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매력 최 건 차
여름 더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산속의 계곡을 그리게 된다. 사계절, 웬만한 추위나 더위를 가리지 않는 하이킹 마니아들도 이런 무더위에는 숲과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트레킹한다. 계곡에는 골짜기의 물들이 모여 암벽을 타고 쏟아져 폭포와 소沼가 생겨 밤이면 선녀들이 멱을 감을 것 같다. 물은 암반 사이를 흘러 오밀조밀하게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낸다. 거기에는 버들치와 송사리들이 살고 더 넒은 곳은 천연수영장이 되어 피서객들을 부르고 있다.
국립공원 일부와 상수도 보호구역의 계곡에서는 물속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상수도와 관련이 없는 지방의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에서는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일부 서민들은 여름 물놀이에 적당한 산간의 계곡을 찾게 된다. 산속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비길 바가 아니다. 신선함으로 더위는 물론 마음속까지도 시원하게 해준다.
유년 시절 나는 여름이면 탐진강 상류 냇가와 계곡에서 멱을 감으며 자랐다. 냇물에서 징거미와 모래 속에 반쯤 숨어있는 모래무지를 잡고, 계곡에서는 땅벌에 쏘이면서 산딸기와 다래 으름을 따 먹고 가재를 잡으며 놀았다. 소년 시절에는 부산 영도 2송도와 건너편 1송도가 물놀이터였고, 가끔은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원정을 다녔다. 20대 해운대에서의 군대생활은 동백섬을 아지트로 삼고, 해수욕장을 앞마당처럼 ‘장산萇山’계곡을 트레킹하면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섭렵했다. 미8군 카투사 시절, 대구 캠프핸리에서는 여름철 주말이면 포항 해수욕장의 미군 휴양소에서 한여름을 즐겼다.
늘 냇가나 바다에 친숙했는데 수원에 살면서 패턴이 산으로 바뀌었다. 바다는 가끔이고,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연중 산행으로 한여름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계곡물에 풍덩 빠져 멱을 감고 더위를 식힌다. 수년 전 지리산 구룡계곡을 찾았을 때였다. 가파른 암벽을 타고 폭포수처럼 세차게 흐르는 물살에 간신히 붙어서 아슬아슬하게 멱을 감았다. 그리고 엄청 더운 어느 중복 날 열두폭포로 유명한 포항 내연산에서 하이킹을 했다. 물가에 접한 노송들이 아름다운 고찰 보경사를 지나니, 지리산을 무대로 한 빨치산 남부군 영화를 촬영했다는 안내문이 있다. 산세와 계곡이 지리산 못지 않겠구나 싶었다. 정상을 향해 한참을 오르는 중인데 폭염이 매우 심하다며 하산하라는 방송이 들려 아쉽게도 ‘문수봉’까지만 오르고 말았다.
나 혼자 물가의 나무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고 물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깊은 계곡물에 사는 물고기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잇감으로 여겨서인지 크고 작은 놈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입질해대는 통에 간지러움으로 특별한 호사를 누렸다.
2023년 8월 15일엔 우리 서수원신협 산악회에서 치악산 세렴폭포가 있는 계곡을 찾아 물놀이를 했다. 그리고 올여름에는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을 트레킹 하고서 모두가 물속에 뛰어들어 더위를 날리기도 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생긴 웅덩이에는 큼직한 버들치와 송사리들이 우글대고 있어 매운탕 생각이 간절하다며 군침을 삼켰다.
산행은 여행으로 오르고 내리는 삶의 여정이다. 전국의 유명산 계곡을 찾아 트레킹을 하며 옥같이 흐르는 계곡물에 멱을 감을 때면 유소년 시절의 동심에 젖는다. 내가 체험해 보기로는 지리산 구룡계곡, 치악산 세렴폭포계곡, 설악산의 십이선녀탕계곡, 비선대계곡, 수렴동계곡은 경관이 수려하고 규모가 대단했다. 포항 내연산의 열두폭포계곡, 문경 대야산 용추계곡, 양평 용문산계곡도 괜찮은 곳이다. 해운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장산 바다 쪽 계곡에는 낙차가 큰 폭포가 있어 수심이 깊은 소沼와 바로 위에 폭포사라는 절이 있다. 그리고 청송 주왕산에는 주왕紂王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는 계곡이 시선을 압도하지만, 물속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쉬운 곳이다.
울진 매봉산을 다시 찾고 싶다. 금강송지대를 지나 정상에 올라 하산하면서 골짜기에 설치되어 있는 세계의 유명한 열두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 다리들을 다 거쳐서 내려오면서는 노천온천수에 발을 씻을 수가 있어 매력이 넘치는 산 계곡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가보았다. 높고, 넓고, 크고, 깊은 골짜기의 길이가 엄청난 계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용맹스러운 인디언들은 멸족당했거나 사라지고, 순해 빠진 한 족속만 남아서 그랜드캐니언을 지키며 코로라도 주정부의 보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맥스 화면으로 그 광활함을 보았다. 南호주 아들레이드(Adelaide)에 갔을 때는 호주 국적 시민으로 현지에 사는 아들의 안내로 모리알타(Morialta)산을 찾았다. 높은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잠자는 코알라와 올리브, 무화과가 야생으로 익어가는 둘레길과 계곡을 아내와 함께 트레킹했다.
2021년 여름에는 딸이 사는 바이킹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두 주간 여행했다. 최근에 폭발한 ‘파그라달스’라는 화산을 트레킹했다. 시뻘건 불길이 홍수처럼 흘러서 굳어져 있는 계곡에서는 아직도 열기가 느껴졌다. 검은 갱엿 같은 거대한 용암이 떡 반죽처럼 펼쳐져 있어 덩어리를 몇 개 챙겼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아이슬란드인들이 즐겨 찾는 ‘예이샤’산을 외손자 두 녀석과 함께 한국인 최초로 정상에 올라 인증함에 나의 저서 ‘산을 품다’을 남기고 왔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바로 그림처럼 펼쳐진 푸른 잔디와 웅장한 계곡, 거대한 폭포들은 눈이 시리도록 환상적이며 아름다웠다. 202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