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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단호하게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제 얼굴이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밝고 평화로웠던 바다 밑의 산호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침울한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물고기들을 조사해보니 얼굴을 찌 뿌리고 다닌 것이 전체를 침울하게 만든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어가 명태에게 물었습니다.
“명태야. 넌 왜 요즘 웃음을 잃고 있니?”
“글쎄, 장어가 인상을 쓰고 다니잖아.”
장어에게 물었습니다.
“장어야, 너는 왜 웃음을 잃고 있는 거니?”
“갈치가 그러잖아”
결국 새끼 우렁이가 첫 번째로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우렁아. 너 요즘 우울하니?”
그렇게 묻자 새끼우렁이는 펄쩍 뛰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제 얼굴이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러자 문어가 새끼우렁이 나무랐습니다.
“네 고민은 너로 끝나지 않는단다.
고민은 표정으로 드러나고 얼굴 표정은 곧바로 전염된단다.
당연히 찡그림만큼 환한 미소도 전염성이 강하단다.
앞으로는 많이 웃고 다니렴!
우리 마을을 다시 밝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너의 작은 미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에 바다속 산호마을에 미소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짝 미소 지으면 내 가족이 함께 웃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웃는 것이 지혜이고 용기입니다.
내가 먼저 웃으면 교회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내가 먼저 웃으면 일터가 달라지게 됩니다.
내가 먼저 웃으면 우리 가정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웃어봅시다.
우리가 먼저 살짝 미소를 띠면서 살아봅시다.
P4.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씀인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말이다.
하나님은 죄를 너무너무 싫어하셨기 때문에, 죄를 범한 아담 내외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만다.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동의하셨다면 왜 에덴동산에서 아담 내외를 쫓아내셨을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하나님은 끊어내라. 죽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리도 많이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생명을 너무너무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에 생명을 의미하는 피를 먹지 말라고 수없이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범한 자들, 동성애자들, 수간자들,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들, 무당, 우상숭배자들 등등 각종 죄에 연루된 이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 이렇게까지 매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은 어떤 삶이길래 이렇게 매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가?
D4.
①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을 지목하시는 하나님.
ⓐ 인신 제물을 바치는 자들.
세상에는 잡다한 신들이 많이 존재한다.
신들은 인간의 숭배를 받고, 인간들을 지배한다.
신들은 자신들을 숭배하는 인간에게서 제물을 받는다.
보편적으로 짐승을 제물로 받는다.
하지만 어떤 신들은 짐승의 제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흉악하게 생긴 형상을 하고 있는 암몬족이 섬기는 몰렉과 모압족이 섬기는 그모스신이다.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은 롯의 후손들로서 형제지간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들이 섬기는 신들은 똑같이 인신제물을 받는 신들이다.
암몬족이 섬기는 몰렉이라는 신은 모압족이 섬기는 그모스신보다는 더 악랄하게 반드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기를 원한다.
몰렉이란 신은 몰록, 밀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은 몰렉, 몰록, 밀곰의 신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녀를 바치는 자, 곧 인신제물을 바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2-4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
열왕기상 11:5에 보면 솔로몬 왕이 잡다한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첩으로 삼으면서 몰렉, 몰록, 밀곰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상 11;33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몰렉신을 섬겼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를 두 개로 분열시키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예레미야 32:35에 보면 유다 백성들이 자기 자녀들을 몰렉 신에게 인신제물을 바치는 범죄 때문에 유다가 멸망당한다고 말씀하신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몰렉, 밀곰, 몰록 신에게 인신제물을 바치는 자를 그 지방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와 가문을 따라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런 죄악을 범하게 되면 그 공동체가 연대책임을 지고 그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 죄악의 뿌리를 뽑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
하나님은 6절에서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27절에서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령에 사로잡혀서 점쟁이, 무당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을 보거나 사주 관상을 보면서 미래를 알아보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모습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거늘 점쟁이들이 미래를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악령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영혼이 사탄의 세력,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영원한 심판의 길로 달려가는 꼴이다. 무당들은 자기 혼자만 지옥으로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뭇 영혼들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시느 것이다.
ⓒ 부모님을 저주하는 자들.
하나님은 9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분이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가정 안에서는 부모님을 세워주신 것이다.
부모님은 육안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저주하는 형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업신여기고 저주하는 행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매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 간음하는 자들.
하나님은 10절에서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다른 남자의 아내와 통간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아내를 빼앗는 행위이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아내를 업신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간음하는 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 계모를 범하는 자들.
하나님은 11절에서 “누구든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아내는 자기 친모라기 보다는 계모를 지칭하는 말이다.
계모일지라도 아버지의 아내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계모를 취하는 행위는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행위이다.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은 계모인 빌하를 취하였다가 장자권의 축복권을 빼앗기고 만다.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킨 후에 아버지 다윗 왕이 피신 갈 때, 왕궁에 남겨두고 간 10명의 후궁들과 통간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악행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신다.
