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24 14:18 | 수정 : 2013.10.27 14:39
지난 10월 2일 《미디어오늘》 사이트에는 ‘[단독] 김무성, 새누리 연찬회에서 여기자 신체접촉 등 추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일부는 이렇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월 여성 기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접촉 당사자인 기자에게 공식사과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매체 정치부 기자들의 증언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리조트)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가 끝나고 저녁시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김 의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종합일간지는 술이 취한 상태인 김 의원이 술자리에서 자사 기자에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김 의원 측에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뒷부분 생략)
◇‘성추행’ 등 자극적인 제목 단 일부 언론
기사가 실린 직후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김무성 ‘女기자 성추행 논란’에 “만취 상태여서” 등의 제목으로 《미디어오늘》 기사를 인용보도했다. 과거 강용석 전 의원이 했던 여성 아나운서 폄하 발언 등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력’을 다시 들추기도 했다. 성추행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쓴 것이다.
같은 날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언론브리핑을 했다. “‘성희롱’보다 직접적 신체 접촉이 있었던 ‘성추행’이 더 사안이 중함을 모르진 않을 텐데, 설마하니 실세 의원은 그래도 된다는 묵인이 아니길 바란다”며 “술자리에서는 그 정도쯤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는 새누리당의 실세로, 차기 대권 도전 운운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는 게 요지였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무성 의원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김무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여기자 추행’이라는 검색어가 뜬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민주당 이 원내대변인의 브리핑대로라면 ‘실세(實勢) 대선 주자’의 성추행 사건인데 언론계가 좀 조용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아예 인용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많았다.
게다가 ‘성추행’당한 것으로 지목된 A 기자가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대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다.
김 의원 측과 A 기자,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정치부 기자들에게 연락해 그날의 일을 물었다. 기사를 작성한 《미디어오늘》의 이재진 기자에게도 취재 배경 등을 물었다.
관련인들의 설명을 종합해 재구성해 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8월 29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열렸다. 강원도 홍천의 비발디파크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행사였다.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이 참석했고, 각 언론사의 정치부 여당 출입기자들도 함께했다. 주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이었다. 강의와 간담회 등의 공식 식순이 끝나고 의원들과 기자들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가 열렸다. 장소는 비발디파크 지하에 있는 술집이었다. 술자리는 꽤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었던 방송기자 B씨의 말이다.
“술집에는 영감(국회의원을 지칭)들이랑 기자밖에 없었어요. 사람이 많았고 의원들 기자들 모두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정확히 누구누구가 있었는지는 기억 못 해요. 식당 두 군데에 나눠 앉아 있었고, 친한 기자들끼리 여기 한 팀 저기 한 팀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었어요. 영감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김무성 의원이 먼저 연락해 사과
연찬회에 참석한 기자는 180여명. 새누리당 대변인실에 문의해 보니 대략 40~50곳의 언론사에서 각 회사당 서너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대개 이런 자리에서는 친분이 있는 기자들, 의원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많이 취해 있었다고 한다. 기자 D씨의 말이다.
“‘무대’는 상당히 많이 취해 있었어요.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만취해 있었죠.”
‘무대’는 김무성 의원의 별칭이다. ‘김무성 대장’을 줄인 말이다. 기자들 한 무리와 어울려 있던 김 의원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의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김 의원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당시 양쪽에 앉은 사람들의 허벅지(혹은 무릎)를 짚고 일어났다고 한다. 김 의원의 양옆에는 각각 여자 기자와 남자 기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 기자가 《미디어오늘》 기사에서 추행 피해자로 명시된 A 기자다. 이 자리에서 해당 기자들이 김 의원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연찬회가 끝나고 며칠 후 그 자리에 있던 E 기자가 김 의원의 보좌관에게 연락을 했다. E 기자는 ‘김 의원이 A 기자를 짚고 일어났다’는 설명을 하며 “A 기자에게 사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의원 측은 A 기자에게 연락해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A 기자는 소속 언론사의 여당출입팀 반장, 부반장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의 김무성 의원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무성 의원은 이들에게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고 김무성 의원실 관계자는 말했다. A 기자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9월 12일 오후 6시쯤이었다.
이로부터 3주 후인 10월 2일 《미디어오늘》에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근거는 ‘여러 기자의 발언과 녹취록’이라고 기사 내에 적혀 있다. 갑자기 기사가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기사를 쓴 이재진 기자에게 직접 물었다. 이 기자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정보보고 형식으로 기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며 “복수의 기자들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
이 기자는 기사가 나가기 전, A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가 나간다는 말을 하며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때 A 기자는 “이미 끝난 일인데, 기사가 안 나갔으면 한다. 회사에서도 기사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기사는 A 기자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선정적이었고, A 기자는 이 기자에게 항의했다. 그 후 기사의 표현 등이 일부 수정됐다고 한다.
◇“술자리 녹취는 녹취 아닌 도청”
해당 기사에는 A 기자의 소속사가 김무성 의원 측에 ‘공식사과’를 요청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일까? 사실은 이러했다. 김무성 의원 측이 사과하겠다고 먼저 A 기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 시기 A 기자는 회사 내에서 마침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A 기자 측에서 먼저 전화하진 않았지만 마침 전화가 와서 공식으로 사과 요청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반장과 부반장이 배석하는 형태로 ‘공식사과’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미디어오늘》 기사에는 ‘김무성 의원이 다른 여자 기자(F 기자)에게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는 부분도 있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다른 기자의 말을 빌려 한 말이다. 이것도 사실일까? 무릎에 앉히려는 기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사실 여부를 직접 물었다. F 기자의 말이다.
“당시 그 테이블에는 사람이 30명 정도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 있던 기자들은 거의 다 20대 중후반의 어린 기자들이었어요. 제가 거의 유일하게 김무성 의원과 안면이 있었던 기자였고요. 저를 보자 김 의원이 반가워하며 이리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어요.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는 거였죠.
근데 공교롭게도 김 의원 옆에 의자가 없었어요. 김 의원은 계속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고요. 무릎에 와서 앉으라거나 이런 말은 전혀 안 했어요. 사실 그때 김 의원이 술이 많이 취해 있었어요. 저는 ‘앉아야 되는데 자리가 없어서 어떡하나’ 이런 말을 농담삼아 하면서 옆쪽에 앉는 척을 하다가 다른 자리로 갔지요. 저는 전체 맥락을 아니까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가 조명이 어두침침하거나 음습한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칸막이도 없이 뻥 뚫려 있는 곳이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기자들이 멀리 떨어져서 이 광경을 봤다면 다른 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고는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