌하게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가려고 신발장 앞에서 누나의 부재를 눈치 채는 순간 강하게 입실을 거부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들 둘은 사익이 침범 받으면 치고받고 싸우지만 공동의 이익에 관해서는 긴밀히 협력하는 의좋은 사이였다. 주로 누나가 계획하고 남동생은 무력도 불사하며 행동으로 밀어붙였다. 이런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둘을 낳기를 정말 잘했다고 아들 부부를 칭찬했다.
하루를 아이들과 지내면서 손녀에게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를 이리저리 물었다. 손녀는 친구들이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피한다고 했다. 진술은 다섯 살 어린아이 치고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했다. 따돌림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히 아내가 병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예후를 빨리 판단하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스트레스로 생리 장애가 온 것 같다며 며칠 더 관찰해보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며 야단치거나 배설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며 아이를 안심시키는 데 주력했다. 아내는 누구나 다 그런 일을 겪는 것이라고 하더니 할아버지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네가 잘못한 게 아니고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외의 소식에 손녀는 정말이냐고 반색하며 할아버지는 몇 살까지 그랬느냐며 물었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백 살까지라고 했다. 아이는 깔깔 웃으면서 그럼 지금도 그런 거네라며 할머니 품에 안겼다. 실제로 나는 현재도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는 발가락이 닮은 모습을 보고 자기 자식임을 알았다고 하더니 손녀가 나의 유전인자를 가졌다는 사실에 연민의 정을 느꼈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사라짐은 후손을 위해 의자를 비워주는 일인가보다. 권태로 활력을 잃은 가족에게 생기를 주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주에게 자리를 비워주신 것이다. 조선의 어떤 실학자는 인생의 많은 즐거움 중, 노년의 농손락을 꼽았다고 했다. 나는 손주들의 순진하고 맑은 감동의 드라마를 계속 즐길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도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 의자를 비워 줄 것이다. <2025. 4.28 제주 아라동 숙소에서>
첫댓글 최중한님의 수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