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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Khandha-vagga)
제22주제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제1장 나꿀라삐따 품
할릿디까니 경1(S22:3)
Hālidikān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마하깟짜나 존자는 아완띠에서 꾸라라가라의 빠빠타 산에 머물렀다.
2. 그때 할릿디까니 장자가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할릿디까니 장자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숫따니빠따』 「앗타까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버린 뒤 거처 없이 유행하며
마을에서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는 성자는
감각적 욕망들을 소멸시키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존자시여, 이처럼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어떻게 보고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4.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집에서 유행합니까?
장자여, 물질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속박되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느낌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식(지각)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형성의 요소는 의식의 집이요,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에 묶이는 것은 의식의 집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집에서 유행합니다.
5.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집 없이 유행합니까?
장자여, 물질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을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발생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느낌의 요소에 대한 …
인식의 요소에 대한 …
형성의 요소에 대한 …
의식의 요소에 대한 욕구, 탐욕, 즐김, 갈애, 집착과 취착, 그리고 그런 갈애와 사견이라는 마음의 감각장소와 여기에 대한 천착과 잠재성향들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집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집 없이 유행합니다.”
6.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거처에서 유행합니까?
형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소리의 표상이라는 …
냄새의 표상이라는 …
맛의 표상이라는 …
감촉의 표상이라는 …
법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거처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거처 없이 유행합니까?
장자여, 형색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소리의 표상이라는 … 냄새의 표상이라는 … 맛의 표상이라는 … 감촉의 표상이라는 … 법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는 것을 여래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거처 없이 유행합니다.”
註) 그런데 왜 여기서 다섯 가지 무더기들(오온)은 집이라 부르고 여섯 가지 대상들(육외처, 육경)은 거처라 부르는가? 욕탐의 강함과 약함 때문이다.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집과 거처는 비슷하지만 집은 자신이 항상 머무는 자신의 집을 뜻하고 거처는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욕탐은 안의 오온에 대해서 더 강하기 때문에 안의 오온을 집이라 한다. 욕탐은 밖의 대상들에 대해서는 더 약하기 때문에 밖의 대상들은 거처라 한다.
7.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마을에서 관계 맺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재가자들 가운데서 지내면서 기쁨을 같이 하고 슬픔을 같이 하며, 즐거운 일들을 즐거워하고 괴로운 일들을 괴로워하며,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자신이 그것에 몰두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마을에서 관계 맺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재가자들 가운데서 지내지 않고 지내면서 기쁨을 같이 하지 않고 슬픔을 같이 하지 않으며, 즐거운 일들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운 일들을 괴로워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자신이 그것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 관계 맺지 않습니다.”
8.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을 없애지 못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감각적 쾌락들에 대한 탐욕을 떠나지 못하고 욕탐을 떠나지못하고 갈증을 떠나지 못하고 갈애를 떠나지 못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들을 없애지 못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을 없앱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요탐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갈애를 떠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들을 소멸시킵니다.”
9.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기대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생깁니다. ‘미래에 이러한 물질이 있게 되기를. 미래에 이러한 느낌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인식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형성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의식이 있게 되기를.’이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기대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미래에 이러한 물질이 있게 되기를. 미래에 이러한 느낌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인식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형성이 되어 있기를, 미래에 이러한 의식이 있게 되기를.’이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기대하지 않습니다.”
10.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합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합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잘못된 도(수행)를 닦는 자이고 나는 올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주장해 오던 것은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법과 가르침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여기서 설명해보라.’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합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장자여, 여기 어떤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잘못된 도(수행)를 닦는 자이고 나는 올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주장해 오던 것은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법과 가르침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장자여, 이와 같이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11. 장자여, 세존께서 『숫따니빠따』 「앗타까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버린 뒤 거처 없이 유행하며
마을에서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는 성자는
감각적 욕망들을 없애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다투는 말을 하지 않노라.’
