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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 3월 15일부터 순례
각 지역 생태, 평화, 평등을 위해 싸우는 이들과 만나
지난 3월 1일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은 “민중의 함성은 곧 하늘의 소리”라는 의미를 담아 한반도 평화, 평등, 생태를 위한 40일 순례를 제안했다.
제안에 따라 기후정의, 노동, 인권, 평화 등 뜻을 모은 각 분야 시민사회는 3월 15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에서 “지금 당장 기후정의,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전쟁 연습 말고 평화 연습,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주제로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봄바람” 여정을 시작했다.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틔우며 다른 세상을 향해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위기가 불평등하게 도래할 때 그 불평등을 깨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만이 미래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출발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직면하고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며, “다른 세상, 먼저 온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살며 투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고자 한다. 투쟁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멈추지 말고 만나 보자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순례의 뜻을 밝혔다.
삼척 탈핵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봄바람 순례단. (사진 출처 = 봄바람 길동무)
“민중의 함성은 곧 하늘의 소리”
“저는 가톨릭 사제로 그동안 불평등한 한미소파개정운동, 매향리 폭격장 폐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거짓으로 만들어진 강정 해군기지 반대를 막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 왔습니다. 팔십이 넘은 오늘까지 평화를 갈망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살아 왔지만 차별과 불평등, 개발과 군사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오늘, 참담한 마음으로 다시 길 위에 서게 됩니다.”
문정현 신부는 순례길을 나서며, 한미군사동맹, 10여 개의 신공항 건설로 대표되는 개발주의와 군사주의, 생태계 파괴 등을 특히 우려하며, “개발과 군사주의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터전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평화는 오지 않는다.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며, 뭇생명을 살리고, 불평등과 차별에 반대하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평화는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봄바람 순례단이 만난 사람들>
제주칼호텔 매각반대 투쟁 현장,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구역 지정 촉구 현장,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 울산 아프가니스탄 난민 울산정착관련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 의료공백으로 인한 코로나19 사망자 추모 현장, 월성 핵발전소 지역 주민, 대구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대구 AIG 어드바이저 보험대리점 관리자 부당행위 문제,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과 이슬람 혐오 문제, 밀양 송전탑 현장과 주민들, 불법 사드기지에 저항하는 소성리 주민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 주민들, 군산공항 앞 하제마을 미군공여 반대 싸움, 영광 한빛핵발전소 영구폐쇄를 위한 싸움, 광주 망월동 518묘역, 팽목항과 목포 신항,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평화로운 저항, 세종시 택시 노동자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한 고공농성 현장, 한국전쟁 집단학살지인 대전 골령골, 산업단지에 둘러싸여 오염에 시달리는 충남 예산 농촌마을, 청소년 노동 인권문제, 중증장애인과 자가격리 문제, 청주 LNG 매립가스 발전소 반대 싸움, 변희수 하사 봉안소 그리고 평택 미군부대 현장....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현장이자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대전 골령골. 봄바람 순례단은 이곳에서 관계자와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출처 = 봄바람 길동무)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거쳐 봄바람 순례단은 4월 9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 도착하며 반환점을 돌았다.
평택에는 미군기지 두 곳이 있다.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는 용산과 경기 북부 미군 등이 이전해 외국 주둔 미군 기지로는 최대 규모로 여의도 5.5배 규모다. 또 다른 한 곳은 평택 송탄읍 오산 공군기지다. 평택은 명실상부 아시아 지역 최대 미군기지화가 된 셈이다.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285만 평 농토를 빼앗아 지은 캠프 험프리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육군 부대로, 주민과 시민사회가 거세게 저항했지만 2006년 5월 행정대집행을 끝으로 주민들은 삶의 터전과 농토를 잃었다. 그리고 이 싸움의 가운데 문정현 신부가 있었다.
미군 기지 순례 뒤, 지역 주민,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 간담회에서 문정현 신부는 착찹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지친다”는 말로 드러냈다.
문 신부는 “어느 나라 정부가 제 나라 백성 땅을 빼앗아 주민을 들어내고 미군기지를 만드나. 이게 나라인가”라고 성토하며, 제주 강정, 쌍차, 성주 등에서 만난 주민들은 십여 년 전 대추리 싸움 때와 똑같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4월 9일, 평택역 앞 순례단의 거리 문화제에 함께 한 문정현 신부. 참가자들과 함께 노래를 힘껏 부른다. ⓒ정현진 기자
문 신부는 “지난 12년 제주 강정에서 꼬박 살면서 일어났던 일들도 말로 다 할 수 없다. 각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육지로 나와 봤는데, 가는 곳마다 이 나라 국민들이 외면당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확인했다. 견딜 수가 없다”며, “분노에도 한계가 있지만 분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본도 권력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도와야 한다. 지칠 대로 지쳤을 때 다다르는 마지막 그 힘, 그 때를 기다리며 일단 이 40일을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투쟁이 끝났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라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투쟁은 끝났다고 여겨지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많은 군사기지들이 그렇습니다. 군사기지가 운영될수록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에 더욱 떠날 수 없게 됩니다. 군사기지에 맞선 투쟁은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는 것만큼이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흐름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기의 시대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나요. 전쟁을 부추기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장한 평화가 아니라.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비폭력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담대함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평화바람 ‘딸기’)
평화바람 일원으로 순례에 함께 하고 있는 ‘딸기’ 씨는 비단 평택 미군기지뿐 아니라 군산 신공항 건설, 새만금 신공항 등의 문제들이 너무 지역만의 사안으로 머물러 있다는 고민 끝에 길을 나서게 됐다면서, “한반도 서쪽으로 평택과 군산, 제주를 잇는 군사화. 동쪽으로 원전과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핵문제 등은 꼭 군사시설이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들에게는 전쟁과 같은 생존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코로나로 해고 위협을 겪는 노동자들에게도 삶은 전쟁”이라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군사기지를 막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의 안전,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봄바람 순례단은 이후 강원도 삼척 석탄발전과 핵발전 싸움 현장,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 홍천 양수발전소와 송전탑 싸움 현장, 동해안-신가평 송전탑 반대 운동 주민 만남 등을 거쳐, 4월 17일 수도권으로 들어선다.
이번 순례는 4월 21일부터 의왕, 수원, 서울 성미산 공동체, 서울 문래동 꿀잠 등 서울권을 돌아본 뒤, 4월 3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 문화제로 마무리 된다.
4월 9일, 평택 미군기지 앞을 찾은 순례단. (사진 출처 = 봄바람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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