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때에 있은 일을 생각하라! -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2)
- 하나님께 은혜를 입음으로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인 노아 -
마태복음 24장 37-39절 /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6장 8-9절 /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 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한데, 그 사람들 가운데서 이런 사람이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얻었다”라고 하면서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다 자기 정욕대로 사는데, 그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데,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이 있은 것입니다. 노아가 그 사람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얻었다’는 표현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얻었다’는 것인데, ‘노아가 여호와의 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노아가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대하는 호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해지고 있는 것이 당대에 사는 사람들의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시는 말씀을 좇아 살게 해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많은 사람들을 따라 그들 속에서 파묻혀 사는 넓은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만 동행함에 있는 좁은 길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 창세기 6장 10절부터 전개되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노아에 대하여 그를 평가하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의 실상과는 대조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 절인 8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악한 죄성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이는 타락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은 노아에게는 그들과 대조되는 은혜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로 하여금 그 시대 사람들의 타락 상태로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에게서 입은 상태는 하나님 은혜 외에 다른 것에서 나왔다고 지적하는 것은 없습니다. 노아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 말뜻이 죄악된 상황에 자비를 베푸는 식의 의미는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에게서 입은 ‘은혜’라는 단어는 용서받지 못한 죄인에게 거주 주시는 자비로운 태도를 뜻합니다. 해서 노아 시대에는 사람이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음으로써 그를 말하기를 “의인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악할 뿐인 당시에 의로운 사람으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가 의로운 사람인 것은 그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될만한 ‘의’인 그의 의로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실로 말미암아서 이니,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구원에 대한 하나님 계획의 특이성에 따른 것으로, 그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보이게 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세상 앞에서 증거할 자로 삼고 계신 것입니다.
하여,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에 있었습니다. 이는 노아가 흠과 티가 보이지 않는 도덕적으로 완전(완벽)한 사람이라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음으로 삶 전체를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 됨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과거 그의 조상인 에녹이 보인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2-24) 라고 한 모습을 그대로 따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에 있었던 에녹, 그 세월이 그가 산 세월인 므두셀라를 낳기까지인 65년 세월에도, 그리고 그 후인 300년간 산 세월에도 365년에 계속되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세월 속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귀를 닫고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에 눈을 감고 마음은 완악함에 있었으나, 에녹은 자식을 낳고 그들을 장가보내고 시집보내고 하는 세월 속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가 아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원리를 따라 마치 한 몸을 이룬 부부처럼 하나님과 하나 됨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에 품은 것을 그 또한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가지신 생각을 그 또한 생각하며 따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는 순종하여 행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주를 지어 예비함에 있은 것이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노아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라고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