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4월에 김00씨 등 원고 3인이 GS리테일(GS25시 본사)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공개 변론이 올해 10월 23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필자는 이날 원고 측 참고인으로 나와 참고진술을 할 기회를 가졌다.
2022년 2월에 열린 1심 판결에서는 GS리테일의 편의시설 미설치로 인한 접근권 침해를 인정하고 300제곱미터 미만의 시설에는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 제도는 명백히 장애인 차별이라고 판결하였으나, 피고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GS리테일은 항소를 포기하고 GS25시 편의점에 경사로를 설치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원고 측은 국가를 상대로 다시 항소심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2022년 10월에 열린 2심에서도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의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원고들이 다시 항소하여 이번 대법원 판결까지 오게 되었다.
주출입구 계단이 있는 편의점. ©배융호
차별구제 소송의 두 가지 쟁점
이 날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서 근린생활시설의 편의시설 설치 대상 여부를 면적 기준으로 정하여 300제곱미터 이상(2022년 시행령 개정으로 현재는 50제곱미터 이상)의 편의점 등 근린생활시설에만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여 300제곱미터 미만의 근린생활시설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시설에서 제외시킨 것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였으며, 이후 24년 동안 시행령 개정 등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행정입법부작위 위법에 해당하는가의 여부이다.
즉, 정부가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는 법을 제정한 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 위법인가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렇게 피고 대한민국이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였으므로 원고에게 국가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쟁점이었다. 필자는 첫 번째 쟁점의 참고진술인이었다.
첫 번째 쟁점에서 문제가 되는 법률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별표 1]이다.
구법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대통령령 32,158호) [별표 1] 편의서설 설치 대상시설에 의하면, 대부분의 수퍼마켓·일용품점, 음식점, 휴게음식점, 병원 등이 모두 300제곱미터 이상, 또는 500제곱미터 이상으로 되어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대통령령 32,158호) [별표 1] 편의시설 설치 대상시설
2.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가. 제1종 근린생활시설
(1) 수퍼마켓·일용품(식품·잡화·의류·완구·서적·건축자재·의약품·의료기기 등을 말한다. 이하 같다) 등의 소매점으로서 동일한 건축물(하나의 대지 안에 2동 이상의 건축물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동일한 건축물로 본다. 이하 같다) 안에서 당해 용도에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제곱미터 이상 1천 제곱미터 미만인 시설
(6) 의원·치과의원·한의원·조산소(산후조리원을 포함한다)로서 동일한 건축물 안에서 당해 용도로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500제곱미터 이상인 시설
나. 제2종 근린생활시설
(1) 일반음식점으로서 동일한 건축물 안에서 당해 용도로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제곱미터 이상인 시설
(2) 휴게음식점·제과점 등 음료·차(茶)·음식·빵·떡·과자 등을 조리하거나 제조하여 판매하는 시설로서 제1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동일한 건축물 안에서 당해 용도로 쓰이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제곱미터 이상인 시설
물론 1심 후인 2022년 5월에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수퍼마켓·일용품점, 휴게음식점·제과점, 일반음식점 등의 면적 기준을 300제곱미터 이상에서 50제곱미터 이상으로 면적 기준을 완화하여 대상 시설을 확대하였으나 여전히 면적 기준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부칙(대통령령 제32,607호)에 따라 2022년 5월 1일 이전에 설치된 공중이용시설 또는 시행령 시행 당시 건축허가 신청 등 설치를 위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시공 중인 공중이용시설의 편의시설 설치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을 따른다고 하여 실제로 기존 시설들은 50제곱미터 이상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결국 2022년 5월 1일 이후의 신축시설들부터 적용된다고 할 수 있어 당장 실효성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위와 같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면적 기준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정당한 편의 제공 대상시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1조(시설물의 대상과 범위) 법 제18조제4항에 따른 시설물의 대상과 단계적 범위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제7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대상시설 중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증축·개축하는 시설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제11조에 따라 시설물에 있어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대상 시설은 장애인등편의법 제7조의 대상시설이 되었으며, 장애인등편의법 제7조에 따라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시설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별표1의 공공시설 및 공중이용시설로 위임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별표에 의해 300제곱미터 미만의 시설들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시설에서도 제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장애인등편의법의 면적 기준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 시설을 제한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편의 제공 대상시설에서도 제외시킴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휠체어 사용자들은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식당 찾기도 힘들었다. 먹고 싶은 메뉴를 먹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그 음식점의 메뉴를 먹어야 했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분식집 밖에 없다면 라면이나 김밥을 먹어야 했다. 식당에 대한 선택권도 메뉴에 대한 선택권도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출입구에 단차가 있는 카페 . ©배융호
주출입구에 단차가 있는 카페 . ©배융호
접근권의 원칙도 망각한 정부 대리인단의 변론
그런데 정부 측 대리인단(정부 측 변호인)은 황당한 변론을 했다. 정부 측 대리인단은 편의점 등 300제곱미터 미만의 시설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면, 온라인 구매와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통한 대리 구매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 측 대리인단의 대안은 과연 적절한가?
