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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화엄학의 범주와 사상 개요
1. 화엄학의 범주
화엄사상을 담고 있는《화엄경》은 한국불교의 수행과 신앙형태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경이다. 불교의식에도 화엄사상이 무르녹아 있다. 특히 한국선의 이해는 화엄사상의 공부 없이는 완전하지 못할 정도이다. 지금도《화엄경》은 불교전문강원인 승가대학에서 이력과정의 마지막 대교과에서 배우는 과목이다. 아무튼 불교, 특히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화엄경》의 위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아니하리라 본다.
''''화엄사상의 세계''''에서 앞으로 다루게 될 화엄학의 범주는 대강 다섯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화엄사상은《화엄경》의 중심사상이다.《화엄경》에서는 우리 존재를 어떻게 파악하며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도록 교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첫째로《화엄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둘째는《화엄경》을 소의로 하여 체계화한 화엄종의 화엄사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 화엄종을 대성시킨 현수법장(643~712)의 화엄사상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후로 영향을 받고 준 화엄가들의 화엄사상이 있다.
셋째는 한국화엄사상이다. 한국화엄사상은 의상(625~702)과 의상의 뒤를 이은 의상계 화엄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넷째는 화엄교사(華嚴敎史) 부분이다.《화엄경》이 편찬․유통되며 화엄종과 화엄사상이 형성되어간 역사적인 점도 살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화엄에 의하여 수학하고 증득해 가는 수증론(修證論) 부분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이론과 실천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으니 사상 속에 수행과 증득의 면이 함께 들어 있다.
따라서 본 ''''화엄사상의 세계'''' 강의에서는《화엄경》을 개설하고, 화엄교사를 약설하며, 중국과 한국의 화엄사상을 고찰함과 동시에 수증의 방편을 살펴나가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화엄경》과 화엄사상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예정이다.
이에 기존의 연구업적에 의거하여 몇 가지 측면에서 화엄사상의 개요를 먼저 소개해 두고, 앞으로 그러한 화엄사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2. 화엄사상의 개요
1) 경의 사상을 이해하는 방법
경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된 몇 가지 방법을 먼저 보기로 한다. 우선 경전 이해의 전통적인 방법은 경의 제목을 통해서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청량징관(738~839)의《화엄현담》에서는 ''''대방광불화엄경'''' 7자에 각각 10가지씩 의미를 붙여서 총 70가지로《화엄경》의 제목을 설명하고 있다.《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大方廣佛華嚴)''''을 설하는 경이니, 경을 능전(能詮)이라 하고 대방광불화엄을 경에 담긴 내용, 즉 소전(所詮)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화엄경》은 대방광하신 부처님의 세계를 보살의 갖가지 만행화로써 장엄함을 설하고 있는 경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또 경의 내용을 통틀어서 그 대의가 무엇인가 하는 데 주목해 왔다. 조선시대 묵암최눌의〈화엄품목〉에는《화엄경》의 대의를 ''''만법을 통섭해서 일심을 밝힌다〔統萬法明一心〕''''라고 하였다. 그후 전문강원에서 이 대의를 그대로 수용하여 경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사용해 왔다.
화엄종에서는 종지를 세우고 있다. 의상은〈법성게〉에서 법성(法性)으로 화엄세계를 노래하였고, 법장은《탐현기》에서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를 주창하고 있다. 이들 방법을 종합해서《화엄경》의 중심사상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2) 화엄경의 중심사상
(1) 여래출현(如來出現, 如來性起)
《화엄경》의 중심사상으로서는 첫째로 ''''여래출현''''을 들 수 있으니, 여래출현은 다른 번역으로 ''''여래성기''''이다.《화엄경》은 ''''대방광불''''을 설하는 경이다. 대방광이란 부처님의 체․상․용을 표현한 말이다. 범어로는 방광을 Vaipulya(바이풀리야)라 하여 하나의 붙은 말이나, 한역에서는 ''''방''''과 ''''광''''에 각각 따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 원력과 자비, 신통과 위신력 등이 무한히 크고 반듯하고 너르다는 것을 담고 있다.
이처럼 부처님의 자각, 깨달음의 내용을 펴고 있기에《화엄경》을 정각의 개현경(開顯經)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이라기보다 부처님을 설한 경이라 하여《불화엄경(Buddh vata saka)》이라고도 하였다.
경전 성립사적으로 볼 때《화엄경》은 대승보살에 의하여 대승불교운동이 한창 일어나던 시대에 편찬된 초기대승경전이다.《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화엄대경(華嚴大經)은 서력 기원후 3,4세기경 중앙아시아 지방에서 편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화엄경》자체내에서는 경이 설해진 곳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수나무 아래이며, 설해진 시기는 성도하신 직후라고 설하고 있다. 이는《화엄경》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교설한 것임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엄경》의 대방광불은 온 우주 법계에 충만한 변만불(遍滿佛)로서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부처님의 화현 아님이 없다. 개개 존재가 고유한 제 가치를 평등히 다 갖고 있으니, 여래의 지혜인 여래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존재인 것이다. 이를 여래성기(如來性起) 또는 여래출현(如來出現)이라고 한다.
화엄가들은 화엄교주를 융삼세간(融三世間)․십신구족(十身具足)․삼불원융(三佛圓融)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화엄세계는 법신․보신․화신이라 불리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의 삼불이 원융한 비로자나불의 세계이다.《화엄경》에는 처음에 마가다국 붓다가야에서 정각을 이루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하신다. 그런데 이 석가모니부처님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이시며, 비로자나는 노사나로도 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부처님을 삼불원융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한 것이다.
또한 화엄의 비로자나부처님은 세간에 두루해 계시는 변만불(遍滿佛)이다. 화엄가들은 일체 존재를 편의상 불․보살과 같은 깨달은 존재인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과 아직 못 깨달은 존재인 중생세간(衆生世間)과 그들 정보가 의지해 있는 기세간(器世間)의 삼종세간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 삼세간은 역시 각기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여 융삼세간이라 일컫는 것이다.《화엄경》에서는 부처와 보살, 보살과 중생,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아니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체 존재가 비로자나 아님이 없으니, 기세간 역시 여래출현의 모습인 것이다. 이를 융삼세간불이라 한다. 의상은 이를《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 합시일인의 반시(槃詩)로 나타내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일체를 열이라는 숫자로 보이고 있으니 열은 원만수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십불(十佛)로 말씀되고 있다. 이러한 십불이 구족한 무애세계가 대방광불의 세계인 것이다.〈법성게〉에서도 화엄세계를 ''''십불보현대인경''''이라 읊고 있으며, 십불의 모습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화엄세계는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불의 화현 아님이 없다.《화엄경》은 우리 범부 중생이 그대로 부처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의상은 이를 법성성기(法性性起)로서 옛부터 부처〔舊來佛〕라 하였다.《화엄경》은 불세계를 교설한 것이니, 부처님 세계는 옛부터 본래 부처인 중생의 원력에 의해 이땅에 구현됨을 밝혀준 것이다.
(2) 일승보살도(一乘菩薩道)
《화엄경》의 중심사상으로서 둘째는 일승보살도이다. 화엄이란 꽃으로 장엄하는 것이니 보살행이라는 꽃으로 불세계를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는 광명으로만 보이시고 언설을 통해서는 문수(文殊)․보현(普賢)보살을 위시한 보살들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부처님의 세계가 보살행을 통하여 장엄되며 우리 중생에게 펼쳐지고 있다. 보살이 설하고 있는 그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우리 범부 중생이 바로 부처의 삶을 살게 됨을 보이고 있다.
범부와 보살과 부처가 다른 점은 발심에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지만, 그러나 중생과 부처는 또 확연히 다르다. 중생은 자기가 바로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처인 줄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신심과 발심이 필요한 것이다. 신심이란 자기가 부처인 줄을 확실히 믿는 것이며, 이를 정신(淨信)이라고 한다. 이러한 청정한 신심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원력이 깊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신만 성취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되니 곧 발심(發心)하게 되는 것이다. 발심한 중생이 보살이다. 보살이란 보리살타(Boddhi Sattva)의 준말이니 깨달을 중생 또는 깨달은 중생〔覺有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화엄에서는 발심만 하면 바로 정각을 이룬다고 한다. 처음 발심할 때가 바로 정각을 성취하는 때이다〔初發心時便成正覺〕. 그러므로《화엄경》에서 시설하고 있는 발심보살의 보살행은 성불로 향해가는 인행(因行)이라기보다 정각후의 과행(果行)이며 부처행〔佛行〕인 것이다. 인․과가 둘이 아닌 인과교철(因果交徹)의 인행이며 과행이다. 다시 말해서 비로자나부처님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구현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화엄경》에서의 보살행이다.
《화엄경》의 보살계위는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의 42위(四十二位)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보살계위를 52위 또는 53위 및 57위 등으로 설정하는 것과 다르다.《팔십화엄》에서는 신(信)은 십신(十信)의 계위로 나타나지 아니하니, 신은 모든 보살도를 받치고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42계위의 맨 첫단계인 초발심주에서 발심하여 여래가에 태어난 발심보살의 보살행은 하나하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앞단계라기보다 낱낱이 나름대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이타행이며 불국토를 장엄하는 일면인 것이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역참한 53선지식의 낱낱 해탈문도 모두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완전한 해탈문이며, 선재의 구법은 구체적으로 불세계를 구현시켜 나가는 여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사상을 보살사상으로 규정짓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십지행을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보살도를 말함에 있어서〈십지품〉을
〈입법계품〉 못지않게 중시해 왔던 것이다.
