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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는 서양의 미술사에서 인상주의 미술과 자포니즘을 다룬 것이었다. 앞의 강의에서 아직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소 뜬금없는 내용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유명인사를 강사로 할 경우 이번처럼 강좌계획표가 뒤꼬이기 십상인데, 바로 이 경우가 그랬다.
두어 번 서양미술사를 듣고 나서 인상주의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으로 이런 주제가 설정되었다면
훨씬 재미났을 것이다. 하지만 인상주의 그림들도 대중들에게 이미 익숙하고 그간 원작들 나들이도
대형기획들로 국내에 여러 번 소개돼온 터라 그리 알고들 수강하게 된 듯 싶었다.
강사인 권행가는 불문학을 하다가 미술사로 전공을 바꾼 소장 여류 미술사학자이며, 미술사 속에서
여성 이미지와 관련한 글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략하고 짜임새 있는 소개로 강의를 진행
하면서 그림마다 적절한 설명을 곁들여 들려준 점이 돋보였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특정 주제를 가진
미술사 강좌에 많은 인원이 오고, 또 좋은 수강태도를 보이는 점이 강사 자신에게도 대견스레 여겨진
모양이었다.
처음 보여준 사진은 로트렉이 일본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 그리고 일본옷을 입은 모네부인 그림으로
감흥보다는 엉뚱하고 별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요약문 내용을 소개한다.
자포니즘(Japonisme 혹은 Japanism)이란? "일본주의.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의 미술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나타난 일본의 영향 현상을 이르는 말. 1860년대 파리에서 시작되어 1880-90년대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절정을 이루었던 일본 열풍 또는 일본 취향의 통칭으로 문화, 음악, 회화, 건축과
같은 예술분야뿐 아니라 연극, 오페라, 디자인, 패션, 실내장식, 상업광고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를 비롯하여 후기인상주의, 상징주의 및 아르누보, 유겐트
스틸과 같은 디자인운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일본 목판화인 우끼요에를 통해 아카데미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접하면서 탈 전통의 모더니즘 미술을 이루어내는 계기로 삼았다."
이 말은 결국 강의의 대략적인 전체 내용이나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 이후 400년이나 이어오던 사실주의 그림이라는 아카데미 전통을 인상주의 화가들이 벗어나는
때 일본 취향이 끼어든 것이다. 권선생은 우선 이를 누드화를 통해 설명해주었다.
(*이하 그림들은 일일이 적시하지 않더라도 모두 네이버나 독일 등 해외사이트 검색을 통해 옮겨온
것들임을 밝혀둔다. 일부는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1863-5년,오르세미술관)란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발표되었을 때 파격적인 그림으로 '저급한 음란물'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모델이 된 여성은 고급창녀였다고 한다. 그림은 전통적인 그림들처럼 깊이감이 없고 나체에도 음영이
덜 들어가며 무릎 등 뛰어나온 굴곡을 그대로 그리며 전체적으로 평면화된 나체 그림의 느낌을 준다.
반쯤 벗겨진 신발이며 흘러내린 침구나 목에 두른 끈, 꼬리를 치켜든 발치의 고양이 등등, 에로틱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전달해주고 꽃다발을 든 흑인 하녀는 검은 배경 속에 들어가 있다. 전혀 이상화
되지 않은 현실의 창녀를 그려 보인 것이다. 아울러 평면화된 이 그림이 마치 일본판화처럼 보인다고들
했단다. 이를 설명하면서는 늘 그렇듯 이전의 유명한 누드화들을 함께 비교해 보도록 해준다. 아래는
티치아노의 유명한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년,우피치미술관)이다. 화면의 깊이가 느껴지고, 순종
이미지의 잠든 개가 보인다.
참고로, 이 그림에 열광하며 높이 평가한 사람들 가운데는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인문주의를 아는 데는 관념적인 여러 말들보다도 티치아노의 비너스 그림 하나가 훨씬 낫다
고 일갈한 바 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관념론 철학을 뒤흔드는 명언이었다.
