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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예수, 그 존귀한 이름 사9:1-7, 눅1:26-38
이태리 알프스 산에 있는 한 마을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그 교회당 안에는 사면 벽 둘레에 구약시대의 선자지들의 동상이 서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이 다 같은 방향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그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보면 맨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큰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들의 눈은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를 향하여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말해주는 구속사가 면면히 흐르고 있고,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시고, 성령께서 그 사실을 깨닫게 하여 믿음으로 인도하고 성도들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가게하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도 이사야는 예수님에 관해서 가장 많은 예언을 하고 있어,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십자가의 수난에 대해서도 예언했습니다. 오늘 본문 사9장에도 아이로 탄생하실 예수님의 신비하고 놀라운 별명에 대한 내용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 그 존귀한 이름”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속죄의 주 예수라는 이름
주전 7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아이로 탄생하실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9:6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했는데 여기 ‘그 이름을 기묘자라, 모사라’라는 말의 몇몇 영역 본들을 보면 ‘놀라운 상담가’(Wonderful Counseller, NASB, NIV)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어 그의 구속 사역을 감당하실 것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이 ‘모사’(요에츠)라는 것은 자기 백성이 직면한 삶의 모든 문제들을 원래의 보혜사인 그 지혜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누구도 답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인생의 문제들까지, 곧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진리의 말씀과 자기 몸을 온전히 희생하시는 대속의 사역을 통해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상담가’ 이십니다.
신약 본문 눅1:31에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했습니다. 이는 천사가 결혼도 하지 아니한 마리아에게 한 말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신비한 이름으로 수태부터 신비합니다. 사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 6절에서 ‘한 아기’, ‘한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아기’라는 표현은 오실 분이 완전한 인간으로 임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났다’라는 말은 주님의 탄생을 말합니다. 이 예수님은 약속과 같이 완전한 인성(人性)을 가지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들’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사람의 아들을 의미하지 않고, 완전한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으로 온 인류 가운데 오직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아이로 태어나 사람이 되셔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에 있어서 죄인을 대표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인류의 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내려면 인류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할 자가 필요하고, 그는 반드시 완전한 인간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죄가 없는 자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죄를 안고 있는 자가 다른 죄인의 형벌을 대신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인간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롬3:23).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했습니다.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7:26)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 없는 인간으로 죄인의 죄책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이 되시는 방법 밖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는 기이한 방법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당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라고 예언했습니다. 결혼 전에 잉태된 사실을 알게 되어 번민하는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꿈속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우리 모두 예수님만이 우리의 속죄 주가 되심을 믿는 자들이 됩시다.
2.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이름
그리스도는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왕, 또는 구원자 메시야란 의미입니다. 구약 본문 6절에 아기 예수님에 대한 다른 호칭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전능’이란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신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심을 말합니다. 이 별명은 주님의 신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의 사역에서도 그 권세로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귀를 쫒아 내시고, 자연도 복종시키셨습니다.
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아버지’란 말은 육친의 아비도 나타내지만 보호자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자기 백성들에 대하여 스스로 아버지라 칭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를 가리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칭한 것은 메시야께서 그 구속하신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지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요,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구원받을 자들에 대한 영원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본에 파송 된 한 선교사가 혹가이도에 있는 모 대학에 초청을 받아 연락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강풍이 일어나서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구명대를 걸머지고 바다 물속에 떨어졌습니다. 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다 보니까 일본 청년 한 사람이 구명대도 없이 물속에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을 본 선교사는 ‘나는 이제 나이 많아 얼마 남지 아니한 생명이지만 이 젊은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 하고 자기가 차고 있던 구명대를 벗어서 청년에게 주면서, “당신은 이것을 입고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구명대를 받아 입고 살았습니다. 그 후 그는 ‘누가 자기 목숨을 버려가며 나를 살렸을까?’ 하는 생각으로 도쿄에 있는 선교부에 가서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월리암 선교사인 것을 알고, 사택에 가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선교사의 부인의 손을 잡고 감격하여 말 했습니다: “내 생명을 위해 그분은 돌아 가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나를 낳은 친부모보다 더 귀한 분입니다. 이제 내가 사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평생 동안 함께 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내가 구원 받아 영생하는 길을 열어 주신 구세주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 했습니다. ‘왕’(사르)은 원래 중앙의 왕이 지방의 위임통치를 위해 임명한 위임 통치자나, 분봉 왕, 총독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하늘의 왕이신 여호와에 의해 이 땅에 위임 통치자로 오실 것임을 암시합니다. 메시야는 ‘평강’ 가운데 오셔서 ‘평강’을 확립하실 것입니다. 여기 ‘평강’(샬롬)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는 물론이고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된 이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메시야 이신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롬 5:10; 엡 2:13-17). 이 땅에는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가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완전한 평강을 이루어 다시는 싸움이나 반목이 없으며 모든 것이 충족되어 완벽한 상태에 이루시는 왕이십니다. 우리 모두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만 따르는 성도로 삽시다.
3.하나님께 속한자라는 표식이 되는 임마누엘이란 이름
이사야 선지자는 아기 예수가 처녀의 몸에 잉태 될 것을 예언 하면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신약 본문 28절에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오셨으니 구약 본문 사9:1-2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했습니다. 스볼론과 납달리, 그리고 갈릴리는 전에는 이방인의 침략을 받아서 고통을 받고 멸시를 받던 지역들입니다. 이방나라와 국경선 근처에 있어서 기회 있을 때 마다 침략을 받고 압제를 받았으며, 이방의 죄와 우상들이 많이 들어오고 후에는 혼혈민족이 되어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런 곳에 참 빛으로 주님이 오시어 갈릴리가 영화롭게 되었고, 큰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나게 되면 어두움의 사람이 빛의 사람으로, 억압 받던 사람이 자유 하는 사람으로, 병든자가 고침을 받게 되고, 고통 중에 있던 사람이 감사와 평안을 소유한 사람으로, 세상 것만 바라보던 자가 하늘 소망을 가진 자로 변화 됩니다. 성경의 인물이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러한 인물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은 최고의 복입니다. 주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성령이 충만하여 마리아를 보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임마누엘의 복은 너무 값진 것이지만 내 뜻, 욕심, 교만, 허영, 야망, 고집 등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리야가 천사의 전하는 말을 듣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 뜻에 순종할 때 이 복을 받게 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황금에 눈이 멀었던 사람입니다. 신대륙을 찾아 나선 이유도 황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황금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Christopher)’란 ‘그리스도를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느 날, 이름처럼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황금을 좇아가는 인생을 살 것인가?’ 콜럼버스는 해답을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살기로 하자.’ 그때부터 콜럼버스는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14년 동안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그 기간이 내 일생 중 가장 행복하고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앞세울 때 예수께서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한자라는 표식이 되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 그 존귀한 이름”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속죄의 주 예수라는 이름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이름
◆.하나님께 속한자라는 표식이 되는 임마누엘이란 이름 아멘.
<2022. 12. 20. 호현낙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