(3) 법계연기(法界緣起)
온갖 세계와 중생은 다 비로자나부처님의 현현이며, 보살행으로 불세계가 구현되고 있음을, 화엄교가들은 또한 십현육상(十玄六相)의 사사무애(事事無碍) 법계연기(法界緣起)로 설명하기도 한다. 일체의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相入〕 하나 되어〔相卽〕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화엄종의 대성자인 현수법장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엄종의 종취로서 인과연기 이실법계를 주창하고 있다. 인과연기는 사(事)이고, 이실법계는 이(理)로서 이와 사가 둘이 아니며, 따라서 사와 사가 걸림없는 사사무애의 일진법계(一眞法界)이다. 이 일진법계의 체는 물론 일심(一心)이다.
불교를 불교이게 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말하면 연기의 진리를 든다. 연기에 맞으면 불교이고 연기에 어긋나면 불교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는 연기의 진리를 교설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란 ''''연하여 함께 일어난다''''라는 의미인 프라티티야삼우트파다(prat tyasamutp da)의 역어이다. 모든 존재는 어느 것이나 그럴 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긴 것, 즉 말미암아 생긴 것이니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 此起故彼起 此滅故彼滅〕''''라는 연기의 이법은 모든 존재의 발생과 소멸에 적용할 수 있는 까닭에 보통 연기의 기본공식이라 일컫고 있다.
세존께서는 십이연기〔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의 순관과 역관을 통하여 무명을 멸하고 생사의 모든 괴로움을 탈각하셨다고 한다. 이 연기의 진리는 후에 여러 가지로 그 설명방식이 변천되어 왔다. 업감연기(業感緣起)․뢰야연기(賴耶緣起)․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그리고 법계연기(法界緣起) 등이 그것이다. 화엄의 세계는 법계 전체가 비로자나법신의 현현인 것이니, 여래성연기의 여래출현이기에 법계연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2강 화엄경의 편찬과 유통
1. 인도․서역의 화엄경 편찬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준말이다.《화엄경》의 원 범명은 알 수 없으니 원본인 범본이 Dasabhumika(다사부미카)라고 불리는〈십지품〉과 Gandavyuha(간다뷰하)라고 불리는〈입법계품〉외에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의 제목에 대해서는 현재 크게 세 가지로 재번역되고 있다. 즉 Maha-Vaipulya-Buddha-Ga a-Vy ha S tra(마하 바이풀리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 대방광불화엄경), Buddh vata saka(붓다바탐사카, 불화엄경), Avata saka S tra(아바탐사카 수트라, 화엄경) 등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의 한역본으로는 60권․80권․40권으로 된《육십화엄》․《팔십화엄》․《사십화엄》등 3부《화엄경》이 있다. 이중《사십화엄》은〈입법계품〉만의 별역이다. 이중《육십화엄》과《팔십화엄》을 화엄대경(大經)이라고 부른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에 의해 418~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팔십화엄》은 대주(大周, 695~699)시대 실차난타에 의해 역출되었으니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사십화엄》은 당(唐, 795~798)의 반야다라가 역출하였으며 정원본《화엄경》으로 불리고도 있다.
그러나《육십화엄》이나《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품이 별행경(別行經 또는 支分經)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화엄부 경전으로는 《화엄경전기》에 《도사경》 1권(지루가참 역, 178~189)․《보살본업경》(지겸 역, 222~228)․《여래흥현경》4권(축법호 역, 291) 등을 위시하여 36부 150권의 지분경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경은 그 역출 시기(2세기~10세기)로 보아, 용수(N g rjuna, 150~250) 이전까지〈십지품〉․〈입법계품〉등을 비롯하여 상당수가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용수보살이《십지경》에 대한 주석을 한 데서도 당시에《십지경》이 크게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품으로 구성된, 현《화엄경》과 같은 대경의 조직은 대략 250년에서 350년대의 편성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입법계품〉등의 성립은 남방인도에서라고 생각되나 대경인《화엄경》의 편성은 우전(于 )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지방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대승불설비불설 논쟁이 한동안 크게 일어나 있었다.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내용이 입으로 전래되어 오다가 문자화된 아함부 경전과는 다르니, 대승경전은 모두 불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비불설에 대해 대승불설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니 대승경전이 비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글자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새로운 문자로 다시 편찬한 경전이기에 불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경의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팔십화엄》에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하고,《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世親)이 지은《십지경론》의 저본이 된《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천태교판에서도 이를 최초 삼칠일이라고 하였다. 즉, 아함경을 12년간, 방등경을 8년, 반야경을 21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화경을 8년간 설하시고,《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는 것이다〔阿含十二方等八 二十一載談般若 終說法華又八年 華嚴最初三七日〕.
그러나 이것은《화엄경》의 역사적 성립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화엄경》의 사상적 특징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낸 것임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2. 화엄경의 유통과 주석 ― 인도․서역
《화엄경》의 유통과정을 보면 법장의〈화엄경전기〉에는 서역에서 전해졌다〔西域相傳〕고 하였고,〈용수전〉에는 용수보살이 바다에 들어가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용궁장래설이 있다. 즉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보니 3본《화엄경》이 있는데, 상본과 중본《화엄경》은 그 양이 방대하여 외우기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 상본《화엄경》은 십삼천대천세계 미진수게송과 일사천하 미진수품이 있었다고 한다(이 내용은 우리가 아침에 예불하기 전에 치는 쇠송 염불문에도 들어 있다). 용수보살은 하본《화엄경》십만게 사십팔품을 외워서 세상에 유통시켰으며 지금 전해지는 한역된 삼대부는 그 중 약본
《화엄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은 용수 이전부터 있었던《화엄경》을 용수가 비로소 크게 유통시켰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용궁이란 용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에게서 유통되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하고 남해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용수보살은《화엄경》을 주석하여《대부사의론》100권을 지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는〈입법계품〉에 해당하는《불가사의해탈경》에 대한 주석이다. 용수보살은《십지경》에도 주석을 하였으나 남아 있지 않고〈십지품〉의 일부인 초지와 제이지가 구마라집(鳩摩羅什) 역출의《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으로 유통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용수보살의 화엄보살도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용수의 화엄사상은 이외에도 그가 지은《대지도론(大智道論)》을 비롯해《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보리심이상론(菩提心離相論)》등에서 발견된다.
4세기(320~400) 혹은 5세기(400~480)경에 활약한 것으로 보이는 세친(Vasubandhu)보살은《십지경론》을 지어《십지경》을 크게 유통시켰다. 이《십지론》은 중국에 전래되어 화엄종의 선구인 지론종의 소의가 되었으며, 여기서 보이는 육상설은 화엄 육상원융론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게 용수와 세친은《대승기신론》의 저자로 알려진 마명(A vaghosa, 50~150)과 함께 화엄조사로 숭앙받게 되었다.
마명보살은 용수보살보다 100년경 앞선 50~150년경에 사셨던 분으로 여겨지는데, 이때의 마명보살이《대승기신론》을 지었다고 볼 수 없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원효의《대승기신론소》․
《별기》에만 해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원효는《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을 특징짓기를, 인도 대승불교사상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중관과 유식의 양 사상을 회통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중관이 파하기만 하고 세울 줄 모르며, 유식이 세울 줄만 알고 파할 줄 모르는 데 비해,《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은 세우고 파함이 무애하고〔立破無碍〕 열고 닫음이 자재하다〔開合自在〕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은 중관이나 유식사상보다 먼저 성립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에 세친과 용수보살보다 앞서 살았던 마명보살이 여래장사상이 담긴《대승기신론》을 지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마명보살이《대승기신론》의 저자였기에 후에 화엄종조로 받들어 모셨던 일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위와 같이《화엄경》은 역사적으로 4세기경에 현재의 대경으로 편성되었으나 각 품들의 최초 성립은 용수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초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대승적 깨달음의 세계를 개현한 경전 가운데 핵심적이고 대표적인 경에 속하는 것이다.
또, 용수보살의 저서로 되어 있는 것 중에〈화엄경약찬게〉가 있다.〈화엄경약찬게〉는 갖추어서는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이며 줄여서 단지 ''''약찬게''''라고만 부르고도 있다.〈약찬게〉는
《팔십화엄》의 조직과 구성을 간략히 엮어 놓은 게송으로서 현 한국불교교단에서 널리 독송되는 대표적인 염불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팔십화엄》의 유통은 이〈화엄경약찬게〉의 수지독송에 힘입은 바도 크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약찬게〉의 저자가 용수보살로 되어 있으나 이는 몇 가지 점에서 재고할 여지가 많다.
첫째로〈약찬게〉의 소의경전인《팔십화엄》의 유통과 용수보살과는 연대에 차이가 있다.〈약찬게〉가《팔십화엄》을 소의로 한 것은 ''''삼십구품원만교(三十九品圓滿敎)''''라든지 ''''육육육사급여삼 일십일일역부일(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등〈약찬게〉내용을 보면 명확하다.《팔십화엄》은 39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9회에 배대한 것이 육육 등(六六 云云) 품이기 때문이다.