장자여,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알고 보아야 합니다.”
saṃyutta nikāya 22
1. nakulapituvagga
3. Hāliddikānisutta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āyasmā mahākaccāno avantīsu viharati kuraraghare papāte pabbate. Atha kho hāliddikāni gahapati yenāyasmā mahākaccān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mahākaccān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hāliddikāni gahapati āyasmantaṃ mahākaccānaṃ etadavoca: “vuttamidaṃ, bhante, bhagavatā aṭṭhakavaggiye māgaṇḍiyapañhe:
‘Okaṃ pahāya aniketasārī,
Gāme akubbaṃ muni santhavāni;
Kāmehi ritto apurakkharāno
,
Kathaṃ na viggayha janena kayirā’ti.
Imassa nu kho, bhante,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kathaṃ vitthārena attho daṭṭhabbo”ti?
“Rūpadhātu kho, gahapati, viññāṇassa oko. Rūpadhāturāgavinibandhañca
pana viññāṇaṃ ‘okasārī’ti vuccati. Vedanādhātu kho, gahapati, viññāṇassa oko. Vedanādhāturāgavinibandhañca pana viññāṇaṃ ‘okasārī’ti vuccati. Saññādhātu kho, gahapati, viññāṇassa oko. Saññādhāturāgavinibandhañca pana viññāṇaṃ ‘okasārī’ti vuccati. Saṅkhāradhātu kho, gahapati, viññāṇassa oko. Saṅkhāradhāturāgavinibandhañca pana viññāṇaṃ ‘ok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okasārī hoti.
Kathañca, gahapati, anokasārī hoti? Rūpadhātuyā kho, gahapati,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ye upayu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okasārī’ti vuccati. Vedanādhātuyā kho, gahapati … saññādhātuyā kho, gahapati … saṅkhāradhātuyā kho, gahapati … viññāṇadhātuyā kho, gahapati,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ye upayu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ok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anokasārī hoti.
Kathañca, gahapati, niketasārī hoti? Rūp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niketasārī’ti vuccati. Saddanimitta … pe … gandhanimitta … rasanimitta … phoṭṭhabbanimitta … dhamm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niket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niketasārī hoti.
Kathañca, gahapati, aniketasārī hoti? Rūp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iketasārī’ti vuccati. Saddanimitta … gandhanimitta … rasanimitta … phoṭṭhabbanimitta … dhammanimittaniketavisāravinibandhā kho, gahapati,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aniketasārī’ti vuccati. Evaṃ kho, gahapati, aniketasārī hoti.
Kathañca, gahapati, gāme santhavajāto hoti? Idha, gahapati, ekacco gihīhi saṃsaṭṭho viharati sahanandī sahasokī, sukhitesu sukhito, dukkhitesu dukkhito, uppannesu kiccakaraṇīyesu attanā tesu yogaṃ āpajjati. Evaṃ kho, gahapati, gāme santhavajāto hoti.
Kathañca, gahapati, gāme na santhavajāto hoti? Idha, gahapati, bhikkhu gihīhi asaṃsaṭṭho viharati na sahanandī na sahasokī na sukhitesu sukhito na dukkhitesu dukkhito, uppannesu kiccakaraṇīyesu na attanā tesu yogaṃ āpajjati. Evaṃ kho, gahapati, gāme na santhavajāto hoti.
Kathañca, gahapati, kāmehi aritto hoti? Idha, gahapati, ekacco kāmesu avigatarāgo hoti avigatacchando avigatapemo avigatapipāso avigatapariḷāho avigatataṇho. Evaṃ kho, gahapati, kāmehi aritto hoti.
Kathañca, gahapati, kāmehi ritto hoti? Idha, gahapati, ekacco kāmesu vigatarāgo hoti vigatacchando vigatapemo vigatapipāso vigatapariḷāho vigatataṇho. Evaṃ kho, gahapati, kāmehi ritto hoti.
Kathañca, gahapati, purakkharāno hoti? Idha, gahapati, ekaccassa evaṃ hoti: ‘evaṃrūp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vedan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saññ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saṅkhār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viññāṇo siyaṃ anāgatamaddhānan’ti. Evaṃ kho, gahapati, purakkharāno hoti.
