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열 수리논술 부활하나?
주요 대학들의 논술 모의고사 실시나 예시문항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논술고사 출제 경향에 변화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특히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되면서 인문계열에도 수리논술이 도입되거나 영어 제시문이 활용되는 등의 변화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 시행된 몇몇 대학들의 논술 모의고사를 중심으로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는지, 2009학년도 수시 논술 준비는 어떠해야 할지 살펴보자.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 그 후
지난 2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2009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논술 가이드라인’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현 정부가 표방하는 대학자율화 조치의 일환이며 대학입시 업무가 교육부에서 대교협으로 이양된 후의 첫 조치다.
논술 가이드라인이란 2005년 당시 교육부가 본고사 형태의 시험을 막기 위해 영어지문 금지, 수학·과학과 관련한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금지 등의 지침을 각 대학에 요구한 것이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후 대학들은 최대한 지침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형태의 논술 문제를 개발해 왔다. 그러나 논술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던 당시에도 몇몇 대학의 논술 문제를 두고 본고사 유형에 가깝다는 논란이 빈번했다.
논술 가이드라인의 폐지는 사실상 논술 유형의 변화를 예고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대교협은 영어 제시문을 활용하거나 수학 풀이를 요구하는 문제는 수험생의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가급적 배제하고 급격한 변화를 주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몇몇 대학의 2009학년도 논술 모의고사 문제를 살펴보면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올해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내년부터 시행될 논술고사에는 다양한 변화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리논술 부활할 조짐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 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인문계열 논술고사에 수리논술을 가미한 대학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화여대의 경우 예년에도 인문계열 논술고사에 별도의 수리논술 문항을 추가한 형태를 이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2008학년도 논술고사에서 수리논술을 배제한 채 통계자료의 해석 문제 정도에 머물렀다.
올해 들어 2009학년도 논술 모의고사를 실시한 대학들의 출제 경향을 살펴보면, 5월 초까지 논술 모의고사를 실시했던 대학들의 경우 기존 논술고사의 유형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5월 중순 이후 실시했던 고려대, 경희대, 한양대 등은 수리논술 문항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약속이나 한 듯 최근에 시행한 논술 모의고사에서 모두 수리논술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대학들이 이러한 시도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연세대는 그간 논술고사의 방향을 언급하면서 낮은 차원의 수리적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해왔던 만큼 변화의 흐름을 따라 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풀이과정과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
사실 2009학년도 논술 모의고사에서 몇몇 대학들이 도입한 인문계열 수리논술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2008학년도 등급제 수능에 대비하여 시도했던 초기 통합형 논술보다는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문사회적 주제와 수리적 개념을 통합해 문제를 설정하고 모델링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와는 다소 다른 유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이도는 낮추되 계산을 포함한 풀이과정을 서술해야 하며 정답이 사실상 존재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예를 들어 고려대의 문항을 살펴보면 한 사회의 구성원을 ‘혁신가’와 ‘모방자’로 구분할 때 나타나는 보수 관계와 ‘사회 구성’을 설명한 제시문을 주고 사회 구성이 일정하게 유지될 관계를 물었다. 이 제시문은 전체 인구 중 혁신가의 비율을 p, 모방자의 비율을 1-p로 제시했으며, 동일한 유형과 관련 맺을 확률을 s, 무작위로 선택된 상태와 짝지어질 확률을 1-s로 제시했다. 결국 사회 구성이 일정하게 유지될 p와 s의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데 주어진 조건에 맞게 접근할 때 사실상 그 관계식에 정답이 존재하는 형태다. 확률과 기댓값을 응용해 정답인 관계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경희대의 경우 1997년~2004년의 전 세계 쌀 생산량, 소비량, 재고량에 관한 자료를 주고, 2005년 이후의 증가율 모델을 제시했다. 주어진 조건과 식을 활용하여 식량 재고량이 언제 고갈될지를 계산해야 한다. 이 역시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다.
한양대는 인문계열과 상경계열을 분리하여 다른 문제를 출제한 것이 특징이다. 인문계열의 경우 수리논술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상경계열에는 수리논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제 역시 대학 입학시 수능시험에서 활용하는 원점수와 표준점수에 대한 자료와 조건이 제시되어 있고 물음에는 사실상 정답이 존재하는 형태다.
물론 이러한 수리논술 문항 역시 계산식을 포함하여 논리적인 설명을 가미해야 하는 점에서 일반적인 수학문제와는 다르다. 하지만 예년에 시도했던 수리논술이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접근이 가능했었던 데 비해, 난이도는 낮아졌지만 근접한 정답이 사실상 존재하는 만큼 보다 엄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요구하는 식과 답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크게 감점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리논술 문항을 위해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진 않다. 고교 과정의 다양한 수학적 개념을 알고 있으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 접하는 유형의 문제들이 많으니 여러 대학의 유형들을 파악하고 실제 답안을 작성하는 훈련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 논술은 시행 유보?
최근 경희대는 인문계열 논술고사에 영어 제시문을 반영한다고 발표했다가 번복했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짧은 기간에 번복한 만큼 외압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어 논술을 포기했다기보다 일종의 시행 유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경희대에 앞서 영어 논술을 시행하기로 발표했던 한국외국어대는 영어 제시문 출제 방침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외대는 출제 문항당 3, 4개의 제시문 중 1개 정도를 영어 제시문으로 출제할 예정이다.
이처럼 대학들이 영어 논술에 대한 여론의 반발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지만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된 마당이라 내년부터는 영어 제시문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경우 한국외대 정도로 그치겠지만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비록 논술고사에 영어 제시문이 출제되는 경우가 외대에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나 만일 구술면접고사를 시행하는 전형에 지원한다면 영어 제시문을 주고 구술고사를 진행하는 사례가 많으니 이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한국외대의 영어 논술은 6월 14일에 실시 예정인 논술 모의고사를 통해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수시 논술, 본격적인 준비 단계로 들어가야
이제 수시 논술의 본격적인 준비 단계로 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구체적으로 지원 대학을 선별하고 대학별 논술 특성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대학별 특성을 살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출문제와 논술 모의고사 문제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논술 모의고사를 시행한 대학이라면 해당 문제를 찾아 직접 작성해보고 첨삭을 받아봐야 하며, 논술 모의고사를 시행하지 않은 대학에 지원할 경우 작년 수시와 정시 논술고사 문제를 활용해야 한다.
한편 대학별로 2009학년도 논술고사의 출제 방향에 대해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거나 자료집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들 자료도 빠짐없이 살펴야 한다. 서울대의 경우 수시논술 유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2008학년도 정시논술고사에 대한 해설 자료집을 발간했으니 이를 통해 평가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학별 논술 모의고사 문항이나 해설, 논술 출제방향 자료집은 <유레카논술> 홈페이지 www.eurekaplus.co.kr → 논술카페 → 기출문제집 혹은 논술자료집 게시판에 올려놓을 예정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2009학년도 논술 모의고사 문항이나 예시문항, 논술 자료집, 동영상을 제공한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인하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