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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새해 들어 벌써 2번째 주말을 맞이하게 된다. 약속시간에 맞춰 고려궁지로 나갔다. 시에문학회 회원님들께서 강화도로 문학기행을 오신다 해서 1주일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시인과 작가의 가슴 속에는 남들이 모르는 어떤 세계가 있다. 그런 훌륭한 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나는 요즘 한 이야기를 놓고 컴퓨터 앞에서 계속 씨름중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나의 세계가 아직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바깥바람을 쏘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문학기행을 같이 하게 될 회원님들께서 15시 40분경 고려궁지 앞에 모였다. 영월, 구미, 영주, 영동 등지에서 오시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많이 늦은 것은 아니다. 표를 끊고 바로 고려궁지로 들어갔다.
고려궁지에서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님들. 빨간 옷 입으신 분은 우리 회원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몽골이 침입했을 때 고려 제23대 왕 고종이 장기간 항전하기 위해 1232년에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그때 고종이 강화내성을 쌓고 그의 거처로 작은 궁전을 지었던 것이 지금의 고려궁지이다. 이후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왕을 대신하여 통치한다는 차원에서 유수부를 두었다. 강화도가 군사적으로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현재 강화도에는 외부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돈대(초소)가 53곳 있다.
조선조 때 관아로 쓰이던 명위헌 앞에서
우리는 문화해설사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듣고 다음 탐방지인 평화전망대로 향했다. 강화도는 휴전선 바로 아래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으로 요충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3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전방으로 움직였다. 강화읍에서 15분 남짓 북쪽으로 들어가자 민통선 안내판과 함께 해병대 병력이 통행 차량을 통제하는 제11검문소가 나왔다. 검문소에서 주민증을 보여주고 평화전망대에 간다고 하였더니 시간이 늦어서 관람불가라 한다. 그대로 물러서는 것은 문학인의 자세가 아니다. 내가 강화 주민인 것을 강조하며 지인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해병대 병사가 마지못해 그러라고 한다.
평화전망대에서. 좌로부터 박은숙님, 권자미님, 김용길님, 박경림님.
평화전망대에서. 좌로부터 양문규님, 강태규님, 권자미님, 박은숙님, 박경림님, 서주영님, 김찬옥님, 한소운님, 권위상님, 고철님, 김용길님, 유승도님, 황구하님.
오전에 눈이 조금 뿌려졌고 지금은 날이 흐려 있다. 북한땅을 보기 위해서 평화전망대에 가는 것인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육지 끝에 길게 설치되어 있는 검은 철책선만 보았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분단의 현장에 와 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전망대 주차장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이동을 했다.
바다를 막아서 형성된 망월평야.
들판은 눈에 덮여 있었다. 눈은 농사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기도 한다. 우리는 바다를 메워 형성된 드넓은 망월평을 달려 강화도 서북쪽에서 가장 큰 장성돈대(망월돈대)에 도착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옅은 구름 속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 위로 낙조가 떨어져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망월돈대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영주작가회의 지부장이시고 수의사계의 권위자이신 강태규님.
영주에서 오신 권자미님.
좌로부터 권자미님, 황구하님, 박은숙님, 한소운님.
구미에서 오신 박은숙님.
잠시 사색에 잠긴 황구하님.
좌로부터 서주영님, 김찬옥님, 박경림님, 권위상님, 유승도님, 김용길님, 강태규님. 앞자리에 양문규님.
나는 일몰사진을 찍으려고 이곳에 수십 번 왔었다. 나의 졸작인 사진산문집 ‘갈대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의 표지 사진은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이곳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책에 쓰인 것은 딱 두 장뿐이다. 다 될 것 같지만 안 되는 것. 그게 사는 것인가보다.
우리가 1박한 펜션.
망월평을 달려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풀고 함민복님과 만났다. 그는 11시부터 와서 기다렸다고 한다.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펜션에서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이런 것을 싯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에이 아니겠지. 아무튼 그는 무던한 남자다.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외포리 포구로 갔다. 몇 군데 탐색하다가 들어간 곳이 외포횟집이다. 통성명을 하고 술 순배가 돌아가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얼마 후 함민복님의 아내 박영숙님이 왔다. 인삼가게 문을 닫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다. 강태규님께서 강원도산 약닭을 12마리나 가져왔다. 술안주로 4마리를 삶았다. 인삼을 듬뿍 넣고. 얼마 후 닭백숙이 완성되었다. 모두가 닭고기가 맛있다고 한마디씩 한다. 육질이 질기지 않았고 퍽퍽하지도 않았으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좌로부터 양문규님, 함민복님, 박영숙님, 김용길님.
