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12. 19. 화요일.
인터넷 뉴스에 아래 도표가 떴다.
<서울의 주택가격에 따른 주거지 분리도>로 검색한다.
'특별시인 서울'의 주택지역을 나타낸다.
대체로 한강변을 바라보는 위치에 선 대형 주택단지들이다.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송파구와 종로구.
부의 집중은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이며, 특히나 강남구와 서초구는 끝내준다!
위 도표가 2021년 기준이니 2023년 년말인 지금에는 또다시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그냥 참고하기 바란다.
도표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내 자식은 넷(딸 둘, 아들 둘).
아쉽게도 모두 빈털이다.
자식들을 생각하면 무능한 애비인 나를 탓한다.
나는 기억한다.
1949. 1. 말경에 충남 보령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나.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를 기억하는 나한테는 2023년인 지금은 천지개벽한 것마냥 세상이 변했다.
내가 기억하는 산골마을의 가난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모두가 부자들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탓일까.
아침마다 밥 얻어먹으려는 거지들이 남의 집 사립문 앞에서 얼쩡거렸으며....
* 심지어는 문둥이(용천뱅이, 나병환자), 상이용사(전쟁이 끝난 직후라서)들도 구걸했다.
나는 1960년 봄에 대전으로 전학 갔는데 대전시내 중심인 은행동, 선화동, 원동 등에서도 밥 동냥을 구하는 거지들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 70년대 초 민초들의 시대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지금은 2023년 12월.
이제 얼마 뒤에는 새해인 2024년 1월 1일이 닥아온다.
2024년에는 모두가 더욱 부자가 되어서, 함께 잘 살기를 기대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산책로 벤치 위에 우산을 펼치고, 그 안에 종이박스를 깔고, 그 위에 앉은 노숙자를 보았다.
- 남자 화장실 안에서도 웅크려 앉은 노숙자를 보았다.
커다란 짐보따리가 든 가방도 곁에 있고...
왜 이래야 돼?, 찿아갈 집은 없어?, 가족들도 없어?
잠자리도 불편하고, 얼마나 춥고, 배가 고플까?
2.
오늘 저녁 무렵에 아내는 국세청 보령지청에서 우편으로 서울로 보낸 납세고지서를 나한테 보여주었다.
* 지금 시골에서는 내가 안 살기에....
지난해보다도 납세액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지갑 두께가 가벼워서, 빈 주머니가 헐렁해서 늘 비실거리는 나이지만 세금은 얼른 내고 싶다.
국가와 정부는 그 세금으로 국가살림을 경영하고, 또한 가난한 국민을 위해서 따스한 숙소와 밥을 나눠줄 게다.
부자들이 더욱 많아져서, 세금을 더욱 많이 잘 내고, 또한 사회집단과 개개인의 자선사업도 더욱 알차게 늘어났으면 싶다.
부자가 보유한 자산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이었으며, 부자 10명 중 6명은 ‘상속형’ 부자였다.
당신도 300억원 이상의 부자이겠지?
나는.... 그냥 씁쓸하게 비웃어야겠다.
이 추운 겨울철에는 지상의 신(하느님)과 지하의 영혼(조상신)도 덕을 베풀었으면 싶다.
겨울날씨가 덜 춥도록 보다 온화했으면 싶다.
하지만 요즘은 더욱 추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초순이 년간 가장 춥겠지.
................
나중에 보탠다.
3,
사회저변의 실상을 알리는 그런 문학-글이었으면 싶다.
뜬 구름 위에 올라앉은 신선과 선녀들보다는 지상의 맨 밑바닥에서 버름적거리며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냈으면 싶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시골집 아궁이에 장작을 궤어넣고는 불을 피워서 방바닥을 따근따근 데워서 겨울잠을 잤으면 싶다.
불이 사그라지는 잿더미 속에 큼직한 고구마를 넣어 구워서, 뜨거워진 군-고구마를 먹고 싶다.
입술에는 검은 재가 묻어서 검댕이가 되더라도 그 고구마 맛은 얼마나 좋았던가!
이런 내용으로 글 쓰는 실천문학이었으면 싶다.
4.
내 고향 서낭댕이(구룡리와 죽청리 경계선) 당나무 바로 곁에는 주막집이 있었다.
주막집 바로 뒤켠에 있던 큰 당나무는 지금도 남아 있고, 길 건너편에 있던 작은 당나무는 몇해 전 지방도로 확장공사로 베어서 파버렸다. 내 조부의 밭 아래에 있던 작은 당나무였는데....
606 지방도로인 신작로 확장되고, 또다시 지방도로 추가 확장 공사로 당나무 주변에 있던 주막집/술집 두어 군데도 사라졌고....
또다시 지방도로 확장공사로 작은 당나무가 있던 자리는 도로 공터가 되었다.
작은 당산나무 바로 위에 붙은 내 소유의 산으로 올라가려면 조금은 에둘러야 한다.
서낭댕이 잿배기 당산나무 근처에서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 남쪽은 무창포로 넘어가는 산길이며, 서북쪽으로는 용머리 해수욕장, 더 북쪽으로는 대천해수욕장, 더 멀리에는 원산도 방면의 서해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인다.
내 청년시절의 기억도 대부분 사라졌다.
지금은 도로 한 가운데에 남아 있는 당산나무 한 그루.
이따금씩 누군가가 치성을 드린 흔적으로 막걸리병이 남아 있다.
50여년 전 앳된 청년이었던 나. 동네형님들의 뒤를 따라서 주막집 사랑방으로 들락거렸다.
주막집에는 술도 팔고...
동네 형님들은 밤마다 주막집 사랑방에 모여서 막걸리를 마셔댔으며, 화투도 쳤다.
아쉽게도 나는 화투를 전혀 치지 못했기에 그저 구경이나 했다.
그 당시에는 신작로 안덕배기 곳곳마다 허름한 주막집이 있어서 막걸리가 흔하디 했다.
* 면으로 가는 길목인 굴고개에도 주막집이 두어 곳이 있었다.
많은 것을 떠올리는 '그때 그시절'이다.
서낭댕이 당산목(보통은 느티나무) : 내 고향 서낭댕이 당산나무, 지형도 엇비슷....)
무단 게시를 용서해 주실 게다.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임
2023. 12. 19.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