용수보살은 2, 3세기에 활약하였고 화엄대경은《육십화엄》까지도 용수보살보다 후에 3, 4세기경의 편성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팔십화엄》은 용수보살 시대보다 뒤에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팔십화엄》의 구성을 간략히 엮은〈약찬게〉가 2, 3세기에 활약하였던 용수보살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둘째로〈약찬게〉의 저자가 용수보살이라면 번역한 이가 있어야 하는데 역자를 알 수 없다. 셋째로〈약찬게〉가 한국에서만 그 문헌이 유통됨을 볼 수 있으며 그것도 가장 오래된 판본이 용성천오(龍星天旿)가 광서(光緖) 11년(1885)에 편찬한《화엄법화약찬총지(華嚴法華略纂摠持)》이다. 그 가운데〈약찬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상으로 볼 때〈약찬게〉는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것이 용수보살에게 가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제3강 화엄경의 구성 조직
1. 경의 구성과 회처의 상징
《화엄경》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화엄경》의 구성 조직을《팔십화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팔십화엄》의 구성 조직을 도시하면 다음〈표 1〉과 같다.
〈표 1〉《팔십화엄》(7처 9회 39품의 설주와 교설내용)
여기서 처(處)란 이 경을 설한 장소를, 그리고 회(會)란 경을 설한 모임을 말한다. 경의 설처는 지상에 세 곳이고 천상에 네 곳이며, 보광법당에서는 세 번 설해지고 있으므로 7처 9회이다. 현재 사찰에서 즐겨 독송하는〈화엄경약찬게〉에도《팔십화엄》의 구조가 약술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육육육사급여삼 일십일일역부일(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이라 함은 바로 39품을 9회에 배대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팔십화엄》은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 모임에 의해 39품이 설해지고 80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초회 6품의 설주는 보현보살로서 삼매에 입정하고 출정한 후에 부처님 세계〔佛自內證境〕를 설하고 있다. 제2회는 문수보살이 설주가 되어 신(信)을 설하고 있다. 제3회는 법혜보살이 십주법문을, 제4회는 공덕림보살이 십행법문을, 제5회는 금강당보살이 십회향을, 그리고 제6회는 금강장보살이 십지법문을 설하고 있다. 이 4회는 모두 천상에서 설하고 있으므로 천궁 4회라고도 불리니, 삼현․십성(三賢十聖)의 끝없는 향상도를 보인 것으로 십지 보살행이 그 대표가 된다.
다음 제7회는 다시 보광명전에서 등각과 묘각의 계위에 해당하는 정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으니, 주로 보현보살이 설하고 있다. 보살도의 종극은 또한 정각과 일치함을 거듭 지상의 보광명전에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8회 역시 보현보살이 설하고 있으니, 보살도를 총괄하고 있다.
끝으로 마지막 제9회는 전편 8회와 대비하여《화엄경》후편으로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9회의〈입법계품〉은 그 내용상 전편에서 보인 불자내증경과 보살도 및 구경지를 선재가 출현하여 재현시키고 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서 발심하고 53선지식을 역참하여 보현행에 머물게 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설주와 설처 그리고 교설내용 등에 의하여《화엄경》전체의 내용을 보면, 보현보살이 설주가 되어 보리수 아래와 보광명전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하는 보현경전계, 문수보살이 설주가 되어 중생에게 신심을 일으키는 문수경전계, 천궁 4회에서 향상되는 보살도를 설하는 십지경전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십주․십행․십회향의 삼현은 십지에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화엄경》은 여래의 과해(果海)를 보현보살을 통해서 보인 보현경전계와 중생을 발심케 하는 신(信)을 설하는 문수경전계 및 보살도의 전개를 보인 천궁 4회의 십지경전계로 분류되고도 있다.
그런데 중생에게 신을 설하는 단계인 문수보살의 설법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하는 장소인 보광명전에서 설해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부처 종자이기에 부처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으니 인과교철(因果交徹)의 화엄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주초발심(住初發心)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중생이 신심을 원만 성취할 때 발심하여 보살이 되는데 그 발심을 하는 자리가 십주초인 초발심주이다. 이 초발심주에서 처음 발심하여 보살이 되는 때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때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후에 펼쳐지는 보살행은 정각후의 이타행이니 인과불이(因果不二)의 불국토장엄행이다.
나아가 경에서는 부처와 중생의 체성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중생은 누구나 자심이 곧 불지임을 깊이 믿는 것을 정신(淨信)이라 하니 이는《화엄경》에 보이는 특이한 신심의 양상이다. 중생이 본래 부처와 다르지 아니함을 믿고 본래의 모습대로 살고자 발심하여 보살이 되면 곧 중생의 본래모습인 부처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경에 다양하게 펼쳐지는 보살행은《화엄경》의 말씀이 중생들, 바로 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고 하겠다.
법장과 의상이 소의로 한《육십화엄》에서는,《팔십화엄》과 대동소이하나〈보왕여래성기품〉에 초점을 맞추어 여래출현의 성기(性起)를 중시한 점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경이 설해진 회처를 보면,《팔십화엄》처럼 지상-천상-지상으로 되어 있다. 처음 석존 성도의 장소인 적멸도량․보광법당에서 출발하여 점차 6욕천 중 도리천․야마천․도솔천․타화자재천으로 상승하였다가 다시 지상인 보광법당으로 내려오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최고의 설처인 타화자재천궁에서 맨 마지막으로 설해진 것이〈성기품〉이라는 것이다.
설주인 보살의 상징에 의해서도 불과를 드러낸〈성기품〉이 두드러진다. 경은 전체적으로 보현보살〔佛自內證境〕 → 문수보살〔信〕 → 제보살〔住․行․向․地〕 → 보현보살〔佛果行인 菩薩道〕을 통하여 설해지고 있다. 보현보살은 전후 네 번에 걸쳐 설주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보현보살행품〉과〈성기품〉에서 설주인 것은 한층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양품이 속해 있는 타화자재천궁회의 타품들은 금강장보살이 설한 십지경전계인 까닭이다. 십지의 구극인 불과는 보현보살을 통하여 설해짐을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보현보살은 불자내증경․불과․불과행용 등 통틀어 불경계를 드러내는 보현경전의 설주가 되고 있다.
따라서 여래출현(여래성기)의 사상을 가지고 문수경전과 보현경전을 결합하고 그 사이에 십지경전을 체계지운 것이《화엄경》구성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문수와 보현에 의해서 비로자나로서의 여래의 현현임을 보인 것은 명백한데, 거기에 십지경전을 체계지운 것은 이 양자를 시종으로 하는 보살도의 체계도 여래출현의 입장에서 조직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곧《화엄경》에서의〈성기품〉의 위치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60권《화엄경》이 이러한 의도로 편찬된 것을 잘 파악하여 구축한 것이 의상계 화엄가의 화엄성기사상이라 하겠다.
2. 화엄경 약찬게
이러한《팔십화엄》의 구성 조직은〈약찬게〉에도 담겨 있다. 약찬게문은 마지막 제목을 제하면 110구 770자이다.《팔십화엄》을 간략히 엮고 있는 이〈약찬게〉의 체제와 내용을 보자.
귀경송이다. 이는 화장세계의 비로자나 진법신과 보신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등 일체 여래와 시방삼세의 모든 대성에게 귀의한다는 것이다. 이 귀경게에서는 화엄정토가 화장세계인 것과 화엄의 주불이 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과 다른 분이 아님도 시사하고 있다.
화엄교학에서는 삼불이 원융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경주(經主)로 모시니,〈약찬게〉에도 그러한 화엄교학에서의 불신관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설경인연력(說經因緣力)이다. 여기서는 해인삼매력에 의하여 전법륜됨을 말하고 있다.
운집대중이다. 보현보살을 위시한 모든 보살대중과 39류의 화엄성중을 열거하고 있다. 이들이 곧 세주라 불리는 분들이니 그 대표되는 세주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다. 각 회의 설주보살 또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입법계품〉의 근본법회에 모인 대중과 지말법회의 문수보살 설법처인 복성 동방 사라림에 모인 대중들도 보이며, 선재동자의 선지식들도 운집대중으로 언급되어 있다.
선재의 선지식이다. 문수보살에서 비롯되어 보현보살에 이르기까지 53선지식이 출현한다.
경의 설처와 품명이다.
유통송이다. 이 경을 믿고 수지하면 초발심시에 문득 정각을 이루어서 화장세계에 안좌하니, 그 이름이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약찬게〉의 독송은 중생이 보살행을 통하여 자신의 본래 모습인 부처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수행의 길이 된다.〈약찬게〉의 지송은 특히 화엄성중의 보호를 갈구하는 대중신앙의 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약찬게〉는 한국식 화엄지송경이자 다라니의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하겠다.
제4강 화엄경의 내용 -초회 6품
초회 6품에서는 특히 다음 사항을 주목하게 한다.
6성취와 그 가운데 청법대중의 특징은 무엇인가?
《화엄경》의 교설인연, 달리 말해서 화엄교설의 내용이 무엇인가?
설주는 교설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삼매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연화장세계, 즉 화엄정토는 어떠한 세계이며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은 어떻게 해서 비로자나불이 되셨는가?
