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섣부르게 입을 놀린 점 사과드립니다. 약속 같은 걸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같은 소설을 연달아 읽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대략적인 줄거리와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읽으려하니, 다음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책읽기의 커다란 동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눈에 띄고, 읽고 싶은 책들은 또 왜그리 많은지.. 『노르웨이의 숲』을 끝까지 읽어내는 사이에 몇 권의 책을 더 보고 말았습니다;; 지금에서 되돌아보니, 책을 읽으며 머뭇거리게 되었던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것은 진도는 나가고 있고, 다 읽고 나면 약속한 글을 남기긴 해야겠는데,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앞의 '모임 후기' 외에 따로 끄적일 만한 것들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 까닭인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노르웨이의 숲』과 『상실의 시대』, 두 번역본을 끝까지 읽어 내었습니다. 이제부터 두 번역본 간의 차이점을 간략히 풀어내 보려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읽은 후의 감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지난 '독서모임' 후기에서 피력하였던 저의 생각들이 더욱 확고해졌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와타나베(1인칭)는 역시 몹쓸 놈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앞의 글에서 밝혔지만, 역시 가장 나쁜 점은 위선적인 태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에게 자신은 나쁘지 않다, 최소한의 정의와 양심을 가지고 있다 믿으며 상황에서 도망치고 있고, 책임 또한 회피하고 있습니다. 저의 잣대로는 그런 태도가 용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기준과 그에 따른 판단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저 이러한 시각도 있구나, 정도로만 보시고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를 잠깐이라도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신다면 저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나가사와(선배)의 변호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먼젓글에서는 그저 그렇게까지 나쁜놈은 아닙니다, 정도의 변호를 하였었는데요. 이번에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으려 합니다. 나가사와를 옹호하기 전에 분명히 하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그가 옳다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 일반적이지 않은 사고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저 역시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판단합니다. 와타나베(나)는 말합니다.
나가사와가 술에 취해 어떤 여자에게 진저리 날 만큼 악질적으로 대하는 것을 본 이후로 이 사내에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61, 62쪽(이하 『노르웨이의 숲』 기준)]
그렇지만 그의 비윤리적인 언행 때문에 그의 비범함을, 그의 대단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우선 와타나베의 시선을 좀 옮겨보겠습니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은 정직이었다.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오류나 결점을 인정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이라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61쪽)(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조차 감추지 않고, 자신의 결점도 거침없이 인정하는 인간.. 보통의 사람은 아닙니다. 또한 선배로 불리고는 있느나 작품 상에서의 그의 나이는 많아야 22세입니다.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와타나베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면,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비범함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와타나베가 묻습니다.(342쪽)
"선배는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 본 적 없어요?"
"거참, 나도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물론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어. 그거야 당연하잖아. 단지 난 그런 것을 전제 조건으로 인정하지 않아.(핑계 삼지 않는다는 말인 듯 보입니다.) 자신의 힘을 100퍼센트 발휘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넣고, 원하지 않으면 붙잡지 않아.(상대의 마음은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그러다 망치면 망친 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는 거지[판단이나 행동을 미루며 어물거리는 것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되돌아오는 것이 더 빠른 길이며, 바른 판단임을 벌써(22세에)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좋은 배경과 타고난 재능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형인 것입니다.).."
바로 아랫부분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나가사와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와타나베가 묻습니다.(342, 343쪽)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숴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내가 뭘 잘못 본 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노력이란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제가 보기에 나가사와는 속력이나 거리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 부분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나가사와입니다.(354쪽)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럴 만한 때에 이르렀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상대에게 이해받기를 바라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앞서 이야기 하였지만, 상대를 나의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솔직함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더라도 살펴본 바와 같이 제가 보기에 나가사와는 대단한 경지의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22세에 말입니다. 놀랍습니다.
이제는 이 글의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 두 번역본, 『노르웨이의 숲』과 『상실의 시대』간의 차이점을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저의 궁금증,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능력치는 어디까지 인가? 『상실의 시대』번역자의 역량이 어느 만큼 개입되었는가?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당연하겠지만 두 번역본 간에 커다한 차이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 제가 책을 보며 감명받고 놀랐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맞았다는 말이 되겠지요.
물론 분명히 차이점은 있었습니다. 너무나 시의적절한 단어 선택에 대한 부분은 제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의 역자가 『노르웨이의 숲』의 역자보다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멋진 단어선택들을 포함하여 조금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번역본을 선보이고 싶다, 혹은 원작자에게 누가 되기 싫다라는 마음이 『노르웨이의 숲』의 역자보다 『상실의 시대』의 역자에게서 조금 더 강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나은 번역본이 되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No."라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은 넘치는 번역자의 욕심이 몇 몇 부분에서 대사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든 듯도 보였고, 또 가끔은 원작의 느낌을 해치고 괜시리 화려하게 꾸민 부분도 있다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에는『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 번역상의 문제겠거니 하며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이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며 "이런 의미였어?" 생각했던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물론, 더불어 『노르웨이의 숲』을 먼저 읽은 후에『상실의 시대』를 읽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에 도달하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의 의견을 물으신다면 『상실의 시대』보다는 『노르웨이의 숲』을 먼저 읽어보시는 것이 원작에 조금 더 가깝게 보고, 느끼시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누님, 혹시 다음번에 다시금 이 작품을 읽으시려 할 때는 『상실의 시대』도 좋지만,『노르웨이의 숲』은 어떠실런지 조심스럽게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상이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후기입니다. 긴 방학의 숙제를 끝낸 것 같은 기분까지 드네요^-^ 그럼 이만.
첫댓글 와아.......좋은글 읽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힘든숙제하신거 박수를 보냅니다!!^^
상실의시대는 여러번읽긴했지만, 20대에 읽었던거라 기억이 전혀나지않고.^^
노르웨이의숲은 새로나온 양장본이 너무이뻐 표지만 보고있습니다.^^
덕분에 노르웨이의숲이 궁금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너무 늦게 이글을 봤네요 ^^
잘 보았습니다.새로나온 양장본 주문해야겠군요 ^^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해주신 노르웨이의 숲 보도록 할께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