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남유다왕 여호와김 시절(기원전 609-598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포로이다.
제1차 포로 때 사로잡힌 인물이다. 대략 기원전 600년경으로 추정.
오늘 본문은 기원전 585년경에 바벨론땅에 일어난 일을 기록.
대략 다니엘이 바벨론땅에 정착한 지 약 15년 정도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때 다니엘은 출세했고 결혼도 했을 것이다.
본문에 금신상이 등장한다.
시기상으로 봤을 때, 네부카드네자르가 유다를 정복한 기념으로 제작된 동상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다니엘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니엘의 세 친구만 등장(12)
아마 이때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로서 해외 출장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
당일 금신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높이 30미터, 폭 3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금신상이었다. 아파트 10층 높이.
제막식에 바벨론 모든 정부관리들이 전원 참석했다.
아주 큰 행사였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참석했다. 이들은 지방 관리로 임명(2:49)
네부카드네자르는 참석한 인원들에게 금신상에 절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이를 어기는 인원들은 풀무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6)
이 풀무불은 금신상을 제조할때 사용되었던 도구로 추측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금신상에 절했다(7)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했다(12)
어떤 바벨론 사람이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네부카드네자르왕에게 참소했다(8)
"참소" 히) "잡아먹다" 영어) "denounce"(맹렬히 비난하다, 고발하다)
이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만 노리는 인물이 있다.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잡아 먹으려고 덤빈다.
이에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기회를 준다(14-15) 왕이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들은 왕의 호의를 거절한다.
17-18절을 읽자.
"저희가 믿는 하나님께서 활활 타는 풀무불속에서 저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17)
시제가 미래형이다.
17절은 이들의 기도제목이며 신앙고백이다.
기도제목은 일종의 바람이다. 기도는 바람을 말하는 행위이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자신들을 살려주실것을 기도했다는 의미.
바람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기도응답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신앙고백은 개인의 믿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대면한 고난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바벨론왕과 정부관리들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고백.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다음구절을 보자.
"비록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금 신상에는 절 할 수 없다"(18)
자신들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지 않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의미.
자신들의 신앙고백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의미.
"하나님은 자신들을 살릴 수 있으신 분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살리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한다는 의미"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는 믿음의 행위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 기도응답을 얻어내지 못했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는 급이 다른 믿음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가 우리를 죽이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라고 고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의 육체의 병을 치료하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질병을 고치시지 않더라도 우리의 믿음은 건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의 신체적인 결함을 고칠 수 있으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의 약함을 방치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쓰러져가는 우리의 사업과 가정을 다시 세울 수 있으신 분이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수년 아니 수십 년간 이루어달라고 간절히 구했던 기도제목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신가?
이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영적인 의문이 든다.
"하나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자?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하나님이 왜 자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는지?"
지금도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문들을 풀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라고 고백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의문을 보류해야 한다.
보류?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룬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의문을 나중으로 미루어야 한다.
문제 중에는 당장 해답을 파악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부모님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우리가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왜 이렇게 하시느냐고 질문하면 부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도 결혼해서 자식을 놔 봐야 알게 된다"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다가 이제야 그 심정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왜 자신들이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 하필 우리인가?"
궁금했더라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의문의 크기보다 신뢰의 크기가 더 컸기 때문이다.
예) 요한21장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제자들이 밤새도록 물질을 했지만 물고기를 잡지못했다.
새벽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주문했다.
이때 제자들이 의문을 보류했다.
"왜 오른편인가?" "왼편에는 던지면 안되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의문을 보류해라.
획신이 있으면 묻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