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394장(구 449장, 이 세상의 친구들)
본문의 중심 내용 :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도 끝까지 자신의 결백과 의로움을 주장하며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확신합니다.
[성경읽기]
1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7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13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8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21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23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메시지]
욥은 오늘 말씀에서 엄중하게 맹세를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욥은 말합니다. “나를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하게 하시며, 나를 몹시 괴롭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맹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비참한 고난을 허락하심으로써, 자신을 마치 불의한 자가 저주를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정직한 말을 하고(4절), 순전하고 의롭다는 것을(5,6절) 주님만은 아신다고 말합니다. “(욥 27:5-6)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비록 친구들인 나를 죄인이라고 정죄한다고 해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온 생애를 헛된 것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배짱이 있을까요?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당하는 재난이, 질병이, 고난이, 실패가 마치 “너 그동안 인생 헛살았어”라고 소리지르는 것 같을 때, 믿음으로 살았는 대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히려 고난이 찾아올 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을 때, “그렇게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 쳤던 것이 다 헛된 일이야. 어차피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지 않아”하고 자포자기하고 망가진 인생을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던 히스기야 왕이 갑자기 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전달됩니다. “(사 38:1-3)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제 너는 곧 죽을 것이니 삶을 정리하고 유언을 남기라는 것입니다. 이따 히스기야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내용은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히스기야가 죽는 것이 두렵거나 억울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살아왔던 그 삶이 송두리째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지는 것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께 순종하며 살았던 삶이 부정당하는 것같은 것을 신자는 그 무엇보다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내 믿음은 헛것이 아니랴. 내가 믿이왔던 하나님은 거짓 하나님이 아니야. 나는 이길을 계속 갈거야. 고난이 나를 이길 수 없어. 실패가 온다고 해도, 무화가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에 열매가 없어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거야. 때로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그분은 내 의로움을 알고 계시며 이 억울함을 풀어주실 재판관이십니다.
욥은 오늘 1장 13절에서 23절 말씀에서 그동안 욥의 친구들이 욥을 미난하기 위해 말해왔던 악인이 처할 비참한 운명에 대해 직접 말합니다. 욥이 하는 말은 지금까지 친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붙인 것 같습니다. “맞아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한다는 너희 말이 맞아. 그런데 그 멸망한 막인들이 누군줄 알아. 바로 너희들이야.” 지금까지 욥은 친구들의 공격에도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너희들이 정말 나를 위로하러 온 것이 맞냐고, 너희들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고 원망은 했지만 친구들을 저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악인의 비참한 종말에 대해 말하면서 바로 너희들이 그런 악인들이라고 합니다. “(욥 27: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욥과 친구들이 서로 격한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급기야 세 번째 격론을 벌이면서 욥조차도 친구들과 적대관계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악인들과 동일시합니다.
결국 나중에 욥이 최종적으로 회복하게 될 때 욥과 친구들간에 하나님이 중재하시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라고 하실 만큼 사이가 벌어져 버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가장 고통을 주고 멀어지는 관계가 되어버릴 때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상처를 주는 것은 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들, 믿었던 이웃과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억울함을 당할 때 상처는 더욱 크고 깊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악인의 운명을 이야기 할 때와 욥이 악인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전된다는 것입니다. “(욥 27:16-17)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의인과 악인이 마지막에 서로 역전된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단지 악인의 멸망에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의인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나중에 모든 논쟁이 끝이 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욥과 친구들의 운명은 역전되었습니다. “(욥 42:7-8)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친구들은 욥을 찾아가 빌어야 했고, 욥은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은 끝내 의인에게 복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억울한 일을 풀어주시고, 이땅에서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주십니다.
욥은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비록 의인으로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심판받을 자들은 결국 악인이라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에 똑같은 악으로 맞서지 말고, 원수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에게 맡기며,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악인의 성공이나 행운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의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끝까지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지하여 의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악인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결국은 멸망할 그들의 무서운 종말을 기억하며, 고난 중에라도 더욱 순전함으로 믿음을 지켜나갑시다.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의로운 길로 걸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