아도니아도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아비삭을 첩으로 달라고 밧세바에게 요구했다가 솔로몬에 의해서 참살을 당하고 만다.
ⓕ 자부를 범하는 자들.
하나님은 12절에서 “누구든지 그의 며느리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며느리, 자부를 취하는 행위는 아들을 업신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 동성애자들.
하나님은 13절에서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자연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게이가 되었든, 레즈비언이 되었든 동성애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날 동성애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이들, 특히 성직자,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방조하고 후원하는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은 어떤 긍휼이나 자비도 베풀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정치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악법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의 회초리로 때리시길 소망한다.
ⓗ 아내와 장모를 동시에 범하는 자들.
하나님은 14절에서 “누구든지 아내와 자기의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살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아내를 낳아서 양육해 주신 장모는 하나님의 대리권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분이다.
그런데 인간의 악행으로 인하여 아내와 장모를 동시에 취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동시에 모두를 불살라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 수간자들.
하나님은 15-16절에서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 하여 교합하면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그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주신 사람이란 존재가 영혼 없는 짐승과 교합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현대사회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반려동물이라는 미명 아래 짐승과 혼인하거나 짐승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행위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 이복 누이를 범하는 자들.
하나님은 17절에서 “누구든지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그의 어머니의 딸을 데려다가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들의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자기의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가 그의 죄를 담당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은 친자매보다는 이복 자매일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이복 자매들이라 할지라도 이복 자매를 취하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다윗 왕의 아들인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취하였다가 이복동생인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한다.
ⓚ 월경 중에 관계를 맺음으로 부정케 된 자들.
하나님은 18절에서 “누구든지 월경 중의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면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냈고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인이 월경하여 유출하는 것 자체가 부정한 일인데, 부정한 여인을 취하는 것은 더더욱 부정한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월경 중에 유출하는 여인은 자기 자신과 남편을 잘 절제하도록 하여 부정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 의무를 저버리면 하나님은 죽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 이모, 고모, 숙모를 범하는 자들.
하나님은 19-20절에서 “네 이모나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 이는 살붙이의 하체인즉 그들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리라. 누구든지 그의 숙모와 동침하면 그의 숙부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은 그들의 죄를 담당하여 자식이 없이 죽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모, 고모, 숙모와 통간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죽임으로 하나님의 기본질서를 세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 형제의 아내를 취하였을 경우.
하나님은 21절에서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형제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행위는 그 형제를 업신여기는 행위이다.
이런 경우에는 죽이지는 않지만,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계대법에 의해서 시행하는 형사취수제와는 다른 의미이다.
② 왜 반드시 죽여야 하는 대상들인지 그 이유를 밝혀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거듭거듭 거룩하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계신다.
거룩이란 말은 구별한다라는 말이다.
몰렉에게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나 각종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이나 성적인 타락과 같은 모든 것들은 거룩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을 파괴하는 장본인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매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죄악들이다.
하나님의 완전성, 거룩성, 의로움, 정결을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에 그 죄악에 빠진 이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
위에 나열한 항목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든지 세상의 윤리도덕과 양심에 따라 이렇게든, 저렇게든 살아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요즘처럼 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세대, 동성애가 법적으로 버젓이 추앙받는 세대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든지, 이제 예수님을 믿기로 고백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늘 아버지를 하나님 아버지로 믿고 신앙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처럼 살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삶은 얼마든지 용납이 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삶을 살고 있다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애굽인이든, 가나안 사람들이든, 모압인이든, 에돔인이든, 미디안인이든 이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에서 말씀한 것과 같은 죄악에 빠진다면 차라리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삶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 된 이후의 삶,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의 삶이 여전히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았던 삶을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여전히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면 더 이상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더 이상 신앙인으로 살아갈 사람이 명목이 없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정도 가지고 사람을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지? 어떻게 하나님이란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수 있어?’라고 주장한다면 공의의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없이 자애롭고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지만, 때로는 냉혹하리만치 냉정하시고 단호하신 분이다.
구약성경에서 등장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속성이 약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바로 신약성경에서 등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약의 하나님이 다르고,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죄악을 심판하여 지옥으로 보내버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지금 당장 그 사람의 생명을 거두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저지른 죄악을 심판하여 지옥으로 보내신다.
지옥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죽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매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③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법도와 규례를 따라 지키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파괴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여야 하는 대상들이라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23절에서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라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방 족속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방 족속들의 풍속을 가증스럽게 여긴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이방 풍속의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죄악의 굴레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서 회개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에서 떠나는 것이다.
회개는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형태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살 수 있다.
사는 길은 어렵지 않다.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순종하며 살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일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모든 일에, 매사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매사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려고 하면 살아갈 수 있는 표준, 기준이 필요하다.