1. 세주묘엄품
먼저 초회 6품 중 첫품인〈세주묘엄품〉은 처음 법보리장회의 서품이면서《화엄경》전체의 서분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법보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시자 신통력으로 도량에는 모든 장엄이 조화되어 빛났다.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과 집금강신을 비롯한 39류 화엄성중 등 총 40중이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 회상에 모여왔으며, 그들을 세주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각기 성취한 해탈문의 경계에서 본 부처님 세계를 게송으로 찬탄하여 불세계를 장엄하였으므로 첫품을〈세주묘엄품〉이라 하였다.
2. 여래현상품
세주들이 마음 속으로 40가지 질문을 일으키니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으셔서 답해 주고 계신다. 이를 여래현상이라고 한다. 그 질문 내용을 보면,
제불지(諸佛地) 제불경계 제불가지(加持) 제불소행(所行) 제불력 제불무소외 제불삼매 제불신통 제불자재 제불무능섭취(諸佛無能攝取) 제불안(眼) 제불이(耳) 제불비(鼻) 제불설(舌) 제불신(身) 제불의(意) 제불신광(身光) 제불광명 제불성(聲) 제불지(智) 세계해 중생해 법계안립해 불해(佛海) 불바라밀해 불해탈해 불변화해 불연설해 불명호해 불수량해(이상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며, 다음은 보살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일체보살서원해 일체보살발취해 일체보살조도해 일체보살승해(乘海) 일체보살행해 일체보살출리해 일체보살신통해 일체보살바라밀해 일체보살지해(地海) 일체보살지해(智海)이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들의 생각한 바를 아시고, 입과 치아 그리고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셨다. 광명을 입고 보살대중들이 모여오고 백호상에서 출현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여래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게송 중에서
부처님께서 법계에 충만하시어 佛身充滿於法界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니 普現一切衆生前
연을 따라 나아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되 隨緣赴感靡不周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 계시도다. 而恒處此菩提座
라는 게송은 법당 앞 주련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여래현상의 경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후《화엄경》의 교설은 전체적으로 이상의 40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다. 따라서《화엄경》의 교설은 불․보살 경계임을 대방광불화엄이라 한 것을 알 수 있다.
3. 보현삼매품
《화엄경》에서는 각 회의 설주들은 제2회를 제외하고는 다 삼매에 들었다가 깨어나서 설법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삼매에 들어간 것은 일체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과 보살 각자의 선근력(善根力) 등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 보현보살의 경우도,
선재선재라, 선남자여, 그대가 이 일체 제불 비로자나여래장신 보살삼매에 능히 들었도다. 불자여, 이것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그대에게 가피하심이며,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인 까닭이며, 역시 그대가 닦은 모든 부처님의 행원력인 까닭이니라.
라고 하여, 보현보살이 행원을 닦았기에 부처님의 가피와 서원에 힘입어서 삼매에 들 수 있었음을 설하고 있다. 보현보살은 삼매 속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온갖 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 모인 대중들 역시 보현보살과 함께 삼매에 들어서 설법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보현보살을 비롯한 각 보살들은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도량과 모인 대중들을 관찰하고 부처님 법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온갖 법문을 내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며
또 모든 여래의 위신력을 받들어 구족히 말하리라.
보살들이 보살과 중생들을 위해 설법함이 다 부처님의 위신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주변의 모든 장엄도 부처님의 신통이다. 부처님과 보살의 신통은 또 비로자나부처님이 모두 나타내신 것이며, 그 한없는 신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경에서는 보살이 원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행도, 그리고 그 보살행에 의하여 중생이 교화받음도 다 부처님의 힘임을 보이고 있다.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서 시방세계 중생을 위할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이 발심하여 보살이 된 것도 부처님의 힘이다. 보살이 원을 세워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하여 중생을 위하여 보살행을 한 것도 곧 비로자나부처님이 본래 세우신 서원의 힘이며 일체 부처님께서 가피해 주시는 위신력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보현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가피력과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과 보현보살 자신의 행원력으로 일체 제불 비로자나여래장신 삼매에 입정하여 지혜를 얻고 출정한다. 이 보현보살의 입․출정 내용에서 우리는《화엄경》에서 보이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닌 세계를 만날 수 있다.《화엄경》은 보살의 수행과 중생의 신앙 즉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고, 보살의 수행 역시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님을 보이고 있다.
4. 세계성취품
이 품은 보현보살이 세계해의 10사(十事)를 10종으로 설한 것이다.
보현보살이 대중들에게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을 위시하여 세계해의 의지하여 머무름․형상․체성․장엄․청정방편․부처님 출현․겁의 머무름․겁의 변천․차별없는 일 등, 세계해의 십사를 다시 10종으로 설하였다. 예를 들면 세계해가 이루어진 인연도 10종이 있다고 하니, 여래의 위신력과 중생의 업행과 보살의 원행 등으로 세계가 성취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5. 화장세계품
보현보살이 다시 화장세계의 장엄을 말하였다. 이 화장장엄세계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지난 세계해의 미진수겁 동안 보살행을 닦을 때에 낱낱 겁마다 부처님을 친근하고 큰 서원을 닦아서 깨끗하게 장엄한 것이다. 화장장엄세계해는 풍륜이 받치고 있는 향수해의 큰 연꽃 가운데에 있다. 장엄세계의 온갖 경계는 낱낱이 세계해 티끌수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한 까닭이다.
6. 비로자나품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과거생 인연을 설하고 있다.
지난 옛적 승음세계에 일체공덕산수미승운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큰 광명을 놓아 중생을 조복하시니, 그 도성의 대위광태자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예전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즉시 10종 법문을 증득하였다.
즉 일체 제불의 공덕륜삼매, 일체 불법의 보문다라니, 반야바라밀, 대자, 대비, 대희, 대사, 대신통(방편), 대원, 변재문 등이다.
그후 대위광태자는 여러 부처님을 친견 공양하며 법문을 듣고 장차 부처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비로자나여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상을 요약해서 다시 부연해 보면,
첫째,〈세주묘엄품〉에서의 청법대중은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과 화엄성중들로서 이들은 세주라고 불리고 있다.《화엄경》에서는 회처를 달리할 때마다 수많은 청법대중이 다시 모여온다.
둘째,〈여래현상품〉에서는《화엄경》이 교설되는 인연이 설해지고 있다. 세주들이 가만히 40가지 질문을 드리고 있으니, 이를 크게 둘로 나누면 불세계와 보살세계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여 여래께서 광명으로 출현하시니 이것이 여래현상이며, 이에 대한 언설을 통한 보살들의 재설명이 화엄교설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셋째, 초회 설주인 보살의 설법 능력은 삼매를 통해서 얻어지고 있으며 이 삼매는 자타불이력(自他不二力)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제불의 위신력과 비로자나불의 본원력 그리고 보현보살 자신의 행원력에 의해서이다.
넷째, 이 세계가 성취된 인연을 비롯한 세계해의 갖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갖 인연 중 부처님의 신통과 보살의 원행과 중생의 업행에 의해 일체 세계가 이루어짐을 밝히고 있다.
다섯째, 화엄정토인 연화장세계를 보이고 있다.
여섯째,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의 본생 수행법을 설하고 있다.
제5강 화엄경의 내용 -제2회 6품
제2회 6품에서는 신(信)에 대해서 교설하고 있다. 문수보살의 특수한 지혜에 의해서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신심을 성취케 해주는 법회인 것이다. 이 말씀을 만남에 있어서도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두게 한다.
무엇을 믿는가? 믿음의 대상,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어떤 의심을 떨쳐 버려야 믿음이 생기는가?
어떤 의심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믿음을 성취할 수 있는가?
믿는 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즉, 신(信)의 공용(功用)이 무엇인가?
7. 여래명호품
첫째, 무엇을 믿는가? 부처님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한량없음을 믿게 하고 있다. 먼저 제2회의 첫품이고 전체로서는 제7품인〈여래명호품〉에서는 부처님의 신업 경계가 한량없음을 보이고 있다.
세존께서 보광명전에서 신통을 나투시니 시방세계의 부처님 세계에 있는 보살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다. 동방 부동지불의 금색세계에 있는 문수사리보살을 비롯한 각수(覺首)․재수(財首)․보수(寶首)․덕수(德首)․목수(目首)․근수(勤首)․법수
(法首)․지수(智首)․현수(賢首) 등 9수(九首)보살들이 시방세계 티끌수만큼 많은 보살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데 나아왔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말씀하였다. 부처님의 국토, 부처님의 출현 등이 헤아릴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 중생의 좋아함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아시고 알맞게 법을 설하여 조복하시기 때문이다. 여래는 사바세계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제각기 알고 보게 하시므로 여래의 명호도 헤아릴 수 없음을 자세히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한량없어서 부처님의 명호도 한량없는 것이다.
8. 사성제품
〈사성제품〉에서는 문수보살이 사바세계를 비롯하여 시방세계에서의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10가지씩 갖가지로 달리 설하니 모두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조복하게 함인 것이다. 부처님의 구업(口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사바세계에서는 죄가 고성제(苦聖諦)이고 핍박․변해 달라짐〔變異〕․반연․모임〔聚〕․가시〔刺〕․뿌리를 의지함〔依根〕․허망하게 속임〔虛?〕․종기자리〔癰瘡處〕․어리석은 행〔愚夫行〕이 고성제이다.
