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21. 7. 18. (일)
ㅇ날씨; 맑음(현지 기온 최고 31ºc)
ㅇ홀로 탐방
2. 교통
ㅇ갈때
*청량리역; 4,1호선 전철 이용.
*청량리-용문역; 경의중앙선 전철 이용.
ㅇ올때
*용문사관광단지 버스정류장-용문역; 7-4번 그린 시내버스 이용.
*용문역-청량리역; 경의중앙선 전철 이용.
*청량리역에서 1, 4호선 전철 이용 귀가.
3. 진행경과
ㅇ진행코스
*용문역-양묘장입구-다문8리표석-다문6리화전교-장미 인동초 머루 포도 다래 넝쿨 터널길-
용문국민체육센터(6-1인증대, 흑천 용문천 합류지점))-마룡교-마룡2리회관-농협창고-굴다리-
용소(징검다리)-세장동구 암-세심정-산숲길(고갯마루 3거리,6-2인증대)-굴다리-오촌리 숲길-
341지방도 합류-신점2교-용문산관광안내센터-용문산 관광단지-용문사.
ㅇ탐방거리
gps 측정거리; 14.71km.(6코스 10km+4.71km 용문사와 세심정 탐방 거리추가) <개념도 참조>
4. 물소리길 6코스
1)용문산의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물소리길 마지막 여정인 은행나무길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흑천 부근
에서 용문산 자락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2)물소리와 더불어 산의 소리까지 느낄수 있는 길입니다.
3)도착지에는 천연기념물 30호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으며 수고 42m로 만추의 노란풍광이 압권입니다.
물소리길은 전 코스가 강과 하천을 품고 있어 시원한 바람을 따라 맑은 물소리 따라 걷는 길입니다.
4)물소리 5코스 까지의 구간은 경기옛길중 평해길(관동대로) 4,5,6길과 같은 구간을 지나왔으나 물소리길
6코스는 용문역에서 평해길과 작별하고 흑천과 용문천변을 따르다가 용문면 덕촌리부터 산길구간으로
진행 용문사에 이릅니다.
*용문산과 용문사 단상
1)친구들과 용문산을 처음 찾은 때를 1962 . 4. 7.로 기억합니다.
용문역까지 기차로 가서 용문사행 대중교통이 없던 때라 도보로 무거운 16인용 몽고텐트와 쌀등
무거운 식품과 취사 용구를 메고 비포장길을 걸어 어둠이 깃들 즈음에 용문사옆 계곡 위의 평지에
텐트를 쳤습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할때 4월임에도 눈발이 날리며 쌀쌀한 날씨를 보여 야영에 어려움을 예상했으나
밤이되니 눈이 조금 쌓이기도 했습니다.
밤날씨가 몹시추워 모닥불을 피우려 용문사의 땔감을 허락없이 갖어다 밤새워 불을 피워, 다음날
아침 주지스님에게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용문사는 그 규모가 아주 빈약하여 조그만 건물 하나는 부처님을 모시고, 또 한채는 요사채로
보였습니다.
한 밤중에, 무장한 군인들의 불심 검문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용문산계곡은 간첩 침투 루트로
군인들이 밤이면 잠복 근무를 하는 곳 이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의 모임이 지금 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철 없던 그 때의 일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이번 용문사 탐방에서 계곡에, 그리고 용문사를 찾는 사람들이 남녀 노소 구분 없이 의외로 많아
"이 더운 날에"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선 순간, 도심의 에어컨 가동중인 건물에 들어 선 듯한 확연한 기온차를 느꼈는데
이는, 길가의 실 개천으로 차거운 물이 흐르고, 용문사 계곡도 최근 잦은 비로 수량이 많았으며,
높이 자란 울창한 숲이 열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용문사(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1)위치;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2)창건;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 한것으로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이
친이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도 합니다.
3)연혁; 고려 우왕4년(1378) 지천대사(정지국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슴.
세종 29년(1447년) 수양대군이 모후 소현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3년(1457)
왕명으로 중수 함.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
순종 원년(1907) 의병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움.
1909-1938년 취운 태욱스님이 중건함.
1982-현재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 미소전(오백나한전) 산령각 칠성각 요사채 일주문 수련관
다원등을 중건하고 사리탑 미륵불등을 조성.
4)보유 문화재
ㅇ은행나무
1,위치; 용문면신점리 산99-1.