첫째, 무엇보다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통한 대리 구매는 장애인등편의법의 접근권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주장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제4조(접근권)에서는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접근권은 ‘비장애인 등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동등하게’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그리고 차별 없이’를 의미한다.
실제로 장애인등편의법 제정 당시에는 제4조(접근권)이란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라고 되어 있었으나, 이후 2003년도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를 삭제한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 등 인적서비스와 농아인에게 필요한 수어 통역 등의 인적 서비스의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접근권을 행사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라는 문구와 인적서비스의 제공이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인적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시설과 설비를 차별 받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접근권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측 대리인단은 바로 이러한 접근권의 원칙에 위배되는 주장을 변론을 통해 한 것이다. 활동지원사를 통한 대리 구매야 말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활동지원사를 통한 대리 구매는 현실성도 없는 대안이다. 활동지원사를 통한 대리 구매라는 대안 자체가 접근권에 위배되는 주장이지만, 설혹 그 방법이 접근권 위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정부 측 대리인단은 우리나라의 활동지원 제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현재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활동지원 시간은 최대 월 480시간(하루 16시간)이다. 이것은 하루 최대 16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24시간 중 8시간은 활동지원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최대 480시간이라는 것은 480시간 이하의 서비스 제공을 받는 장애인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활동지원 시간은 160시간에 불과하다. 하루에 5시간 정도이다. 하루에 8시간을 활동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 5일만 활동지원을 받아야 한다. 즉 주말에는 활동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장 목이 마른데 물을 사기 위해 활동지원사를 통해 대리구매를 해야 한다면,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는 어찌할 것인가? 활동지원사가 다음 날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인가?
셋째, 온라인 구매라는 대안 역시 장애인의 접근권의 원칙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지금 당장 목이 마른데,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지 못해 온라인 쇼핑을 하고 빨라야 다음 날 배달되는 물을 기다리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접근권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배달해 주는 배달 서비스도 있지만, 이러한 배달에 대한 수수료 부담은 장애인 본인의 부담이다. 장애인만 물을 사기 위해 수수료를 내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것 역시 차별이다. 배가 고플 때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배고픔을 참고 배달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장애인은 집에서 배달음식만 먹으라는 것이다. 그 자체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무엇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권리라는 접근권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부 측 대리인단의 주장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주장이면서 동시에 정부 대리인단 스스로 장애인등편의법의 접근권 규정을 어기는 위법적 주장이다.
주출입구에 단차가 있는 음식점. ©배융호
정부의 행정입법부작위는 위법이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시설을 양산하고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하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을 24년간 방치한 정부의 조치는 행정입법부작위의 위법에 해당한다.
공개변론에서 정부 대리인단은 정부가 그동안 장애인등편의법을 87차례 개정하였고,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를 시행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으므로 행정입법부작위의 위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노력은 이 쟁점과 무관하다.
장애인등편의법의 시행령에서 규정한 면적 기준으로 인한 장애인의 접근권 침해를 구제하고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입법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정부는 지난 24년간 슈퍼마켓 등에 대한 면적 기준을 300제곱미터 이상에서 50제곱미터 이상으로 개정한 것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50제곱미터로 개정한 것도 이번 소송의 1심 결과 이후의 일이다.
무엇보다 면적 기준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에 따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도 면적 기준에 따라 제공 의무가 면제 되고 있다. 장애인, 특히 휠체어 사용자들의 접근권은 여전히 침해 받고 있다.
부디 대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내려서 정부의 행정입법부작위의 위법성을 확인하고 장애인의 접근권을 온전히 보장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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