고의 집성제〔苦集聖諦〕는 계박(繫縛)․멸괴(滅壞)․애착〔愛着義〕․망령된 생각〔妄覺念〕․취입(趣入)․결정(決定)․그물〔網〕․희론(戱論)․따라다님〔隨行〕․전도근(顚倒根)이다.
고의 멸성제〔苦滅聖諦〕는 무쟁(無諍)․티끌을 여읨〔離塵〕․적정(寂靜)․무상(無相)․무몰(無沒)․무자성(無自性)․무장애(無障碍)․멸(滅)․체진실(體眞實)․자성에 머무름〔住自性〕이다.
고의 멸에 이르는 도성제〔苦滅道聖諦〕는 일승․취적(趣寂)․이끌어 인도함〔導引〕․구경무분별․평등․짐을 벗음〔捨擔〕․나아갈 데 없음〔無所趣〕․성인의 뜻을 따름〔隨聖〕․선인행(仙人行)․십장(十藏) 등으로 교설되고 있다.
9. 광명각품
〈광명각품〉에서는 세존께서 두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어 시방 일체 세계를 비추시니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이 모두 다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문수보살과 9수(九首)보살 등 시방세계 보살들이 나타나 게송으로 부처님 세계를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의업(意業)세계가 한량없음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초회에서는 부처님께서 미간백호로 광명을 놓으셨으니 이는 깨달음의 세계를 보이기 때문이고, 여기서 발바닥으로 광명을 내시는 것은 신심이 불과에 오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으로 본다.
10. 보살문명품
〈보살문명품〉에서는 신심을 성취케 하기 위해 문수보살과 9수보살들이 문답을 통해 의심을 파하여 제하고 있다.
이 보살들의 10가지 문답은 십심심(十甚深)이라고 불리고 있다. 즉, 각수보살은 연기심심을 보이고, 재수보살은 교화심심을, 보수보살은 업과심심을 보이는 것이니, 이를 통해서 중생의 현실을 잘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또 덕수보살은 설법심심, 목수보살은 복전심심, 진수보살은 정교(正敎)심심으로 불교화의 모양을 보이고 있다. 법수보살은 정행심심, 지수보살은 조도심심에 의해 교화에 의한 수행을 보이며, 현수보살은 일승심심, 문수보살은 불경계심심으로 구경불과의 불가사의함을 바로 알도록 설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청정한 신심〔淨信〕을 개발토록 하였다.
이러한 보살들의 문답을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문수보살이 각수보살에게 물었다. 마음의 성품〔心性〕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갖가지 차별을 보는가? 각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법의 성품 본래 남이 없지만 法性本無生
시현하여 남이 있으니 示現而有生
이 가운데 능히 나타냄도 없고 是中無能現
또한 나타난 물건도 없도다. 亦無所現物
부처님의 교법은 하나인데 중생들이 보고 어찌하여 즉시에 온갖 번뇌의 속박을 끊지 못하는가?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구함에 如鑽燧求火
불붙기 전에 자주 쉰다면 未出而數息
불기운도 따라서 없어지나니 火勢隨止滅
게으른 자 역시 그러하도다. 懈怠者亦然
〈근수보살〉
부처님 말씀처럼 만약 중생이 정법을 받아 지니면 일체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정법을 받아 지니되 끊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을 세어도 如人數他寶
스스로는 반전도 없는 것같이 自無半錢分
법을 닦아 행하지 아니하면 於法不修行
많이 들은 것만도 그러하도다. 多聞亦如是
〈법수보살〉
불법 가운데는 지혜가 제일인데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중생을 위하여 보시를 찬탄하고 혹은 내지 지혜를 찬탄하며 자비희사를 찬탄하시는가?
인색하면 보시를 찬탄하고 ?者爲讚施
금지함을 깨뜨리면 계를 찬탄하고 毁禁者讚戒
성 잘내면 인욕을 칭찬하고 多瞋爲讚忍
나태하면 정진을 찬탄하시도다. 好懈讚精進
〈지수보살〉
부처님께서는 오직 한길로써 벗어나 여읨〔出離〕을 얻으셨는데 지금보니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국토에 있는 온갖 일이 여러 가지로 같지 아니한가?
문수여, 법이 항상 그러하여 文殊法常爾
법왕은 오직 한 법뿐이니 法王唯一法
일체 걸림없는 사람은 一切無 人
한길로 생사에서 벗어나니라. 一道出生死
〈현수보살〉
이 게송은 원효대사가 대중 속으로 회향하러 들어가면서 읊었다는 유명한 게송이다.
끝으로 여러 보살들이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우리들이 아는 것을 말하였으니, 묘한 변재로 여래께서 소유하신 경계를 말씀해 주소서.
여래의 깊은 경계는 如來深境界
그 양이 허공과 같아서 其量等虛空
일체 중생들이 들어가되 一切衆生入
실로 들어간 바가 없도다. 而實無所入
〈문수보살〉
11. 정행품
보살이 어떻게 하면 신(身)․구(口)․의(意) 3업이 수승하게 할 수 있는지 지수보살이 문수보살에게 질문하였다. 이에 문수보살이 답하고 있다.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善用其心〕 온갖 승묘한 공덕을 얻어 부처님도에 머물며 제2도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140원(願)을 일으키도록 권하고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원만 소개해 본다.
보살이 집에 있을 때에는 菩薩在家
마땅히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집 성질이 공함을 알아 知家性空
그 핍박을 면하여지이다. 免其逼迫
보시를 할 때에는 若有所施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一切能捨
마음에 애착이 없어지이다. 心無愛着
머리털과 수염을 깎을 때에는 체除鬚髮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번뇌를 아주 버리고 永離煩惱
마침내 적멸하여지이다. 究竟寂滅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할 때는 自歸於佛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불종자를 잇도록 紹隆佛種
위없는 뜻을 낼 지어다. 發無上意
스스로 가르침에 귀의할 때는 自歸於法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경장에 깊이 들어가 深入經藏
지혜가 바다와 같게 하여지이다. 智慧如海
스스로 스님들께 귀의할 때는 自歸於僧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대중을 통솔하고 다스리되 統理大衆
모든 것에 장애가 없어지이다. 一切無
잠에서 처음 깰 때는 睡眠始寤
이같이 원하라 當願衆生
중생들이 온갖 지혜 깨닫고서 一切智覺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지이다. 周顧十方
불자들이 이같이 마음을 쓰면 온갖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12. 현수품
문수보살이 청정행의 대공덕을 말하고 나서 다시 보리심의 공덕을 보이려고 현수보살에게 수행공덕을 말하게 하였다. 이에 현수보살이 신심의 공덕과 공능을 게송으로 설하고 있다.
신심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라 信爲道元功德母
모든 선한 법을 길러내며 長養一切諸善法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斷除疑網出愛流
열반의 위없는 도 열어 보이도다. 開示涅槃無上道
믿음은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 信爲功德不壞種
믿음은 보리수를 생장케 하며 信能生長菩提樹
믿음은 수승한 지혜 증장케 하고 信能增益最勝智
믿음은 온갖 부처 시현하도다. 信能示現一切佛
이상의 내용을 부연해 보면,
첫째, 믿음의 대상과 내용은 부처님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의 경계가 한량없음이다. 이에 대해서〈여래명호품〉과〈사성제품〉그리고〈광명각품〉에서 설하고 있다.
둘째,〈보살문명품〉에서 믿음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의심을 밝히고 있다.
셋째,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을 잘 쓰도록 하며, 140원을 세우도록 한다. 이 원으로 자신의 신․구․의 삼업을 잘 다스려 나가면 제2도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넷째, 믿음의 공용이 다양하게 교설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화엄경》에서 모든 보살도를 튼튼히 받쳐주는 기초가 된다. 이 신심이 만족하면 그때가 바로 부처되는 때이므로 이를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 한다.
제6강 화엄경의 내용 -해인삼매
〈현수품〉에는 신심이 원만 성취되면 얻어지는 신심의 공능으로서 삼매가 설해져 있다.《화엄경》의 총정인 해인삼매도 교설되어 있다.
이 해인삼매는 어떠한 삼매이며, 어떻게 모든 삼매 중 으뜸인 것으로 부각되어 갔는가. 그리고 해인삼매를 얻게 되면 어떤 덕용(德用)이 있으며, 그 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연은 무엇인가.
〈현수품〉에는 신심이 원만 성취되면 얻어지는 신심의 공능으로서 10종 삼매〔圓明海印三昧門․華嚴妙行三昧門․因陀羅網三昧門․手出廣供三昧門․現諸法門三昧門․四攝攝生三昧門․窮同世間三昧門․毛光覺照三昧門․主伴嚴麗三昧門․寂用無涯三昧門〕가 보이며, 그 첫째로《화엄경》의 총정(總定)인 해인삼매에 대하여 교설되고 있다.
석존의 깨달음은 명상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명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그 가운데 삼매는 대승경전의 말씀이 교설되는 주요 방편문으로 부각되었다. 원시경전에서도 4선 8정(四禪八定)이나 삼삼매 등 중시되지 않은 바 아니나 대승경전에서는 무량한 삼매가 수없이 나타난다. 특히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모든 교설이 삼매에 들고 나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해인삼매는《화엄경》의 총정(總定)으로까지 주시되고 있다. 입․출정 후에 설해지는 다른 경전과는 달리《화엄경》은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것으로 주지되고 있다.