2,천연기념물 30호(1962. 12. 3.) 지정사유; 노거수.
3, 규모; 면적 282㎡. 수고 42m. 가슴높이 둘레 14m.
가지퍼짐; 동 14.1m. 서 13m. 남 12m. 북16.4m.
4, 수령; 1,100년.
5,이 나무는 암 은행나무로 줄기 아랫 부분에 큰혹이 있는 것이 특징.
6,한국나무중 가장 키가 크며 우람하고 당당한 위엄을 풍기는 명목임.
7,신라 경순왕의 세자 마의 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 하고
또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함.
8,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전쟁 화재 있었으나 그 화를 면했다고 함.
사천왕전이 불탄뒤 부터는이 나무를 천왕목으로 삼고 있다고 함.
9,여러 이야기가 많으며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소리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고 할 정도로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슴.
10,조선 세종때 정삼품보다 높은 당상 직첩을 하사받은 명목임.
ㅇ정지국사 부도및 비
1)위치;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산99-1.
조선 전기 승려 정지국사 부도와 비.
2)보물 531호(1971. 7. 7. 지정)
3)부도 높이; 2.15m. 비높이; 1.2m. 조선 초기 의 부도와 비.
4)정지국사; 1395년(태조4)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 다비하였으며 이 때 사리가 많이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를 추증 하였다고 함.
ㅇ금동관음보살좌상
1)명칭; 양평군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2)보물 1790호(2012. 1. 27.지정)
3)시대; 고려시대. 고려후기 14세기에 크게 유행한 금동보살좌상의 전형임.
*세심정
1)위치;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309-2.
2)조선시대 정자. 양평군 향토유적 23호.
3)조선 중종때 대사헌 조광조와 김식의 수제자 조욱이 기묘사화의 여화를 피해 낙향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정자 임.
조욱을 가리켜 그 문하생이나 주위 사람들이 용문선생이라 하였슴.
정자로 부터 300m거리의 바위에 용문선생이 손수 "평양조씨세장동구"라 새긴 글씨가 현재도
선명히 남아있슴.
정자 바로 앞에 작은 연못이 있으며 주위에는 노송과 고목이 울창하다.
정자는 5평크기의 팔작지붕으로된 목조건물이며 1985년 군에서 원형대로 중수하였슴.
5. 풍광사진
1)용문역-흑천구간의 풍광
▲흑천 징검다리
▲한국의 마터호른 백운봉
▲가운데 깃대봉 산줄기의 좌, 백운봉 우, 용문산 가섭봉.
▲흑천의 왜가리 휴식
2)용문국민체육센터 주변 풍광
▲포도 다래 머루 넝쿨 터널
▲용문 국민체육센터, 멀리 칠읍산이 보인다.
(용문면이 행정구역상의 면단위 중 가장 "큰 면"이라고 합니다.)
3)흑천 용문천 합류부-용소 구간의 풍광
▲산능의 하늘이 예쁘다
▲용소교 아래 암반 물길
▲용소 징검다리
▲용소
▲용소
4)세장공구-세심정 구간의 풍광
▲세장동구 암; 세장지란 조상대대로 묘를 쓰는 곳입니다. 세장동구란 이렇한 의미의 땅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를 말합니다. 조욱선생은 세상으로 부터 나를 감추었다 또는 묻었다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위에 이렇게 남겼다고 합니다.
▲조욱 신도비
▲이상, 고운 하늘의 구름
▲세심정
▲세심정 안의 시편액 들
5)산,숲길 구간의 풍광
▲산 숲길 초입에서 본 용문산 정상부
▲이상, 산숲길 의 숲 모습
▲건너다 본 중원산
▲좌, 용조봉
6)용문산관광단지 풍광
▲용문산관광단지 입구
▲용문산 정상. 용문산을 "미지산"이라고도 합니다.
▲용조봉 원경
7)용문사 풍광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1790호
▲정지국사 부도; 보물 531호(관음전 동쪽 능선 위 쪽에 자리 합니다)
▲정지국사 부도비; 부도 위치에서 아래로 80m 지점에 위치함.
▲이상, 은행나무; 1,100여년의 삶이 너무 당당하고 건강하다.
▲잔디 광장
▲용문8경 시비
8)꽃
▲나리
▲해바라기
▲무궁화가 만발할때 쯤, 항상 무더움이 심했던 기억이........
▲능소화
9)트랭글 궤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