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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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詩境의 아침> 초대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흔들리며 피는 꽃」),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담쟁이」)고 노래한 도종환 시인의 근작시 「악보」이다.
평소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도종환 시인의 진정성과 따스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여러 줄의 전선 끝에/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는 걸 두고,
또 그 위에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 걸려 있는 걸 두고 ‘악보’라고 명명(命名)한다.
그것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라고 노래하는 도종환 시인의 따순 마음자락을 나는 알겠다.
아,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둔 저 악보는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는 도종환 시인의 간절한 바람의 노래인 것이다.
또 그것은 보통사람들인 우리 서민들에게도 진정 ‘저녁이 있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가슴 뜨거운 노래이다.
우리 시대에 올바른 교육과 건강한 문화 예술이 바로 서고, 진정 서민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큰 길로 나선 도종환 선배의 삶에 큰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두 손 모운다.
-이종암(시인)
첫댓글 야당 국회의원으로 지난 4년을 보내시더니 이번에 다시 지역구로 입후보하셨더라구요. 좋은 시인이라는 소견이 흔들리는 것은 저만의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그리 좋았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