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2편]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
10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설교]
시편 102편은 대표적인 탄식 시입니다. 시편의 표제를 보십시오. [고난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표제부터 아주 직설적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되, 특별히 지금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곤경에 대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상 탄식과 부르짖음이 주를 이룹니다. 오늘 묵상 본문인 1~11절까지가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본문 1~2절입니다. 이 단락은 이 시의 서언입니다. 시인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본문 1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그러면서 2절에서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시인은 지금 자신이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정확히 어떤 괴로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구절만 보아도 지금 시인이 맞이한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 있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성경에서 이러한 탄식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입술에서 거론될 때가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신다면, 그것은 대부분 불신자들이 아닐까 ….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할까요? 불신자들뿐 아니라 신자들도 역시 살다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분명히 죄의 문제가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꼭 죄의 문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 삶을 인도하실 때,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길(섭리) 아래서 까닭 없이 얼굴을 가리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날들은 사실상 우리의 이해 밖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우리는 사실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이러한 날들이 찾아왔을 때, 오늘 본문과 같이 탄식 또 탄식할 뿐이지요.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얼굴을 가리지 마소서!’
이어진 둘째 단락입니다. 본문 3~11절까지 말씀입니다. 이 단락은 본문에서 시인이 겪고 있는 괴로움의 증상과 그 이유를 밝힙니다.
우선 괴로움의 증상입니다. 본문 3~9절까지 말씀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여러 가지 증상들을 호소합니다. 본문 3~4절, 여기서 시인은 자신을 연기와 풀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연기와 풀은 모두 금방 피었다, 금방 사라집니다. 이렇듯 시인은 자신을 연기와 풀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연기처럼 덧없고, 풀처럼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뼈가 숯 같이 탔다고 말씀합니다. 숯은 정확히 ‘화덕’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시인은 화덕 속에 검게 타든 음식처럼 검게 타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실제로 어떤 병에 들린 것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것은 현재 시인이 겪고 있는 영적인 상태를 알려줍니다. 검게 타든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처럼, 지금 시인의 영적인 상태도 현저히 타든 것입니다.
또한 본문 5~7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어두운 밤에 지저귀는 새처럼 외롭다고 고백합니다. 광야의 올빼미…. 황폐한 곳의 부엉이…. 한밤중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모두 시인의 외로움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8~9절, 여기서 시인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자신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을 설명합니다. 특별히 8절의 이 대목,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지금 현재 시인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대번에 알려줍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바로 원수들로 인해 종일 괴로움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이때 원수들은 누구일까? 내일 함께 묵상하게 될 본문(12절 이하)을 보면 이들은 추측컨대 포로기 당시 이스라엘을 경멸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며? 그런데 왜 이 꼴이냐?’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을 조롱했던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시인은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의 원인을 결국에는 다시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본문 10절,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지금 시인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생각했을 때, 이 말씀은 꼭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포로기 당시, 선지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씀. ‘너희가 당하는 이 고통은 오로지 너희의 죄로 인함이라!’ 이렇게 말씀함으로써, 백성들이 죄를 돌이키고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때문에 이 말씀도 역시 어떻게 보면 이 말씀과 부합해보입니다. 마치 선지자가 이 시를 지은 시인에게 와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움을 겪는 것은 다 당신의 죄 때문이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결코 시인을 정죄해선 안 됩니다. 설령 시인이 자신의 죄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인을 결코 정죄해선 안 됩니다. 살다보면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보면 때로는 이해 못할 고통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 성도님들께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내가 뭐 죄 범한 게 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의 분노와 진노를 거두어주옵소서.’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혹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내 상황을 지금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역시 이러한 말 못할 고통 중에 빠질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불연 듯 찾아오는 삶의 고통.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설령 내 죄로 인한 고통이든지, 혹은 도무지 까닭 모를/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든지, 우리는 우리 삶에 닥쳐온 고통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건져주옵소서. 부디 주의 얼굴빛을 내게 비춰주옵소서.’ 이러한 간구로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듯 삶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늘 언제나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