곡주를 권하시는 스님 같은 고철님.
시낭송하시는 박경림님.
유승도님과 황구하님의 듀엣 공연.
좌로부터 특별초대손님 사진가, 한소운님, 유승도님, 권자미님.
열창하시는 서주영님.
좌로부터 김찬옥님, 서주영님, 양문규님, 함민복님, 박영숙님.
시낭송하시는 유승도님.
소녀 같은 한소운님, 박경림님.
새해 둘째 주 토요일 밤이 깊어가고 있다.
이런 자리라면 으레 그렇듯이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시낭송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노래하는 시인이 왔고 또 얼마 후에는 이문재님도 왔다. 이문재님은 근처에서 행사를 치르던 중 잠깐 들렀다. 그는 숭어회를 두 접시 가지고 왔다. 이런 것이 다 정이다. 밤이 무르익어 갔고 나는 13일 01시에 펜션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연탄불을 갈고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08시다. 4시간쯤 잔 것 같다. 세수를 하고 펜션으로 갔다. 모두가 아침식사로 닭죽을 먹고 있었다. 나도 죽 한 그릇을 받았다. 그것을 먹으면서 닭이 없었으면, 아니 강태규님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닭죽은 일류 요리사의 솜씨 못지않게 맛있었다. 생닭 3마리가 남았는데 그것이 내 몫이 되었다. 공연히 횡재를 했다. 하긴 가끔 이런 일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나지.
펜션 앞 도로에서.
다음 여정을 위해 10시에 펜션에서 출발했다. 승용차 3대가 강화도 관광개발 차원에서 만들어진 해안도로를 타고 달려갔다. 25분 뒤에 마니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정수사에 도착했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창건하여 정수사(淨修寺)라 했는데 조선 세종 8년(1426)에 함허대사가 개축할 당시 사찰 한편에서 맑은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 이곳 대웅보전은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었는데 문짝이 홍살문이라 하여 통나무 판에다 연꽃 무늬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정수사 주지 같은 고철님과 신도회장 같은 강태규님.
강태규님.
법당 앞에서 김찬옥님 합장.
법당 앞에서 한소운님.
정수사 약수터에서.
정수사 앞에서.
정수사에서 내려와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가 초지대교 인근에 있는 함민복님의 인삼가게로 갔다. 함민복님과 그의 아내 박영숙님이 나와 있었다. 박영숙님이 운영하는 인삼가게 상호는 <길상이네>이다. 예전에 같이 살던 개의 이름이 길상이었는데 그 개를 지금도 못 잊는다고 한다. 회원님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인삼과 인삼액과 하수오 등을 샀다. 함민복님을 보면 참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건네는 인삼액 1팩을 맛있게 먹었다. 안 줘도 되는데….
초지진 인삼센터 앞에서.
인삼가게 '길상이네' 풍경.
함민복님이 권위상님께 인삼액이 든 팩을 건네고 있다. 인삼팩을 모두에게 하나씩 주었다.
표정들이 다 부처 같다.
함민복님과 헤어지고 광성보로 향했다. 고려가 천도한 후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다.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해안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설치되었는데 1871년 미군이 쳐들어와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이 1976년에 복원되었다.
광성보 내 광성돈대에서.
이곳에는 안해루,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우리는 시간관계상 광성돈대만 보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차를 몰아 소설가 박광숙님 댁으로 갔다. 박광숙님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가입하여 유신반대운동을 펴다가 1979년 10월 초에 구속되었다. 그로 인해 교사로 있던 서울 명성여중에서 해직되었다. 감옥에서 일찍 출옥한 후 김남주 시인의 옥바라지를 했다. 김남주 시인은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1978년부터 남민전에서 활동하다 박광숙님이 구속될 때 같이 구속되었다. 징역 15년형을 받고 전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했는데 감옥에서 휴지, 은박지, 우유팩에다 시를 써서 박광숙님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 <진혼가><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수감생활 하던 중 9년이 지난 1988년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출소 후 박광숙님과 결혼하여 아들 ‘토일’을 낳았는데 췌장암에 걸려 투병하던 중 1994년 2월에 사망했다. 2006년 3월, 남민전 사건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되었고 박광숙님과 김남주 시인도 거기에 포함되어 명예회복이 되었다. 박광숙님은 2000년 3월에 복직되어 강화도 내의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8월에 정년퇴임했다.
