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부여 금강에 복어가 알까러 올라올 때는 강가 계곡에 철쭉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이다. 어릴 적 원우 형을 따라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나무 한 짐 해놓고 , 바위틈 샘물로 목을 축이고 일어서면, 주위가 온통 철쭉꽃 천지였다. 원우 형으로부터 이 꽃을 따먹지 말라는 당부를 들어야 했고, 나는 이 철쭉이 진달래와 무엇이 다른가 그에게 묻고 또 묻고 하였다. 그러면 형은 진달래는 이른봄 잎이 나오기 전에 피고 따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늦은봄 잎이 나온 후에 꽃이 피고, 꽃잎은 더 크고 더 붉고 독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따먹으면 죽으니까 따먹지말라는 당부는 몇번씩이나 강조하였다. 그 시절 들리는 엉터리 소문으로는 복어가 금강물을 따라 올라오다가 강가에 핀 철쭉꽃을 따먹어서 독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네 누구누구네가 복쟁이[복어] 먹고 죽었다는 소문이라도 날라치면, 나는 어린 소견에 철쭉꽃은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꽃이구나 하고 멋대로 상상하였다. 복어가 독이 많이 든 철쭉꽃을 따먹었을 것이고, 그 독꽃을 먹은 복어를 사람이 먹어서 죽었을 것이라고 아무렇게나 추리하면서, 철쭉꽃을 증오까지 하였다.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가진 철쭉꽃이지만 이와는 반대쪽으로 간 나의 어릴 적 선입견은 지금도 조금은 남아 있다.
개나리 벚꽃 산수유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우리 아파트 정원에, 오늘 비가 내리자 감췄던 얼굴을 내밀고 철쭉꽃이 빨간 입술을 벌렸다. 온통 철쭉꽃 세상이 되었다. 연초록 잎새들을 방석으로 깔고 앉아 , 하늘을 향해 날숨을 몰아 쉬면서 늦봄의 여흥을 흔들어댄다. 지난 겨우내 그 추위 속에서도 가녀린 가지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황홀한 축제를 준비했나보다. 시절을 어기지 않는 이 자연의 섭리 앞에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고개가 숙여지고 옷깃이 여며진다. 타오르는 꽃떨기들이 펼치는 군무와 외치는 함성으로 정원이 한바탕 시끌벅쩍이다. 그 소리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절정의 탄성이고, 복어 먹고 죽은 원귀의 원성이 언뜻언뜻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귀를 크게 열어 이 소리들을 주워 담으니 어릴 적 철쭉꽃 피던 고향 뒷산이 생생히 다가온다.
우리집에서 머슴살다 초가삼간 마련하여 제금나서, 임천읍내 회관 식당집 맏딸에게 장가들고, 고단하게 살다가 딸만 다섯 남겨둔 채 세상 떠난 창순이가 생각난다. 오십나이까지 고생 고생하다가 철쭉꽃 필때 나 먼저 간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뜻의 유서를 써 놓고 농약을 마셔버린 것이다. 그에게 이 세상살이는 그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 그의 짐을 조금도 거들어 주지 못하고 서울의 건조한 일상에 갇혀 무심하게 소일했던 나의 체통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이 미안한 마음은 언제나 가실까?
또 하나 요새 가끔 만나는친구 얘긴데 이 친구 왈 봄날 철쭉꽃 필 때 저세상으로 갔으면 한다고 한다. 철쭉꽃 필 때는 따스한 계절이니 주검을 치우는 자식들 고생 안시키고, 문상객에게도 엄동설한보다는 폐를 덜 끼칠게 아니냐는 거다. 건성으로 들어도 울적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 무거운 짐 툭툭 털고 철쭉똧 필 때 그 꽃길따라 저세상 가는 것도 웰다잉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만간 그 친구를 만나면 이왕이면 이런 슬픈 얘기는 집어치우고, 이제는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 세상 우리 얘기로 우리의 만남을 채우자고 해야겠다. 철쭉꽃의 꽃말처럼 사랑의 즐거움을 만끽할 우아한 5월이 앞에 바짝 다가와 있음도 상기시켜 줘야지.
첫댓글 철쭉의 향기가 새록 새록 전해오는 듯 합니다...고향의 풍경이 은은히 다가오는 느낌 입니다. 생생한 향기가 가득한 글 감사
철쭉 말이 이렇게 긍정적인줄은 오늘 알았습니다. 철쭉 필때 떠날 생각 말고 ,사랑의 거움은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봐야 겠습니다, 그래도 철쭉 피는 시절에 가면 좋겠지요,
유소년 시절의 고운 꿈, 아린마음, 그리고 소중했던 철쭉, 진달래 꽃잎의 연분홍 빛 사연까지 금강변 야산의 고향을 그리며 쓴 당신의 절절함이 배어있는 짧은 글에서, 봄철, 함께하던 고향 사람들이 문둑 문득 떠오릅니다.
이 시간 나도 마음만은 그 길로 동행합니다 -----<손때 묻은 물건이 아름다운 것은 손 때 묻힌 사람의 간절함이 거기 묻어 있기 때문이다>---안도현.
철쭉이 물오른 한쪽 곁에 선 목련을 보내며 다시한번잎을 만져본다. 내겐 꼭 이 같이 느껴질때가 많다. 상여에 매다는 하얀 이 같이. 진래가 필때는 추워서 철쭉이 필때 가고 싶다던 친구가 요즈음은 아무 말을 안한다. 나도 너도 우리가 다 여행이 끝나가는 자락에 와 있다는 생각에 흐드러지게 피는 이 의 계절에 그래서 우린 슬프다.
어렸을 땐 진래와 철쭉이 넘 닮아서 원망스러웠다.먹고 싶어서다. 그것만 먹었나 땅속의 메싹,칙뿌리등등.래는 흙도 안 묻고 색깔이 미각을 자극하기에 충분.그러고 보니 우린 이미 시절 부터 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닦았던 것 같다.우리집 밭에 몇년간 예쁘게 피던 철쭉이 지난 겨울 얼어 죽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려고 어제 가지를 자르고 장례지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쥔을 잘 만나야 하는거지.
땅속의 먹거리 보다 진
온 산천 방방곡곡에 요염하게 피어 있는 철쭉 정말 진해유 진해서 칠푼이 연약한 맘을 몽땅 뺏어가유
초록 잎에서 솟아나는 진홍색 철쭉꽃은 찔레꽃 만큼이나 고향 산천을 생각나게 합니다.
봄비 내리는 촉촉한 오늘 정감어린 포근한 글 떨어져 누운 꽃으로 온통 하얀 꽃 길을 걷게 하네요.
철쭉예찬, 감칠맛나는 솜씨로다. 복쟁이 머슴 맏딸 농약..... 어휘들이 적절히 섞여 흥미를 북돋우고.감사
개량에 변신을 거듭한 수 많은 아류의 철쭉! 그 本鄕이 성흥산(?) 자락인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창순이는 농약대신에 차라리 철쭉꽃이나 따 멱지..... 감사
한 사건을 들여다보고 표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해 앞으로도 많은 작품이 기다려집니다.재미에
귀공의 글을 대하면 빨려 들어 가는듯 윤기가 조르르 흐르고 인생사가 곁들여져 읽을 수록 재미있고 유익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