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 아빠의 폭력 때문에 2년 전 집을 나와 지금은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어요.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저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습니다.
이제 조금 안정되나 싶었는데, 요즘 아이가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냅니다. 게임이 뜻대로 안 되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고, 학교에서도 친구와 다툼이 잦아 선생님께 연락이 몇 번 왔어요. 화가 가라앉으면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며 울기도 합니다.
화내는 모습이 아이 아빠와 너무 닮아 보여서 겁이 납니다. 제가 아이를 지키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아 죄책감도 들어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어머님.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가 작은 일에도 폭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화를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고 가라앉히는지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보고 겪으며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본 아이는 화를 다루는 다른 방법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거예요. 미국에서 젊은 성인 67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어린 시절 부모 사이의 폭력을 목격했거나 직접 신체적 학대를 겪은 사람들은 분노를 조절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아빠를 닮아 가는 게 아니라, 화를 다루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상태라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며 우는 모습은 아이도 자기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신호예요.
같은 연구에서는 이런 분노 조절의 어려움이 이후 연인 관계에서 상처받는 경험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감정이 너무 크게 요동치면 위험한 사람이나 상황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일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합니다. 겁을 드리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지금 아이가 감정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앞으로의 삶에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행히 분노 조절은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스페인에서 가정폭력을 목격한 7~16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12주 동안 집단 치료를 진행한 연구가 있어요. 감정에 이름 붙이기, 불편한 감정을 몸과 마음으로 가라앉히는 방법, 친구에게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는 방법 등을 차근차근 배웠는데, 치료 후 아이들의 트라우마 증상과 우울감이 줄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석 달이 지난 뒤에는 그 효과가 더 뚜렷해졌어요. 이 치료는 아이가 폭력에서 벗어나 안전한 환경에 있을 때 시작했고, 엄마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집에서는 아이가 화를 낼 때 같이 화로 맞서기보다 어머님이 먼저 차분함을 지켜 주세요.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님의 모습으로 보여 주시는 게 가장 좋은 배움이 됩니다. 아이가 진정된 뒤에는 "아까 많이 억울했구나", "게임이 안 돼서 속상했지?"처럼 그때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세요. 화 밑에 숨은 억울함, 서운함, 무서움을 알아차리게 되면 아이도 조금씩 자기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화가 치밀 때 숨을 천천히 크게 쉬기, 잠시 방에 들어가 있기처럼 함께 정한 진정 방법을 평소에 연습해 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물건을 던지는 행동에는 "화는 날 수 있지만 던지는 건 안 돼"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 주시되, 아이 자체를 나쁜 아이로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다툼이 반복되고 있다면 전문 상담을 받아 보시길 권해 드려요. 아이의 분노 뒤에 어린 시절의 상처나 불안이 남아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자신을 돌보는 일도 꼭 챙기셨으면 해요. 엄마가 안정되어 있을수록 아이도 더 빨리 회복합니다. 혹시라도 아이 아빠와의 관계에서 다시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112나 여성긴급전화 1366에 도움을 요청해 주세요.
아이의 분노는 아이가 겪은 아픔의 흔적이지, 아이의 미래가 정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전한 곳에서 화를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 가면, 아이는 충분히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아이 곁을 지켜 오신 것처럼, 그 배움의 길에도 함께해 주세요.
"화를 참으라고 말하기보다, 화를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함께 배울 때 아이의 마음은 회복됩니다."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해결 방안 3가지
①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가장 먼저 만들어 주세요
회복은 폭력이 멈추고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시작됩니다. 아이 앞에서 큰 소리로 다투거나 물건을 던지는 일은 피하고, 갈등이 생기면 아이가 없는 곳에서 차분히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아이에게 "그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분명히 말해 주세요. 만약 지금도 가정 안에 폭력이 있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세요. 긴급한 상황에서는 112, 상담과 보호가 필요할 때는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화를 다루는 방법을 함께 연습해 주세요
폭력을 목격한 아이는 무섭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이 뒤섞여 있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합니다. "지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 것 같기도 하네"처럼 아이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세요.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함께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거나, 잠시 다른 공간으로 가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평소에 연습해 두면 좋습니다. 아이가 화를 폭력이 아닌 말로 표현했을 때는 꼭 알아차리고 칭찬해 주세요.
③ 보호자와의 관계를 단단히 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주세요
아이의 회복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보호자와의 안정적인 관계입니다. 매일 짧게라도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하거나 함께 노는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또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 기술을 배우는 상담이나 집단 프로그램은 아이의 외상 증상과 우울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 자신도 지치고 상처받았을 수 있으니, 보호자 역시 함께 상담을 받는 것을 권합니다.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까지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잔소리만 할 것인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회성에 대해 20여 년간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온 이향숙 박사의 오랜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소개 中)
*참고문헌
Lacasa, F., Álvarez, M., Navarro, M.-Á., Richart, M.-T., San, L., & Ortiz, E.-M. (2018). Emotion regulation and interpersonal group therapy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witnessing domestic violence: A preliminary uncontrolled trial. Journal of Child & Adolescent Trauma, 11, 269–275.
Iverson, K. M., McLaughlin, K. A., Adair, K. C., & Monson, C. M. (2014). Anger-related dysregulation as a factor linking childhood physical abuse and interparental violence to intimate partner violence experiences. Violence and Victims, 29(4), 564–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