Kathañca, gahapati, apurakkharāno hoti? Idha, gahapati, ekaccassa na evaṃ hoti: ‘evaṃrūp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vedan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saññ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saṅkhāro siyaṃ anāgatamaddhānaṃ, evaṃviññāṇo siyaṃ anāgatamaddhānan’ti. Evaṃ kho, gahapati, apurakkharāno hoti.
Kathañca, gahapati, kathaṃ viggayha janena kattā hoti? Idha, gahapati, ekacco evarūpiṃ kathaṃ kattā hoti: ‘na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si; ah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mi. Kiṃ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issasi? Micchā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paṭipanno. Pure vacanīyaṃ pacchā avaca; pacchā vacanīyaṃ pure avaca. Sahitaṃ me, asahitaṃ te. Adhiciṇṇaṃ te viparāvattaṃ. Āropito te vādo; cara vādappamokkhāya. Niggahitosi;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Evaṃ kho, gahapati, kathaṃ viggayha janena kattā hoti.
Kathañca, gahapati, kathaṃ na viggayha janena kattā hoti? Idha, gahapati, bhikkhu na evarūpiṃ kathaṃ kattā hoti: ‘na tvaṃ imaṃ dhammavinayaṃ ājānāsi … pe …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Evaṃ kho, gahapati, kathaṃ na viggayha janena kattā hoti.
Iti kho, gahapati, yaṃ taṃ vuttaṃ bhagavatā aṭṭhakavaggiye māgaṇḍiyapañhe:
‘Okaṃ pahāya aniketasārī,
Gāme akubbaṃ munisanthavāni;
Kāmehi ritto apurakkharāno,
Kathaṃ na viggayha janena kayirā’ti.
Imassa kho, gahapati,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evaṃ vitthārena attho daṭṭhabbo”ti.
saṃyutta nikāya 22
connected discourses on the aggregates
3. Haliddakani (1)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Venerable Mahakaccana was dwelling among the people of Avanti on Mount Papata at Kuraraghara. Then the householder Haliddakani approached the Venerable Mahakaccana, paid homage to him, sat down to one side, and said to him:
“Venerable sir, this was said by the Blessed One in ‘The Questions of Magandiya’ of the Aṭṭhakavagga:
‘Having left home to roam without abode,
In the village the sage is intimate with none;
Rid of sensual pleasures, without expectations,
He would not engage people in dispute.’
How, venerable sir, should the meaning of this, stated by the Blessed One in brief, be understood in detail?”
“The form element, householder, is the home of consciousness; one whose consciousness is shackled by lust for the form element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in a home. The feeling element is the home of consciousness … The perception element is the home of consciousness … The volitional formations element is the home of consciousness; one whose consciousness is shackled by lust for the volitional formations element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in a home.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roams about in a home.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roam about homeless? The desire, lust, delight, and craving, the engagement and clinging, the mental standpoints, adherences, and underlying tendencies regarding the form element: these have been abandoned by the Tathagata, cut off at the root, made like a palm stump, obliterated so that they are no more subject to future arising. Therefore the Tathagata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homeless. The desire, lust, delight, and craving, the engagement and clinging, the mental standpoints, adherences, and underlying tendencies regarding the feeling element … the perception element … the volitional formations element … the consciousness element: these have been abandoned by the Tathagata, cut off at the root, made like a palm stump, obliterated so that they are no more subject to future arising. Therefore the Tathagata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homeless.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roams about homeless.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roam about in an abode? By diffusion and confinement in the abode consisting in the sign of forms, one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in an abode. By diffusion and confinement in the abode consisting in the sign of sounds … the sign of odours … the sign of tastes … the sign of tactile objects … the sign of mental phenomena, one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in an abode.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roam about without abode? Diffusion and confinement in the abode consisting in the sign of forms: these have been abandoned by the Tathagata, cut off at the root, made like a palm stump, obliterated so that they are no more subject to future arising. Therefore the Tathagata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without abode. Diffusion and confinement in the abode consisting in the sign of sounds … the sign of odours … the sign of tastes … the sign of tactile objects … the sign of mental phenomena: these have been abandoned by the Tathagata, cut off at the root, made like a palm stump, obliterated so that they are no more subject to future arising. Therefore the Tathagata is called one who roams about without abode.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roams about without abode.