삼매는 sam dhi(사마디)를 음사한 것으로 삼마지(三摩地)로 음역되고도 있다. 그러나 그외에도 삼마제․삼마발제․사마타․삼마혜다․타연나․디야나․선나 등으로 음사되고 있다. 의역으로서는 흔히 심일경성(心一境性)의 상태로서 정(定)이라 번역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사(正思)․등지(等持)․지(止)․등인(等引)․정려(精慮)․사유수(思惟修)․정정(正定) 등으로 번역되는 많은 용어가 정(定)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 자체가 지혜까지도 포용된 의미를 지니기도 하면서, 삼학(三學)의 하나로 매우 중시되어 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체 모든 삼매의 근본이며 그 삼매를 다 포섭한다는 해인삼매는 경에서 해인삼마지(海印三摩地)․해인정(海印定)․대해인삼매(大海印三昧)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이는 S garamudr Sam dhi(사가라무드라 사마디) 또는 S gara Sam ddhi(사가라 삼릿디)의 음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면 경전에 나타난 해인삼매의 전반적인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해인삼매의 용례
해인삼매는《화엄경》이외의 다른 경전에도 물론 보인다. 예를 들면《대집경》,《대보적경》등 많은 경전에 설해져 있으며 화엄가들도 이 경전들을 인용하여 해인삼매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해인삼매는《화엄경》의 세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삼매로 간주되고 있다. 해인삼매는〈현수품〉․〈십지품〉․〈여래출현품〉․〈입법계품〉등에서 교설되고 있다.
2. 해인삼매의 의미
해인삼매는 대해(大海)에 비유하여 붙여진 삼매의 이름이다. 그러면 해인삼매를 큰 바다에 비유하여 명명한 그 구체적 비유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바다에 모든 영상이 다 나타나는 것처럼 일체 색상이 보리심해 중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섬부주의 모든 유정 등 색류가 다 바다 가운데 영상을 나투므로 이름이 대해인 것과 같이, 이 같은 유정의 일체 심색(心色)과 음성 등 모든 영상이 다 보리심해 중에 나타나므로 해인삼마지라 한다
둘째, 모든 물〔水〕의 흐름이 다 대해에 들어가는 것처럼, 한량없는 일체 제법이 다 해인삼매 중에 들어가므로 해인이라 한다.
대해수가 무량하여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일체 제법도 그 양을 헤아릴 수가 없으며, 또 일체 중류(一切衆類)가 대해 가운데 다 들어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일체 법을 인함이 모두 제법해인에 들어가며 이 해인 중에서 일체 법을 보게 된다.
셋째, 대해에 모든 용왕․신중이 머물며 진귀한 보배가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이, 이 삼매도 일체 법 및 법선교(法善巧)가 갈무리된 곳이므로 해인삼매라 한다.
이러한 해인삼매는 의상뿐 아니라 법장, 징관을 위시하여 화엄가들이 매우 중시하였으니 해인삼매를《화엄경》의 총정으로까지 부각시키고 있다.《화엄경》전체가 바로 해인삼매 속에서 설해진 말씀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이 의지하고 있는 해인삼매는 십불(十佛)의 해인이고 석가불해인이며 정각해인이고 제불여래응공등정각보리며 무상보리해(無上菩提海)이다. 그래서 해인은 진여본각이며 일체지․대지(大智)․증분내증(證分內證)․여래성기심(如來性起心)이다. 응화하되 나투는 바가 없어 보리의 무심돈현(無心頓現)이 해인삼매인 것이다.
해인삼매가 모든 삼매를 섭수하는 것처럼《화엄경》의 해인삼매 또한 제경의 해인삼매를 섭수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3. 해인삼매의 대용(大用)
해인삼매를 체(體)로 하여 일어나는 해인삼매의 상(相)․용(用)은, 해인삼매를 왜 해인삼매라 하는지를 가리키는 해인삼매의 의미와 별개인 것은 아니다. 해인삼매는 여래지(如來智)로 일체 색상을 인현(印現)할 뿐만 아니라 또한 여래지를 의지하여 만상을 몰록 나투는 업용이 있다. 그러한 작용이 있어서 그 같은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해인삼매의 수승한 묘용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화엄부의 제 문헌에서는 해인삼매의 대용(大用)이라는 용어 대신에 업용(業用)․덕용(德用)․승용(勝用) 등의 말도 자주 보인다.
《화엄경》에서는 보살행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불보리의 경지에서 불행(佛行)으로 나투어지고 있다.
〈현수품〉에서는 현수보살이 10종삼매의 업용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있는데, 처음에 해인삼매의 대용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있다. 해인삼매의 대용을 크게 다섯으로 구분해 보기로 한다.
부처로 시현하고 법장을 설한다.《화엄경》의 해인삼매는 불보리정각(佛菩提正覺)해인이다. 어디든 부처 없는 국토에 시현하여 정각을 이루고, 법을 알지 못하는 국토에서는 묘법장을 설한다.
일념경에 시방에 두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달빛 그림자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는 것같이 무량방편으로 군생을 교화한다. 분별도 없고 무념인지라 한 찰나에 시방세계에 두루 다녀 무공용(無功用)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일체시 일체처에서 8상을 나툰다. 시방세계 가운데 염념이 시현하여 성불하고 정법륜을 굴리며 열반에 들고 내지 사리를 나누어 중생 위해 보인다.
성문․연각 등 삼승교를 열어 삼승문으로써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 무량겁 동안 무량중생을 제도함에 있어 근기에 따라 성문․연각 등 삼승 방편문을 시설하기도 한다.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라 모든 모습으로 다 시현한다. 혹은 남자로 혹은 여자로 나타나고 갖가지 몸을 그 좋아함을 따라서 다 보게 한다.
중생의 형상, 행업과 음성도 한량없어서 이를 따라 일체를 다 나툰다. 이러한 모든 불사가 곧 해인삼매의 위신력이다. 제불보리가 널리 일체 중생의 심념(心念)과 근성(根性)과 욕락을 나투되 나투는 바가 없으니 정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찰나찰나마다 중중무진세계에 일체 모습으로 시현하여 끝없는 중생을 다 제도하는 것이 바로 해인삼매의 위신력에 의한 해인삼매의 수승한 덕용이라는 것이다.《화엄경》에서는 한 세계에 한 부처로 시현하는 것이 아니라, 중중무진으로 응현하는 것이다. 만법이 다 해인병현(海印炳現)이요, 해인돈현(海印頓現)이 다 불현(佛現)이다. 시현해도 시현함이 없는 무심돈현이요, 응화해도 응화함이 없는 무공용행이다. 무량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법 설함을 시설한 것은 사바세계에서의 교화방편은 음성 설법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4. 해인삼매에 드는 인연
해인삼매가 불가사의한 경계인 만큼, 해인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연 또한 헤아리기 어려우리란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경에서 명확하게 해인삼매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두드러지게 제시한 곳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대집경》에서는 제일 먼저 다문(多聞)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보살이 많이 듣기를 바다와 같이 하면 지혜를 성취하여 항상 부지런히 법을 구하리라고 한다. 다문을 성취한 후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며 그 설법선근으로 해인삼매에 회향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보적경》에서도 모든 법문을 잘 수행함으로써 해인삼매를 얻는다고 함은 같다. 이처럼 법문을 듣고 설법함이 해인삼매를 얻는 주된 방편으로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화엄에서도 마찬가지다.《대방광총지보광명경》에서는 해인삼매가 입으로 좇아 나온다〔海印三昧口中生〕고까지 역설되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각 회마다 설주보살이 삼매에 들어 지혜를 얻고는 출정한 후에 설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삼매력으로 설법한 모든 것이 해인삼매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설주보살들의 입정인연도 간과할 수 없다고 하겠으니, 보현보살을 위시하여 설주되는 보살이 삼매에 들 수 있음은 3종인연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시방 일체 제불의 가지력(가피력), 둘째는 비로자나여래의 본원력(위신력), 셋째는 보살이 일체 제불의 행원력을 닦은 선근공덕력 또는 지혜력에 의해서이다. 보살들이 닦은 행원(선근공덕력)은 입정의 인(因)이며, 주불과 제불의 본원력 가피력은 연이 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항상 제불보살을 친근해야 해인삼매를 구족 성취하게 됨도 경에서는 보이고 있다.
〈현수품〉에서는 해인삼매 등 10삼매의 대용은 발심수행한 수승한 덕의 하나로서 설해진 것이다. 그런데 발심은 신심에 의해서 가능하니 발심성불은 신만성불인 것이다. 그 신심은〈정행품〉의 140원을 성취한 정신(淨信)을 말한다. 따라서 입정은 행원의 광대한 공덕행인 보현행덕으로 가능하며, 그 보현행덕은 무방대용인 과(果)와 둘이 아닌 인행(因行)인 것이다.
〈현수품〉에는 해인삼매 외에 아홉 삼매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그 중 화엄삼매와 방망삼매(方網三昧)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해 보면, 우선 화엄삼매이다. 해인삼매가 만상이 다 나타나는 진여본각으로 설명되었다면 화엄삼매는 널리 보살만행을 닦아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해인삼매가 불과무애라면 화엄삼매는 보살만행으로서의 바라밀행이다.