이런 전통 속에서 당시의 많은 화가들은 너도나도 이상화된 비너스를 많이들 그렸다고 한다. 아래는
당시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1863년,오르세미술관)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처럼 조개 위는
아니지만 바다 위에 누워 있고, 위에는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욕먹는 마네의 그림을 현대적이라고 옹호한 것이 에밀 졸라였고, 마네는 감사의 표시로 아래와 같은
졸라의 초상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올랭피아> 그림이 들어가 있고 일본화들도 보인다. 졸라는 과거의 '검은 전통'을 벗어나
'자연의 밝은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화가들은 파리를 떠나 시골로,
혹은 고갱처럼 타히티로 자연을 찾아갔다고 하였다.
19세기 후반은 제국주의 시대로 식민지 침탈이 이뤄지면서 서구인들의 이국적인 취향도 깊어졌다. 그
중에 만국박람회는 일본취미를 유행시키는 데 일조한 대표적인 계기가 되었다.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
에 일본이 공식 참가함으로써 우끼요에 등 미술품이나 공예품 등이 유럽인들에게 소개되면서 일본
취미가 확산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일본은 '난학'을 육성하면서 이미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에 미리부터
소개되고 있었다.
'우끼요에(浮世繪)'란 말 그대로 부세(내세와 대비되는 뜬 세상)의 그림이란 말이다. 일본의 17세기에서 20세기초까지 걸쳐 생산되었으며, 에도시대에 성립된 이래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담은 풍속화 형태의 채색목판화를 말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아래와 같은 그림은 이미
우리 눈에도 익을 만큼 흔히 뵌 그림들이다. 먼저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인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
齋:1760-1849년)의 후지산 시리즈 중 '凱風快晴(온화한 남풍과 쾌청한 날씨)'이란 작품이다.
아래는 같은 작가의 <가나자와에서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神奈川沖浪裏)>이다.
설명 중에 나왔던 작품 몇을 더 보도록 하자. 원래는 작품의 단순하지만 파격적인 구도와 관련하여 인상
파나 후기인상주의 계열의 작가들 작품과 비교해보며 설명하였던 그림들이다.
또한 아래는 강의에서 이름만 <토카이도(東海道)> 연작이라고 소개됐던, 서정성이 보이는 안도 시로
시게(安藤廣重:1797-1858년)의 시리즈작 중 몇 작품이다. 토쿄 동쪽의 바닷가를 여행하며 인상적인
풍경을 스케치한 이 유명한 기행화첩도 이참에 봐두자.
역시 강의중에 소개는 없었으나, 우끼요에에는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이밖에도 인물화, 특히 대중의
기호를 따라 일본기생 게이샤를 그린 미인화들, 심지어 춘화(春畵)도 많이 생산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정서로는 추잡해서 보기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그림들도 많았다.
우끼요에의 단순하지만 과감하고 파격적인 구성은 풍경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 서구 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역사화보다 등급이 낮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풍경화가 그려지면서 이런 관습을 벗어던졌다.
아래는 푸생이 그린 전형적인 과거의 풍경화 <포기온의 장례>(1646년)라는 그림이다. 가운데 소실점을
가진 원근법대로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길과 인물, 주변의 풍경들이 점점 흐릿
하게 그려진다.
헌데 모네는 물에 비친 <포플러>(1891년)라는 그림을 이렇게 그렸다.
또한 빈센트 반 고흐도 <탕귀영감>(1887-8년,로댕미술관) 배경 그림에 역시 우끼요에를 넣어서 그렸다.
고흐는 아를르에 가서 고갱이나 베르나르를 초대하여 화가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였던 비극의 화가였다.
그러나 그가 아는 일본은 타자화된 이미지로, 실제와는 다른 가상의 일본에 지나지 않았다. 아를르에 온
고갱과 불화를 겪으며 귀를 자르고 혼자 남아 고심하던 고흐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고갱에게서도 자포니즘의 영향이 있었다. 아래 그림은 그의 3대걸작 중의 하나인 <설교 후의 환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88년)이란 작품이다. 비현실적인 붉은 바탕에 화면을 가로지른 나무는 현실과
환영의 세계를 대조시켜 나눠놓는다. 그 자신 이런 구성을 '종합주의'라고 불렀다지만 이런 그림은 그로
하여금 상징주의 그림의 선구자로 여겨지게 하였다고 한다.