“And how, householder, is one intimate in the village? Here, householder, someone lives in association with laypeople: he rejoices with them and sorrows with them, he is happy when they are happy and sad when they are sad, and he involves himself in their affairs and duties.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is intimate in the village.
“And how, householder, is one intimate with none in the village? Here, householder, a bhikkhu does not live in association with laypeople. He does not rejoice with them or sorrow with them, he is not happy when they are happy and sad when they are sad, and he does not involve himself in their affairs and duties.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is intimate with none in the village.
“And how, householder, is one not rid of sensual pleasures? Here, householder, someone is not devoid of lust, desire, affection, thirst, passion, and craving in regard to sensual pleasures.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is not rid of sensual pleasures.
“And how, householder, is one rid of sensual pleasures? Here, householder, someone is devoid of lust, desire, affection, thirst, passion, and craving in regard to sensual pleasures.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is rid of sensual pleasures.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entertain expectations? Here, householder, someone thinks: ‘May I have such form in the future! May I have such feeling in the future! May I have such perception in the future! May I have such volitional formations in the future! May I have such consciousness in the future!’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entertains expectations.
“And how, householder, is one without expectations? Here, householder, someone does not think: ‘May I have such form in the future!… May I have such consciousness in the future!’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is without expectations.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engage people in dispute? Here, householder, someone engages in such talk as this: ‘You don’t understand this Dhamma and Discipline. I understand this Dhamma and Discipline. What, you understand this Dhamma and Discipline! You’re practising wrongly, I’m practising rightly. What should have been said before you said after; what should have been said after you said before. I’m consistent, you’re inconsistent. What you took so long to think out has been overturned. Your thesis has been refuted. Go off to rescue your thesis, for you’re defeated, or disentangle yourself if you can.’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engages people in dispute.
“And how, householder, does one not engage people in dispute? Here, householder, someone does not engage in such talk as this: ‘You don’t understand this Dhamma and Discipline…. ‘ It is in such a way that one does not engage people in dispute.
“Thus, householder, when it was said by the Blessed One in ‘The Questions of Magandiya’ of the Aṭṭhakavagga:
‘Having left home to roam without abode,
In the village the sage is intimate with none;
Rid of sensual pleasures, without expectations,
He would not engage people in dispute’—
it is in such a way that the meaning of this, stated in brief by the Blessed One, should be understood in detail.”
잡아함경 제20권
551. 하리경(訶梨經)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마하 가전연은 석씨(釋氏) 하리(訶梨) 부락의 정사22)에 있었다.
그 때 하리 부락의 장자는 존자 마하 가전연의 처소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존자 마하 가전연에게 아뢰었다.
세존께서「의품(義品)」에서, 마건제(摩?提)의 물음에 대답하신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체의 모든 흐름[流]을 끊고
그 흐름의 근원을 막고자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
모니(牟尼)는 칭찬하지 않네.
다섯 가지 욕심을 완전히 비우면
다시는 돌이켜 채울 일 없나니
세상 사람들과 다투어 말하는 것
끝끝내 다시금 하는 일 없으리.
존자 마하 가전연이시여, 이 게송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존자 마하 가전연이 장자에게 대답하였다.
눈의 흐름[眼流]이란, 안식(眼識)이 탐욕을 일으키면 안계(眼界)에 의지해 탐욕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흐름[流]이라 합니다. 귀[耳]·코[鼻]·혀[舌]·몸[身]도 마찬가지며, 뜻의 흐름[意流]이란, 이른바 의식(意識)이 탐욕을 일으키면 의계(意界)에 의지해 탐하는 의식[貪識]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흐름이라 합니다.
장자가 다시 존자 마하 가전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흐르지 않음[不流]이라 합니까?
