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으면 와서 살아봐!
바라보는 것과 그곳에 사는 것과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도시에 사는 사람은 전원의 풍경 속에 살기를 원하고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은 도시의 삶을 꿈꾼다.
“산에 가면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에 가면 산을 그리워 한다.”는 옛 사람들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것보다 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
2001년, 이른 봄, 태백에서 김포까지 천 삼백리 한강을 맨 처음 걸어가던 때의 일이다.
‘소나무 숲 아래로 난 옛길은 마치 고향집을 찾아가는 느낌을 준다. 양지촌마을에 이르러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는 노루목마을 쪽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는데 먼발치의 무너진 다리 위로 어미염소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둘러 뛰어가 사진을 찍었고 그 염소들은 느닷없이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놀란 채 강 건너 국도 쪽으로 달려갔다. 걱정이 된 두 부부가 뒤따라오는 것을 본 <사람과 산> 김현준 기자가 "아줌마 좋은데 사시네요" 하고 말을 건네자 뒤를 돌아보더니 "그렇게 좋으면 와서 살아 보세요"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댄다.
당황한 김현준기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쓴 사람이 조선후기의 실학자였던 이학규李學逵이다. 그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 글에 실려 있다.
“전에 관동지방을 유람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물가를 바라보니 인가가 물가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고, 단풍나무에 떡갈나무가 서 있는데, 그 사이로 초가지붕이 보이고 아침 햇살이 비쳐드니 서리 내린 나뭇잎이 노랗기도 하고 붉기도 하였습니다. 땔나무를 실은 작은 배와 소금 실은 조각배가 서로 바라보며 오고 가며, 채소밭과 논두렁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하더군요, 또한 지팡이를 짚고 밭두둑에 멈추어 서 있는 사람,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사람, 어린애를 데리고 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 나란히 쟁기를 끄는 사람도 있었으며, 닭과 개가 여기저기 나다니고 밥 짓는 연기가 간간이 일어났지요.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내달리고 흥취가 일어나, ‘훗날 식구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면 근심도 잊을 뿐 아니라 노년을 마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요.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이야기를 내 친구인 포원자蒲園子에게 하였더니, 포원자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곳은 내가 예전에 가 보았던 곳이라네. 내가 거기에 가 보니, 마을 앞에는 메마른 자갈밭만 보이고 채소의 싹도 듬성듬성하게만 돋아나 있고, 집은 낮은 데다가 비좁아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려야 했었네. 마을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네.
“여름에 장마가 저 강물이 불어나면 어김없이 물바다가 되어 한 해 동안 애써 농사지은 작물을 서쪽 물결에 보내버리게 돕지요. 오래도록 가뭄이 계속되면 자갈땅이 후끈 달아올라 온갖 곡식이 바짝 말라 버린답니다. 오직 비와 햇볕이 때에 맞고 들판과 습지의 곡식이 모두 잘 익어야 우리 마을에서는 느긋하게 숨을 내쉬며 근심이 없을 수 있지요.”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었는데, 아침과 낮에는 지낼만하였지만 어스름이 내린 뒤에는 문을 나가면 호랑이에게 물려가기 때문에 문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호랑이 그물을 친다네.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은 집이 없었고, 이가 없는 집이 없었네. 가려운 데를 긁어대느라 부스럼이 되었고, 밤새도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지, 그때는 정말이지 미친 듯 고함을 지르고 싶었네. 앞서 말한 땔나무와 소금 실은 작은 배, 채소밭과 논둑을 몽땅 다 나에게 주면서 하룻밤을 더 머물라고 부탁해도 나는 머리를 내저으며 서둘러 도망갔을 걸세.‘
이학규의 <상상속의 공간과 실제의 현실>이란 글의 일부분이다.
상상과 실제의 차이, 살아가면서 그것이 그 차이를 실감할 때가 너무도 많다. 그래도 그런 꿈마저 꿀 수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할까? 2024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