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박수빈(12182665)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생활패턴을 보면 저는 합리주의에 걸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수를 막고자 과제를 제출한 후에도 두 번, 세 번 제출 완료를 확인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이유가 뭔지 한참을 고민하는 등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직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요. 제가 살면서 직관적으로 행동한 경우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이번 주제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꽤나 긴 시간 고민해본 끝에 생각난 저의 직관적 경험은 대입, 그중에서도 수시 원서를 작성할 때였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일반적으로 대입 원서를 접수할 때 고3의 6월 모의고사와 9월 모의고사 성적을 활용합니다. 그때 성적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으나 6등급, 4등급 다양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느 모의고사들보다 중요하다는 고3 6월·9월 모의고사에서 평소 성적보다도 유독 떨어지는 성적을 받았던 건데요. 저는 원래 정시를 준비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수시와 별개로 해당 시험이 중요한 지표였는데, 뭘로 보나 재수를 고민해야 하는 성적을 받아서 많이 걱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 됐든 정시를 준비하던 저에게 학생부 종합 전형, 학생부 교과 전형 등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전형이었고, 논술 전형이나 접수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이것도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에 결정한 거라 직관적 선택이 될 수 있겠네요.) 논술 전형의 경우 학교마다 수능 등급 커트라인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는데요. 결국 수능 성적이 논술에도 영향을 준다는 소리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6월, 9월 모의고사 성적은 답이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ㅎㅎ.. 당연히 제가 가고자 했던 학교의 논술 응시 기준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담임 선생님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가능성이 있는 학교에만 접수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상담을 진행했었어요.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저도 저의 성적으로 희망 학교에 모두 접수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학교에 원서 접수를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선생님의 말씀대로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는 학교를 골라 접수를 했겠으나 그때는 모든 학교에 원서를 접수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전형적인 합리 모델 성향인 저와는 달리 저의 아버지는 직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데, 대입을 앞두고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점에 그 차이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사소한 일, 중요한 일 상관없이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은 편으로,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굉장히 답답해하시면서 “일단 해봐.”라고 한 마디씩 던지시곤 했습니다. 당시에도 이걸 접수해? 말어? 라며 혼자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대뜸 “니 마음은 어떤데? 원서 넣고 싶어? 그럼 넣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해.”라고 말 하셨는데요. 응시 성적이 안 된다고 말을 해도 “그게 진짜 수능 성적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넣어 그냥.”이라고 쿨하게 말씀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나도 날 못 믿겠는데 우리 아빠는 뭐 저렇게 아무렇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그 말에 따라 선생님의 걱정을 애써 무시하고 희망하는 학교에 모두 원서를 접수하였습니다. 실제 수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모든 학교의 커트라인을 맞출 수 있었구요.
접수한 학교 중 일부는 합격, 일부는 불합격하였고 전공학과 등을 고려해 결국은 커트라인이 없는 인하대학교에 왔지만ㅎㅎ, 그때 원서 접수를 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이 끝나고 가채점을 했을 때 모든 학교의 응시 기준을 맞췄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뻐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직관 모델’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했던 ‘하고 싶어? 그럼 해.’라는 아버지의 마인드가 새삼 놀랍게 느껴졌던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질러.’, ‘일단 해봐.’ 이 말을 들으며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가끔은 그 무모한 선택이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위의 사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바로 ‘직관 모델’이라는 사실을 이번 강의를 들으며 알 수 있었는데요. 저의 직관적 경험은 온전히 저만의 선택이 아니었고, 또 정말 직관적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다소 별거 아닌 경험일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흔치 않은 경험이라 소개해봤습니다. 당장 삶의 스타일을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조금씩 직관적으로 살아가 보자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