원작의 국내 전시와 관련하여 언론에서도 소개된 고갱의 첫 종교주제 그림인 이 그림은 브르타뉴 지방
의 여인들한테서 보이는 '미신적'인 신앙심을 그린 그림이다. 이런 구성과 평면화된 색채, 그리고 뒤엉
키어 드잡이하는 기괴한 느낌을 주는 싸움 장면 등은 우끼요에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전시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진 작품인 만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중에 작품해석을
더 찾아보고 정리한 내용들이다. 그림에서 노란 날개를 단 천사와 그에게 허리를 굽히고 붙잡힌 자세의
야곱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로서 일찍이 렘브란트나 들라크루아 등도 이 모티
브를 그림으로 남겼다. 이 싸움은 신성(神性)과 인간성의 갈등을 나타내며, 선택받은 자의 시련을 뜻한
다는 이 장면은 결국 야곱의 승리로 끝나고 천사는 야곱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대신 그의 엉덩이뼈를
다치게 하였다고 한다. 고갱 자신은 이 작품을 그릴 때 함께 '종합주의'를 추구하던 동료 베르나르의
작품과 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먼저 베르나르의 1888년작인 <초원
의 브르타뉴 여인들>과 <보리베기>를 본다. 색채와 여인들 형상을 주목해보자.
다음은 들라크루아의 성당벽화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1854~61년)이다. 근육질의 영웅적인 전투
장면으로 그려졌다.
이에 비하면 고갱의 싸움 모습은 작게 그려 왜소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실제로 호쿠사이
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란 지적이 있다.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몸동작이다.
찾아보니 출처는 호쿠사이의 <호쿠사이 망가(北斎漫画)>였다. 이 책은 그의 나이 55세 때인 1814년에
초편(初編)을 출판한 이래 1878년 전 15편으로 완간되어 인물, 풍속, 동식물, 요괴 등의 약 4,000여 그림
이 담긴 만화책이다. 1830년대에 일본 도자기가 수출될 때 이 만화 그림들이 우끼요에 그림들과 함께
우연히 그 싸개로 쓰여 완충제 역할을 한 것이 프랑스의 모네나 고갱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Wikipedia 일본에서의 설명). 마침 스모선수들의 드잡이 장면을 그린 그림들
에서 위와 같은 몸동작 모습이 보였다.
권선생은 강의에서 자포니즘의 양상들을 일본적 소재의 모방과 차용(이국취미), 모더니즘적 양식이나
기법 실험과의 결합, 근대도시와 일상의 근대성 등으로 나눠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일본 모티브들을
그림에 담은 화가들에게서 결국 '서구의 일본에 대한 낭만적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엿보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구인들이 일본 취향에 젖어든 반면 일본의 화가들은 서구적 근대를 배우며 오히려 그들의 고전적인
그림을 배워왔다는 문화적 '교차'현상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런 영향이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작품에서까지 읽혀진다는 것이었다. 자포니즘은 장식미술인 아르누보의 흐름이나
모더니즘 건축에서까지 읽힌다는 설명이었고, 내내 일본인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주제라고도 했다.
마침 3대걸작이 다 국내에 전시중인 고갱전 전시와 알폰스 무하전(예술의전당) 전시도 가볼 만하다고
추천하였다. 추석 다음 주는 답사로 서울의 미술관과 과천의 국현대미술관을 가는데, 이 블록버스터
고갱전도 해설가를 붙여 함께 보기로 했다는 공지가 있었다. 무하전은 솔찍히 놀랐다! 흔히 세기말의
데카당스라고 지탄받기도 하던 그림들이 이제는 버젓하게 값비싼 전시로 여겨지며 소개되니 말이다.
첫댓글 오늘 고갱 그림의 설명 부분을 추가로 더 보완하였음!
수고 하셨습니다.
소중한 강의를 집에서 볼 수 있다니...
고맙습니다^^
수준높은 미술평론입니다. 춘천에서 정재경 위원의 평론을 게재할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미술평론'은 아닙니다. 단지 남들이 다 해놓은 좋은 이야기를 모니터링의 기회를 통해 나름으로 잘 정리해보려 한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