다음 방망삼매(方網三昧)는 동서 등의 방위나 육근과 육경, 남녀 노소, 비구 비구니, 중생과 부처, 미진과 일체처 등을 막론하고 온갖 곳에서 입정 출정함이 걸림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현수품〉에서는 동방에서 바른 정에 들어가 서방에서 정으로 좇아 나오며, 서방에서 바른 정에 입정하여 동방에서 정으로 좇아 나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안근에서 입정하여 색진에서 출정하며, 색진에서 입정하여 안식에서 출정한다.
또 동자신에서 입정하여 장년신에서 출정하며, 장년신에서 입정하여 노년신에서 출정하며, 노년신에서 입정하여 선녀신에서 출정하며, 선녀신에서 입정하여 선남신에서 출정하며, 선남신에서 입정하여 비구니신에서 출정하며, 비구니신에서 입정하여 비구신에서 출정하며, 비구신에서 입정하여 학무학에서 출정하며, 학무학에서 입정하여 벽지불에서 출정하며, 벽지불에서 입정하여 여래신에서 출정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많은 삼매가 신심의 덕용으로 교설되어 있는 것이다.
제7강 화엄경의 내용 -제3회 6품
제3회 6품은 수미산정의 제석천궁전에서 법혜보살에 의하여 십주법문이 설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주목하게 하는 점으로서는
첫째, 보살의 주처이다.
십주의 자리는 어디이며 십주보살행은 어떠한 것인가?
둘째, 발심의 인과 연은 무엇이며,
초발심시변정각의 경계는 무엇인가?
셋째, 무엇이 범행인가? 화엄의 관행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13. 승수미산정품
먼저 제3회 첫품인〈승수미산정품〉은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수미산에 오르셔서 제석천의 궁전으로 향하신 것으로 시작된다. 제석천왕이 멀리서 보고 궁전을 장엄하고 사자좌를 놓고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부처님께서 결가부좌하시니 시방세계에서도 그와 같았다. 이는 하나가 곧 일체〔一卽一切〕인 경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14. 수미정상게찬품
부처님의 신력으로 법혜(法慧)보살을 비롯한 일체혜․승혜․공덕혜․정진혜․선혜(善慧)․지혜(智慧)․진실혜․무상혜․견고혜보살 등 10혜보살이 십불세계에서 부처님 계신 데 이르렀다.
보살의 돌림자가 모두 지혜 혜(慧)인 것은 지혜가 보살행의 바탕이 됨을 의미한다. 지혜가 없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때 세존께서 두 발가락으로 광명을 놓아 수미산 꼭대기를 비추시니 제석천 궁전안의 부처님과 대중들이 그 속에 나타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법혜보살을 위시한 모든 보살들이 그 경계를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부처님께서 我等今見佛
수미산정에 계심을 보며 住於須彌頂
시방에서도 모두 그러하니 十方悉亦然
여래의 자재한 힘이로다. 如來自在力
온갖 법이 나지도 않고 一切法無生
온갖 법이 멸하지도 않나니 一切法無滅
만약 능히 이같이 알면 若能如是解
부처님께서 항상 현전하시리라. 諸佛常現前
온갖 법들이 了知一切法
자성이 없는 줄 알지니 自性無所有
이렇게 법의 성품 안다면 如是解法性
곧 노사나불을 뵈오리라. 卽見盧舍那
이 게송은 자장법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기도하고 받은 게송이다.
15. 십주품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보살무량방편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서 보살이 머무는 주처를 설하였다. 보살이 머무는 곳이 넓고 커서 법계와 허공과 같다. 보살은 삼세의 여러 부처님 집에 머물며〔住三世諸佛家〕, 이 보살이 머무는 곳에 10가지〔十住〕가 있다고 한다. 10주는 초발심주(初發心住)․치지주(治地住)․수행주(修行住)․생귀주(生貴住)․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정심주(正心住)․불퇴주(不退住)․동진주(童眞住)․법왕자주(法王子住)․관정주(灌頂住)이다.
(1) 초발심주(初發心住)는 보살이 처음 발심하는 자리이다. 발심의 인이 되는 10법과 발심의 연, 그리고 초발심주에서 닦는 10법을 차례로 교설하고 있다.
먼저 발심의 10인은 보살이 부처님의 형모가 단엄하심을 보고 발심하며, 내지는 중생들이 심한 고통 받음을 보거나, 혹은 부처님의 광대한 불법을 듣고 보리심을 내어 온갖 지혜를 구한다.
초발심주의 소연(所緣)인 여래의 10가지 수승한 지혜는 일체지로서 10지 또는 10력을 가리키는 10종지력(十種智力)이다.
처비처지(處非處智)이니, 옳고 그른 도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지혜의 힘이다.
선악업보지(善惡業報智)이니, 과거․현재․미래에 선업과 악업으로 받는 과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지혜의 힘이다.
제근승열지(諸根勝劣智)이니, 근기가 예리하고 둔함을 아는 지혜이다.
종종해차별지(種種解差別智)이니, 갖가지 이해를 아는 지혜이다.
종종계차별지(種種界差別智)이니, 여러 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이다.
일체지처도지(一切至處道智)이니, 온갖 곳에 이르러 갈길을 아는 지혜이다.
제선해탈삼매지(諸禪解脫三昧智)이니, 모든 선정․해탈․삼매의 때묻고 깨끗함이 일어나는 시기와 시기 아님을 아는 지혜이다.
숙명무애지(宿命無碍智)이니, 온갖 세계에서 지난 세상에 머물던 일을 기억하는 지혜이다.
천안무애지(天眼無碍智)이니, 천안통의 지혜이다.
삼세누보진지(三世漏普盡智)이니, 누진통의 지혜이다. 모든 번뇌가 다한 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을 배우며, 중생의 귀의할 곳이 되는 등 10가지 법 배우기를 권하고 있다.
(2) 치지주(治地住)는 심지(心地)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10심으로 자기 마음자리를 다스리니, 보살이 중생들에게 10가지 마음을 낸다. 이른바 이익심․대비심․안락심․안주심․연민심․섭수심․수호심․동기심(同己心)․사심(師心)․도사심(導師心) 등이다.
(3) 수행주(修行住)에서는 10가지 행으로 일체 법을 관찰하여 수행한다. 즉 온갖 법이 무상․고․공․무아․무작(無作)․무미(無味)․이름 같지 않음〔不如名〕․처소가 없음〔無處所〕․분별을 여읨〔離分別〕․견실하지 않음〔無堅實〕을 관한다.
(4) 생귀주(生貴住)는 부처님 교법으로부터 나서 귀한 자리이다. 보살이 성인의 교법으로부터 나서 10가지 법을 성취하여 마음이 평등함을 얻는다. 10가지 법이란 영원히 부처님의 처소에서 퇴전하지 아니하며, 깊이 청정한 신심을 내며, 법을 잘 관찰하며, 중생과 국토와 세계와 업행과 과보와 생사와 열반을 잘 아는 것이다.
(5)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는 보살이 선근을 닦아 방편을 구족하는 자리이다. 보살이 닦는 선근은 모두 온갖 중생을 구호하며 내지 열반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6) 정심주(正心住)는 마음이 안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자리이다. 보살이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훼방하는 등 10가지 법을 듣고도 마음이 결정되어 흔들리지 아니한다.
(7) 불퇴주(不退住)는 보살이 부처님이 있다거나 없다는 등 10가지 법을 듣고도 마음이 견고하여 퇴전하지 아니하는 자리이다.
(8) 동진주(童眞住)란 동자와 같이 순진한 자리이다. 보살이 10가지 업에 머무는 자리이다. 즉 몸의 행〔身行〕과 말의 행〔語行〕과 뜻의 행〔意行〕이 잘못됨이 없고, 마음대로 태어나고, 중생의 갖가지 하고자 함〔欲〕과 해(解)와 계(界)와 업(業)과 세계의 성괴를 알고, 신통이 자재하고 다니는 데 걸림이 없다.
(9) 법왕자주(法王子住)는 법왕의 소행을 아는 왕자의 자리이다. 10가지 법을 잘 아니, 중생의 수생(受生)과 번뇌의 일어남과 습기가 상속함과 행하는 방편과 무량법과 위의와 세계차별과 전․후제(前後際)의 일과 세제(世諦)를 연설함과 제일의제 연설함을 잘 아는 것이다.
(10) 관정주(灌頂住)는 왕자가 관정식에서 왕위에 취임하는 것같이 보살이 10가지 지혜, 즉 일체종지를 얻어 주(住)의 최고 자리에 앉는다.
이러한 십주행은 십지행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 십지에 포섭된다. 별행경에서는《십주경》,《십지경》은 함께 번역되어 쓰이고도 있다.
16. 범행품
〈범행품〉에서는 특히 염의 출가자를 위한 보살행으로서 10종의 관행법이 설해지고 있다.
정념천자가 법혜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떻게 해야 범행이 청정하여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에 이르리이까? "
법혜보살이 이러한 정념천자의 질문을 받고 출가자가 범행을 닦아 위없는 보리도에 이르는 10가지 법을 설하고 있다. 즉 보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 10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10가지 법이란 몸〔身〕과 몸의 업〔身業〕․말〔語〕․말의 업〔語業〕․뜻〔意〕․뜻의 업〔意業〕․불(佛)․법(法)․승(僧)․계(戒)이다. 이에 대하여 무엇이 범행인가 관찰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냄새나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내지 송장일 것이다. 만일 신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앉는 것, 눕는 것, 가는 것 등일 것이다.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음성․입술․고저 등일 것이며, 만일 말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인사․칭찬․헐뜯는 것일 것이며, 내지 만일 계가 범행이라면 범행이란 계단 아사리 삭발 걸식 등일 것이다.
