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비가오네..."
종례를 받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 나는 가만히 서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가만히 서있으려니 심심해져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우산을 쓰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얘들이 있는가 하면, 비를 맞으며 뛰어 나가는 얘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들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에 떠나질 않는다.
그냥 멍 때리며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이~우빈이"
"시끄러 새끼야. 오늘 승철이네 집가냐?"
그 아이다.
이쪽으로 오는 듯 하다.
목소리가 가까워 지고 있으니까.
초초해졌다.
혼자 기운 없이 비 오는걸 바라보는 내 모습을 들키기 싫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 김새론 아니야?"
"......."
어쩌지... 그 아이가 이미 날 발견한듯 하다.
나는 안절부절 손톱을 물어 뜯다가 김새론이 아닌 척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냅다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아..창피해"
얼굴이 화끈 화끈 달아오른다.
교복이 다 빗물로 젖어들어 갔다.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교문을 통과하려는데 교문 앞에 익숙한 차가 세워져 있었다.
"새론아 타!"
"어? 언니!"
-
"우산 없는거 알았으면 학교 안으로 들어갈껄~"
"아니야 언니. 어차피 차도 못대 좁아서."
"으구 그렇다고 비를 맞고와? 친구들이랑 같이 우산 쓰고나오지."
"......"
언니는 아직 모른다.
나에게 친구가 없다는 걸.
"집으로 가?"
"응. 언니는 안 들어가?"
"응. 들어가려고 했는데 세준이가 부르네~"
"아..."
"가면 태민이 있을거야. 태민이 있으니까 저녁은 해결이겠다."
"응. 그렇네."
남자친구를 보러가는 언니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콧노래를 부르는 언니의 운전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태민아 누나왔어"
"어 왔어? 누나 있잖아 오늘은 내가 뭘 만든 줄 알아?"
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한손엔 뒤집개를 들고 다른 한손엔 무언갈 숨기고 달려드는 태민이.
그러곤 엄청 뿌듯한 표정으로 숨긴 무언가를 내 보인다.
"와 맛있겠네"
"응 대박 맛있어 먹고 울지나 마~"
다른 사춘기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밝고 긍정적이고 누나도 잘 따르는 태민이.
유일한 취미생활인 요리 덕이 크다.
자신이 만든 돈가스를 들고 방방 뛰어다니는 태민이.
나도 저렇게 밝아지고 싶다.
그때 젖은 교복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김새론.]
그 아이에게서 온 문자다.
발신자 '김우빈' 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온 몸이 굳는듯 했다.
한참을 뚫어져라 그 아이에게 온 문자를 보는데 태민이가 휴대폰을 빼앗으려 한다.
"뭐해 누나. 교복은 다 젖어가지구. 얼른 밥 먹어."
"......"
눈물이 차오른다.
애써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꾸역꾸역 집어 넣고 고개를 숙인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이 아이와 잘못 된 것 일까...
아마 작년 봄 이었던것 같다.
*
고등학교 입학식.
반 전체에 감도는 어색한 분위기.
아직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아이들끼리 무리를 지어 얘기 하느라 어수선하다.
이 주변 중학교를 나왔지만 유일하게 친구라고 있던 윤정이와 한솔이가 다른 고등학교에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 외롭게 앉아 있었다.
내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서 말을 걸어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앉아 주지않았다.
시간은 지나고 내 옆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자리가 꽉 찼다.
또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담임이 인사를 건네고 출석을 부른다.
"김새론"
"네"
"옆자리가 비네? 혹시 친구가 아직 안왔니?"
"아니요.."
출석을 부르다 말고 내 옆자리를 묻는 담임선생님.
나도 내 옆자리에 누가 앉게 될지 궁금했다.
어차피 금방 친한얘들끼리 자리를 바꿀테지만.
"김우빈"
'쾅!'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우악스럽게 뒷문이 열리고.
반 아이들의 온 시선을 받으며 그 아이는 대답했다.
"네~ 지각안했죠 선생님? 출석 부르기 전에 왔잖아요."
능글맞게 웃으며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막혔다.
담임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앉기나 하렴."
아무도 앉지 않은 내 옆자리.
그 아이가 앉게 되었다.
물론 지각을 해서 어쩔수 없이 남은 자리에 앉게 된 것이지만 기뻤다.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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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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