자신의 양심이나 사회문화 수준이 구별하는 삶의 기준이나 표준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양심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문화가 보여주는 표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바뀔 수 있다.
문화는 국가와 민족과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당시 행해지는 문화 수준이 절대적인 표준이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결코 바뀌거나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표준, 기준을 정해 주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규례에 의해서 정해지는 표준과 기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22절에서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라면 당연히 지역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고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니다. N0”라고 말씀하시면 아닌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맞다. YES”라고 말씀하시면 OK가 되는 것이다.
항상 하늘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반드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정해주신 법도와 규례와 말씀을 따라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B4 & L4.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란 분은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시고 한없이 자애롭고 좋으신 분이지만, 공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그 죄에 동조하는 이들에 대하여 냉혹하리만치 단호하시고 매정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냉정하시고 단호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없이 다정다감하시고 은혜가 풍성하시고 좋으신 분이시다.
죄에 대하여 너무나 냉정하시고 매정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으로 인간의 몸을 입혀서 보내시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기까지 하시면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주시는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매정하고 단호하게 하나님의 거룩성을 파괴한 이들을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계신다.
물론 다변화와 다양성으로 형성된 현대사회에서는 서로 맞지 않고 어긋나는 상황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에 대하여 정확하게 판단하고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들은 사회문화와 풍습과 전통문화, 토속문화를 매정하고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정쩡하거나 미적미적하다 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문화에 끌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와 법도에 따라서 매정하고 단호하게 판단하고 끊어낼 것은 끊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킬 것인가 아닌가 하는 단순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 대하여 복잡하게 생각하면 어려워진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쉽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주 단순하고 쉽게 살아가는 길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가득 가득 채워놓으면 된다.
그러면 가득 가득 가득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묻어나오게 마련이다.
병이나 그릇이란 존재는 그것에 담겨져 있는 물질만 나오게 되어 있다.
그 병과 그릇에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이 나온다면 마술이거나 사기일 수밖에 없다.
그 병에 포도주가 담겨져 있으면 포도주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요,
그 병에 간장이 담겨져 있으면 간장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요,
그 병에 달콤하게 맛있는 쥬스가 담겨져 있으면 달콤하게 맛있는 쥬스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의지라는 병과 그릇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가득 가득 채워져 있다면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주 단순하고 쉽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의지에 세상의 복잡한 이론들, 사상들, 종교들이 들어있다면 당연히 세상의 복잡한 것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지식들, 사상들, 견해들로 인하여 박학다식한 사람처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단순해지지 않는다.
세상의 다양하고 복잡한 지식들, 견해들, 사상들은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하면서 갈팡질팡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워진다면 아주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감동 주시는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가득 가득 채우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①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깊게 묵상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 그 말씀이 뇌리에 꽉 사로잡히게 된다.
묵상한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새김질하는 방법이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 다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읽고 돌아서면 ‘내가 무슨 말씀을 읽었던가?’라고 금방 잊어버릴 때가 너무 많다.
나이가 들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기억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짧은 말씀을 읽더라도 계속 반복하면서 다시 읽고 읽고 읽고 읽으면서 되새김질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오래오래 기억되고 뇌리에 남을 수 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아주 단순하게 들려주시는 몇 마디를 삶의 표어나 좌우명으로 세워서 그 말씀대로 반복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아주 짧은 말씀이라도 되새김질하면서 살아가면 좋다.
② 하나님의 말씀, 성구들을 외우면서 살면 된다.
하나님께서도 십계명이 너무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로 변하지 말라고 돌판에 직접 써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면서 읽고 읽고 읽고 읽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송하는 말씀이 된다.
머리 회전이 쉽지 않아서 말씀을 외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래도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주신 것처럼 우리의 아둔하고 회전이 잘되지 않는 뇌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워서 각인시켜놓으면 그 말씀은 두고두고 큰 능력의 말씀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되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울 수 있다면 너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꼭 토씨 하나까지도 틀리지 않게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토씨 하나까지라도 틀리지 않게 외우려고 하면 암송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암송이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소망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우리 한글 성경은 원본인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성경에서, 신약성경은 헬라어성경을 번역한 성경이다.
번역에는 언어사용의 차이에 의해서 아주 약간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똑같은 영어성경도 번역한 영어버전(Version)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ESV, NIV, KJV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우리 한글성경도 우리들이 사용하는 성경 외에 다른 번역한 성경을 보면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정확무오하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은 원본 성경뿐이다.
사본이나 번역한 성경은 미세할 정도이지만 아주 작은 차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성경을 번역한 문자는 그 문자를 사용하는 민족과 나라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문자 위주의 암송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글성경의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그 말씀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시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찾으면서 다시 읽고 읽고 읽으면서 외우면 좋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고 지키면서 살아갈 때, 특히 죄의 문제만큼 매정하고 단호하게 칼로 무언가를 잘라내듯이 잘라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예, YES”라고 하시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