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하류로 내려갈수록 돌들은 순해집니다. 모난 구석은 물살에 씻기고, 도드라졌던 성깔은 모래알에 갈려 나갑니다. 마침내 저항이라 부를 만한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돌은 비로소 평원석(平原石)이라는 이름으로 넓고 평평한 안식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그 매끄러운 곡선에서 ‘무소유’의 경지를 읽고, 모든 풍파를 지나온 노년의 평온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여기, 아직은 평원이 되기를 거부한 채 꼿꼿이 서 있는 돌 하나가 있습니다.
높이 솟은 지상은 영락없이 탑의 형상입니다. 정교한 층차를 갖춘 탑석(塔石)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거칠지만, 하늘을 향해 밀어 올린 그 기세만큼은 어느 석탑 못지않게 당당합니다. 탑은 본래 인간의 기도와 정성으로 자라나는 법입니다. 간절함이 쌓여 층을 이루고, 염원이 모여 끝을 세웁니다. 이 돌 또한 수만 년 동안 강물의 기도를 받아내며 제 몸을 세워왔을 것입니다. 그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은, 돌이 품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경건함 때문입니다.
돌의 살결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온통 패이고 씻긴 자국들입니다. 어느 하나 매끄러운 구석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거칠다 말하겠지만, 제 눈에는 이 도드라짐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생의 증거로 보입니다. 사실 이 거친 피부는 매끈한 평원석에 비하면 오히려 젊다는 표식입니다. 우리네 삶 또한 그러하지 않습니까. 한창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누구나 제 안의 울퉁불퉁한 자아를 앞세워 세상과 부딪칩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파인 곳도 튀어나온 곳도 차츰 마모되어 뭉글뭉글해집니다.
이 수석의 나이를 짐작해 본다면, 아마도 쉰 고개를 넘어선 장년(壯年)쯤일 것입니다. 많은 것을 이루어 키는 삐죽이 솟았으나, 그만큼 쓰고 매운 사연도 깊이 박힌 나이입니다. 인생의 단맛보다 쓴맛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것을 견뎌낸 흔적들이 훈장처럼 몸 여기저기에 도드라져 있는 시기입니다. 노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시퍼런 젊음으로 보이고, 청년들의 눈에는 아득한 완숙의 경계로 보이는, 바로 그런 장년 말입니다.
더 하류로 내려간다면 이 돌 또한 결국 뭉글뭉글해질 것입니다. 이토록 긴 체구는 중간에서 이미 닳아 없어졌을 것이고, 표면은 맨들맨들해져 어떤 무늬도 남지 않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사연 또한 함께 지워질 것입니다. 세월이 쓸고 간 자리에는 그저 평평한 평원 하나만 남을 뿐입니다. 개성마저 깎여나간 그 평온함은 수석으로서의 가치는 지닐지언정, 치열한 삶의 냄새는 더 이상 풍기지 못합니다.
다행히 이 수석은 아직 장년의 자리에 멈춰 서 있습니다. 다 깎이지 않은 우툴두툴한 혈기가 이 돌의 자존심입니다. 나무로 깎아 만든 좌대 위에 올라선 덕분에, 돌은 비로소 반듯하게 서서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발밑에 펼쳐질 시간을 함께 굽어봅니다. 구멍 숭숭 뚫린 몸 사이로 강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돌은 저마다의 사연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처 없는 매끄러운 삶을 꿈꿉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것은 고통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평원이 아니라, 상처를 딛고 우뚝 서 있는 탑의 형상이 아닐까요. 이 수석은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패인 자국은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기록이라고. 아직 뭉글뭉글해지지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나로서 존재한다고.
좌대 위에 서 있는 이 ‘장년의 돌’을 바라보다가, 나 또한 내 안에 아직 닳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세월에 모두 씻겨 평원이 되기보다, 저마다의 사연을 몸에 새긴 채 한동안은 이렇게 서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년이라는 자리는, 바로 그런 망설임과 버팀이 함께 놓이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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