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6. 08;20
입춘이 지났고 이틀 후면 우수(雨水)인데 기온은 여전히 영하권이다.
영하 7도라도 얼굴에 와 부딪치는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산길엔
나뿐이다.
목쉰 소리를 내며 능청스럽게 까악 대는 늙은 까마귀, 경박스럽게
울어대는 까치, 제법 목청이 큰 직박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벗어나자 이 시간이면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사람들이 설 명절연휴를 즐겁게 보냈는지 마스크를
썼어도 표정이 밝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길가 작은 공원의 산수유나무 꽃눈이 제법 부풀었고 매화나무 꽃눈도 많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목련의 동아(冬芽)도 커질 만큼 커졌구나.
지독한 혹한이 이어졌으니 냉각량(冷却量)은 충분하겠지.
충분한 냉각량과 함께 가온량(加溫量)이 일정수준에 도달해야 봄꽃을 피울 수
있는데, 이 녀석들의 냉각량과 가온량을 측정할 수가 없으니 그냥 자연의
변화에 맡겨야겠다.
국가농림기상센터의 김진희 박사는
개나리는 냉각량이 -90도 가온량이 128.5도요,
진달래는 가온량이 96.1도, 벚꽃은 냉각량이 -100도 가온량이 158도라고
발표했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으니 봄꽃도 일찍 곱게 피려나.
09;00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그동안 읽었던 책을 보고 또 본다.
주로 데프콘 등 밀리터리(military)소설인데 지금 보는 책은 황재연 작가의
'바라쿠다'에 이어 김경진 작가의 '남해'와 '동해'를 다시 읽는 중이다.
일본의 욕심으로 제주도앞 바다에서 국지전으로 시작해 한일간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내용인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 잠수함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책이다.
밀리터리 소설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젊었을 때 읽었던 수천 권의 무협지는 한번 이상 보지 않았는데,
밀리터리를 테마로 하는 소설은 보고 또 봐도 묘한 매력을 느낀다.
내가 고위 지휘관이라면 병력의 배치와 무기운용에 대해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하고, 또한 군령권자라면 어떤 전략과 전술로 전쟁을 할 것인지,
큰 그림인 전쟁과 작은 그림인 전투를 고민하다보면 젊은이가 되어 점점 책에
빠져드는 거다.
간밤엔 책을 읽다 독서등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뭔꿈이 그리도 생생한지,
꿈속에 군복을 입고 양구 가칠봉 GP에서 복수초를 만나고 노루귀를 만났다.
겨울이 혹한(酷寒)일수록 봄꽃은 더 예쁘게 핀다.
화천 광덕산에서, 남한산성에서, 변산과 인제 방태산에서 만났던 복수초는
물론, 검단산에서 처녀치마와 함께 만났던 솜털이 예쁜 노루귀의 자태도 생각난다.
가을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봄은 남쪽에서 다가온다고 했다.
아랫녘에선 통도사의 자장매 개화소식이 들려오고, 양산친구가 복수초 사진도
보냈다.
비록 설중(雪中) 복수초(福壽草)는 아니지만 선명한 노란꽃잎이 새색시같다.
눈을 녹이며 꽃을 피우기에 설연화(雪蓮花), 또는 얼음새꽃이라는 예쁜 별명을
가진 복수초는 스스로 열을 발생하기에 뿌리주변은 영상 10~15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해가 뜨면 꽃잎을 활짝 열어 햇빛을 최대한 모으고 오후 3시가 되면 꽃잎을 닫아
온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매우 똑똑한 꽃이라는 거다.
코로나 핑계로 제대로 산행을 하지 못하니 탐매(探梅)나 탐화(探花)는커녕
겨우 근육유지나 하며 이른 봄에 피는 꽃이나 그리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12;00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세상은 순식간에 설국으로 변한다.
이번 겨울엔 눈이 자주오니 농사엔 큰 도움이 되겠다.
전철에서 잠시 뉴스를 검색한다.
코로나 방역에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우주미남 우유빛깔 문재인'이 나오기에
짜증이 나 얼른 다른 소식으로 검색을 바꾼다.
살다보니 참 해괴한 말을 많이 듣는다.
이것도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처음 겪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우습기만하다.
임금은 암군(暗君) 아닌 현군(賢君)이 되어야 신하도 간신이 아닌 충신이 모여든다.
즉 신하를 그릇에 맞게 부리는 것(기지器之)이 임금다움이요,
신하는 신하다워야 충(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온통 간신배들이 지지지지(之之之之)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지지지중지(之之之中之) 행행행중성(行行行中成)이라는 말은
가고가고 또 가다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행하고 또 행하게 되면 이루게 된다는 좋은
말인데 반하여,
지지지지(之之之之)는 간신들이 수다스럽게 자꾸 이야기하는 소리를 뜻한다.
불교 능엄경에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있다.
한 가지 물을 네 가지로 본다는 뜻으로 같은 것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천계에 사는 신(神)은 물을 보배로 보고,
지상계에 사는 사람은 물을 물로 보고,
탐욕과 질투로 지옥에 떨어진 아귀(餓鬼)는 물을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물을 보금자리로 본다는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 중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이라는 말이 나온다.
돼지 눈엔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인다는데,
내 눈에 충신들은 안보이고 간신(奸臣)들만 보이니 나또한 간신이 될까 두려워
부지런히 눈을 씻고 세이(洗耳)를 해야겠다.
2021. 2. 16.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어떻게 그리 한자의 고사성어를 많이 알고 있는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