존자 가전연이 장자에게 말했다.
이른바 안식(眼識)과 안식에 의해 인식되는 빛깔[色]에 의지해 사랑과 기쁨이 생깁니다. 만일 그것이 다하고 탐욕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사라지면 이것을 흐르지 않음[不流]이라 합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며, 뜻과 의식(意識)과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법(法)에 의지해 탐욕이 생깁니다. 만일 그것이 다하고 탐욕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사라지면 이것을 흐르지 않음이라 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이른바 눈[眼]과 빛깔[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셋이 화합하여 접촉[觸]이 생기며, 접촉을 인연하여 즐거운 느낌[樂受]·괴로운 느낌[苦受]·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 등의 느낌이 생겨, 이것에 물들고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흐르게 됩니다. 귀·코·혀·몸도 그러하며, 뜻[意]와 의식(意識)과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법(法), 이 셋이 화합하여 접촉이 생기며, 접촉을 인연하여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의 느낌이 생겨, 이 느낌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기쁨의 흐름이 생깁니다. 이것을 흐름의 근원[流源]이라 합니다.
어떻게 그 흐름의 근원을 막는가? 이른바 안계(眼界)가 마음 법[心法]을 취하면, 그 대상경계[境界]는 그를 얽어매고 부리게 됩니다. 만일 그것이 다하고 탐욕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사라지면, 이것을 그 흐름의 근원을 막는 것이라 합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며, 의계(意界)가 마음 법을 취하면 그 대상경계는 그를 얽어매고 부리게 됩니다. 만일 그것이 다하고 탐욕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사라지면, 이것을 그 흐름의 근원을 막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가까이 지내며 서로 칭찬하는 것이라 합니까?
속인[在家]과 출가자(出家者)가 서로 가까이 지내면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걱정하며,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괴로워하며, 행하는 모든 일을 모두 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까이 지내며 서로 칭찬하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라 합니까?
속인과 출가자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으며, 같이 기뻐하지도 않고 같이 걱정하지도 않으며, 같이 즐거워하지도 않고 같이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행하는 모든 일을 다 서로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서로 칭찬하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욕심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라 합니까?
다섯 가지 욕망을 말합니다. 안식(眼識)은 빛깔에 대해 사랑하고 좋아하는 생각을 자라나게 하여, 탐욕의 생각에 깊이 물들고 집착합니다. 이식(耳識)은 소리에, 비식(鼻識)은 냄새에, 설식(舌識)은 맛에, 신식(身識)은 감촉에 대해 사랑하고 좋아하는 생각을 자라나게 하여, 탐욕의 생각에 깊이 물들고 집착합니다. 그리하여 이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해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사랑을 여의지 못하며, 생각을 여의지 못하고 갈망을 여의지 못하면, 이것을 욕심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욕심을 비우는 것이라 합니까?
이른바 이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해, 탐냄을 여의고 욕심을 여의며, 사랑을 여의고 생각을 여의며, 갈망을 여의면, 이것을 욕심을 비우는 것이라 합니다. 또 나는 얽매임[繫着]과 부림[使]을 말하였는데, 그것은 마음 법[心法]을 다시 채우려는 것을 말합니다. 저 아라한(阿羅漢) 비구는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해 그 근본을 끊음이 마치 다라(多羅)나무 밑동을 베어낸 것과 같아서, 미래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다시 남과 다투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의품(義品)」에서, 마건제(摩?提)의 물음에 이렇게 게송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흐름[流]을 끊고
그 흐름의 근원을 막고자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
모니(牟尼)는 칭찬하지 않네.
다섯 가지 욕심을 완전히 비우면
다시는 돌이켜 채울 일 없나니
세상 사람들과 다투어 말하는 것
끝끝내 다시금 하는 일 없으리.
이것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게송의 뜻을 분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 하리 부락 장자는 존자 마하 가전연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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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팔리본에는 아반제국(阿槃提國) 환희산(歡喜山)의 구라라타정사(拘羅羅咤精舍)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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