이렇게 관찰하면 몸에 취할 것이 없고 닦는 데 집착할 것이 없고 법에 머무를 것이 없으며 업을 짓는 이도 과보를 받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소유인가? 이렇게 관찰하면 범행이란 법은 얻을 수 없으며,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하며, 뜻에 집착이 없으며, 내지 부처님 법이 평등함을 아는 까닭에 청정한 범행이라 한다.
만일 보살들이 이렇게 관행하여 모든 법에 두 가지 견해〔二解〕를 내지 아니하면 온갖 부처님 법이 빨리 현전해서 처음 발심할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온갖 법이 마음의 성품임을 알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이를 말미암아 깨닫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여기서도 부처님의 처비처지(處非處智) 등 10법을 닦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17. 초발심공덕품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헤아릴 수 없어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니, 발심함으로써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임을 법혜보살이 제석천왕의 질문에 따라 점증적으로 설하고 있다.
18. 명법품
십바라밀(十波羅蜜)로 보살행을 청정하게 하고 있다.
법혜보살이 정진혜보살의 질문에 의해 보살로 하여금 10가지 바라밀법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케 함을 설하고 있다.
십바라밀은 이 명법품에서만 설한 것이 아니라《화엄경》의 보살행 전체를 십바라밀로 포섭할 수 있다. 따라서 화엄보살행을 다 포섭하는 십지보살행도 역시 십바라밀로 묶어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10행에서 다시 한 번 언급하기로 한다.
제8강 화엄경의 내용 -제4회 4품
제4회 4품에서는《화엄경》의 유심설과 보살의 십바라밀행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19. 승야마천궁품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야마천궁으로 향하셨다. 야마천왕이 멀리서 보고 즉시 보연화장 사자좌를 만들고 맞이하였다. 천왕은 지난 세상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 심은 것을 생각하고 불공덕과 야마천궁의 길상함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20. 야마궁중게찬품
상주안불 친혜(親慧)세계의 공덕림(功德林)보살을 위시하여 시방불세계의 수많은 보살들이 부처님 계신 곳에 모여들자, 세존께서 두 발등으로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셨다. 여기에 모여든 보살이 수풀 림(林)자가 돌림자가 된 것은 보살의 공덕행이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쌓임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공덕림보살을 위시한 열 분의 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게찬하였다. 이중에 정진림보살이 부처님의 차별없는 평등한 대지혜를 말씀하는 내용 가운데 수를 헤아리는 비유가 나온다. 이는 후에 화엄교학에서 상입상즉을 설명하는 ''''수십전유(數十錢喩)''''로 체계화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계연기설에서 살피기로 한다.
그보다 여기서는 각림보살의 게송을 살펴보겠다. 그 10게송은 유심게(唯心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림보살은《육십화엄》에서는 여래림보살로 번역되어 있다.
유심게에서는 마치 그림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다고 하여, 마음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다. 후반부 다섯 게송만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心如工畵師
모든 세간을 그려내나니 能畵諸世間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五蘊實從生
무슨 법이든 짓지 못함이 없도다. 無法而不造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如心佛亦爾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如佛衆生然
마땅히 알라, 부처와 마음이 應知佛與心
그 체성 모두 다함이 없도다. 體性皆無盡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若人知心行
아는 이가 있다면 普造諸世間
이 사람 부처를 보아 是人卽見佛
부처의 참성품 알게 되도다. 了佛眞實性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心不住於身
몸도 마음에 있지 않으나 身亦不住心
불사를 능히 지어 而能作佛事
자재함이 미증유로다. 自在未曾有
만일 어떤 사람이 若人欲了知
삼세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應觀法界性
모든 것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로다. 一切唯心造
《화엄경》의 대의를 ''''통만법 명일심''''이라고 이해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심 또는 유심사상은《화엄경》의 핵심 내용의 하나가 된다.《화엄경》의 일심사상은 이 유심게와〈십지품〉의 제6현전지 그리고〈여래출현품〉의 10종 성기심(性起心)이 그 주요 소의처가 된다.
〈십지품〉에서는 삼계에 있는 것이 오직 한마음〔三界所有 唯是一心〕이라 하고 있다.〈여래출현품〉에서의 마음은 여래심이며 여래성기심이다. 여래심은 10종으로 교설되어 있다.
이곳〈야마궁중게찬품〉의 유심게에 보이는 일심은 오온과 세간을 만들어내는 일심이다. 위의 두 번째 게송은《육십화엄》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如心佛亦爾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如佛衆生然
마음과 부처와 중생 心佛及衆生
이 셋이 차별이 없다. 是三無差別
그리고 마지막 게송의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는 ''''마땅히 마음이 모든 여래를 짓는 줄 관하라〔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고 되어 있다. 여기서의 일심은 부처를 만드는 마음이므로 진심이다. 따라서〈야마궁중게찬품〉에서의 마음은 표면적으로는 진(眞)과 망(妄)에 통한다.
《화엄경》은 마음을 내세우는 모든 종파의 소의경전이 되어왔다. 마음을 망심으로 이해한 유식의 제8아뢰야식에 의한 뢰야연기와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인 여래장심에 의한 여래장연기의 소의경전도 되고 있다. 그러나 화엄종에서는《화엄경》의 일심을 여래장 자성청정심과 여래성기심으로 이해하여 여래성기심인 진여심이 그 체성이 되는 법계연기를 체계화시켰다.
그리하여 화엄가들은 이 일심을 연기해서 나타난 일체 존재인 일진법계의 체로 보고, 만덕을 구족한 일심이며 원융한 일심이며 만유를 다 포섭하는 일심으로 보았다.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의 일심은 무애평등의 일심인 것이다.
마지막 게송인 ''''일체유심조''''는 우리나라에서《화엄경》의 수많은 게송 가운데 제일 으뜸가는 게송으로 수지되어 왔다. 아침 쇠송에 ''''화엄경제일게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華嚴經第一偈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어서 이 게송은 지옥고를 타파한다는 뜻에서 쇠송에서는 파지옥진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도《청량소초》에 의하면《찬령기》에 소개되어 있는 전설적인 얘기와 함께 잠시 수지하여도 능히 지옥고를 파한다고 하였다. 즉, 문명(文明) 원년에 왕명간(王明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 착한 일을 한 것 없이 병환으로 죽게 되어 두 사람에게 인도되어 지옥문 앞에 끌려갔다. 지옥문 앞에 한 스님이 있음을 보았는데 지장보살이라 하였다. 그 스님이 왕씨에게 게송 하나를 외우게 하였는데 바로 이 일체유심조 게송이었다. 그리고 이 게송을 외우면 지옥고까지 배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씨가 이 게송을 외우고 들어가 염라왕을 만나보니 염라왕이 묻기를 무슨 공덕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왕씨가 답하기를 오직 한 사구게만 수지하였다고 하고 좀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니 염라왕이 더 살다오라고 내보냈다. 왕씨가 이 게송을 외울 때 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었던 사람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왕씨가 3일 만에 소생하여 이 게송을 기억해서 외웠다. 그리고 공관사(空觀寺)의 승정(僧定)법사에게 이 일을 말하니 법사가 그 게송이 바로《화엄경》의〈야마궁중게찬품〉에 나오는 이 게송임을 밝혀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일체유심조 게송은《화엄경》신앙의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야마궁중게찬품〉에 이어서〈십행품〉이 나온다. 그러므로
〈십행품〉의 10행은 일체유심조의 경계임을 추정할 수 있다.
21. 십행품
공덕림보살이 선사유삼매에 들었다가 깨어나 보살의 10가지 행을 말씀하였다. 즉 즐거운 행〔歡喜行〕․이로운 행〔饒益行〕․어김이 없는 행〔無違逆行〕․굽힘이 없는 행〔無屈撓行〕․어리석거나 어지러움이 없는 행〔無痴亂行〕․잘 나타나는 행〔善現行〕․집착이 없는 행〔無着行〕․얻기 어려운 행〔難得行〕․법을 잘 설하는 행〔善法行〕․진실한 행〔眞實行〕 등 십행(十行)이다.
이 십행에서는 특히 보살의 십바라밀행을 차례로 교설하고 있다. 십주에 머무른 보살이 자타를 이롭게 하는 만행을 일으키니 십행이 교설되고 있다. 이 보살행은 일체유심조의 경계이면서, 십바라밀이 근본이 되어 모든 행을 포섭하고 있다. 이처럼 공덕림보살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보살행은 바로 공덕을 쌓아가는 공덕행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화엄의 보살도는 십바라밀에 다 포섭된다. 십주의 갖가지 보살행은 십바라밀을 체로 하며, 십행은 십바라밀 그 자체이며, 십회향 역시 초회향이 바라밀행이며 다른 회향에서도 바라밀행이 그 기저가 되고 있다. 십지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토대 위에 일불승(一佛乘)적 보살도가 가장 잘 시설되면서 십바라밀행이 펼쳐지며, 아울러 각지에 십바라밀을 차례로 치우쳐 닦도록 역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