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들은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아득한 태초로부터 천지만물을 지어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중에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까닭[爲者]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중략)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의 은혜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겠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그 은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짓는다면 어찌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겠습니까. (중략)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알아둡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려와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운다 한들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중략)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도우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립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爲主光榮],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해갑시다.
성 김대건 신부님이 남기신 편지의 대부분은
교구장이셨던 페레올 주교님과 은사 신부님들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써서 보낸 것들입니다.
이 편지들을 통해 당시 교회의 상황과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
즉 신부님께서 가지셨던 사목적 열정,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한 복음의 전파와 사회적 책임감,
더불어 신앙의 근본적 가치와 자아 성찰을 통한 신부님의 겸손함 등이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위의 내용은 신부님께서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보내신 한글로 쓴 마지막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이 편지에서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도 또한 귀하겠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하시며, 신앙생활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 우리에게도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실천이 어려운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과거와 지금은 그 원인이 다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박해와 같은 외적이 원인이 더 컸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교회 공동체의 차원에서든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그 가진 것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우리를 더욱 복음적이게 하지 못하는 원인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또한 우리가 좀 더 복음적이기 위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시선이 교회 밖을 향해야 합니다.
요즘은 물리적인 거리로 교회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직업, 여러 가지 상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옥에 갇혀 고문과 회유를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신자들의 신앙과 이제 막 태동하는 한국교회, 그리고 당시 조선의 상황만을 걱정하셨고,
좋아지고 개선되기를 바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단순한 기념이나 기억이 아닌,
우리 모두 그분의 영성과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 하는 계기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민영환 토마스 모어 신부 교구 성직자국 국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9월22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