박광숙님 자택 앞에서. 밤색 바지에 노란 스웨터를 입은 분이 박광숙님이다.
박광숙님을 뵙고 다시 한 번 <민주주의>와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이번 강화문학기행의 일정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강화 해안도로 80%를 달린 특별한 여행이었다. 언제 또 좋은 사람들과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마송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시에문학회 회원님들, 새해에 뜻깊은 결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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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디카 성능이 안 좋아서 해상도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원본 사진 필요하신 분 메일 주소 알려주십시오...
선생님, 강화도 여행 길잡이 해주시고 요모조모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강화도의 역사가 문학으로 숨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모두 제 이름 쿡 누르시고(guha3049@hanmail.net)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박 2일 강화도 함께 다녀온 강태규, 권위상, 권자미, 고 철, 김용길, 김찬옥, 박경림, 박은숙, 서주영, 양문규, 유승도, 한소운, 황구하님과 강화에서 유영갑 소설가, 함민복님,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온 이문재 시인, 이장근 시인, 박준 시인 등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특히 고 김남주 시인의 사모님 박광숙 소설가님을 뵐 수 있어 강화도 여행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강화도 여행 때 길 안내 등 모든 일정을 함께해주신 유영갑 소설님께 거듭 감사인사 올립니다.
양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게 되었네요.
유영갑 선생님, 처음과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강화도 문학기행 오래 남을 것입니다.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시에'님들과 어우러진 강화는 또 다른 의미의 풍광을 지닙니다.
사진으로 얼굴 많이 익히고 있습니다.*^^
이성혜님, 다음 모임에는 같이 하시지요.
경기,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시에문학회 회원님도 함께했으면 좋을 것을, 아쉬움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서로 나누고 베푸는 삶의 양식 대로 문학 또한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문학기행, 유선생님의 사진과 글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꼭 오시는 줄 알았는데 바쁘셨나봅니다.
다음에 뵈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일정을 따라가 봅니다.. 다들 행복해 보이시는군요.. 덕분에 마음은 함께 기행하였습니다.. 다음에 강화도 갈 기회가 또 있겠지요.. 늘 건강하세요^^
이주언님 안녕하세요.
오시는 줄 알았는데...
다음에 뵈어요.
유영갑 선생님,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여행 안내와 더불어 좋은 사진, 좋은 글까지 두루 감사드리고 다시 또 이런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렵니다.
서주영님 반가웠습니다. 노래도 잘 들었구요...
유영갑 선생님 올리신 사진 보면서 다시 여행길을 되짚어 봅니다. 여러선생님들 만나 뵙고 즐거웠습니다 너무 일찍 안부 묻습니다만, ㅎㅎ 다 잘 돌아 가셨지요? 여러모로 따스한 날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다음에 또 뵈요...
유영갑 작가께서 안내해주신 강화도 문학기행은 코스도 좋았고, 겨울 강화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한 번 추진했으면 합니다.
여름 제외한 봄, 가을, 겨울 문학기행 기획도 괜찮을 듯합니다. 매화 필 무렵 하동 산청 문학기행 어떨까요.
권위상님은 망월돈대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네요.
부딪친 곳은 괜찮으신지요...
유영갑 작가님 제 이름까지 기억해 주시고 태어나 처음 걸음한 강화, 아직도 콩,콩 뛰는 가슴, 좋은 여행코스 감사드립니다
예쁜 사진두요~~~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 데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유영갑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사진 남겨 주시고 길잡이 해주시고 ..강화 여러번 여행한 곳이지만 같이한 일행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죠 설국속의 좋은 님들 상고대풍경,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같이 동행한 선생님들 모두 즐거웠습니다
한소운님 반갑습니다.
안개가 나무에서 꽃으로 바뀌는 그것이 상고대였군요.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답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