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요 11:25) – 3월 31일
오늘은 요한복음 11장 25절을 본문으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한 섬으로 관광객들이 여행을 갔다고 한다. 그들이 여행을 마치고 섬을 떠날 때, 머물렀던 민박집 주인은 관광객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두까지 따라 나갔다. 민박집 주인은 시집와서 그 섬에 아주 오랫동안 살던 참 인심 좋은 분이었다. 오랜 세월 그 섬에서 살다 보니 바람 소리와 파도 모양만 보아도 어느 정도 날씨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손님들을 배웅하려고 부두로 나와서 보니 그날따라 바람이 아주 거세고 파도가 무척이나 높았다. 점점 더 심해질 것 같았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심해질 것이라고 민박집 주인의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행여 손님들이 ‘돈 벌기 위해 더 잡아 두려고 하는구나'라고 오해하면 어쩌나 염려가 되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어렵게 관광객들에게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더 거세져서 분명히 위험이 닥칠 겁니다. 오늘은 배를 타고 돌아가지 마시고 제 순수한 마음을 이해해 주셔서 하룻밤만 더 머물다가 가십시오.” 그런데 여기에 두 부류의 관광객들이 있었다. 한 부류의 관광객들은 “저 아주머니가 돈 벌려고 하루 더 있으라고 하네. 섬 날씨야 뭐 이랬다가 저랬다가 원래 그런 거지. 날씨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 우리는 가자!”'며 그 섬을 떠났다. 그런데 다른 관광객들은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니 너무 진지하고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저 아주머니가 우리가 머물 동안 너무 친절하게 따뜻하게 잘해주셨는데 아주머니 눈빛을 보니까 저건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는 거야.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 날씨를 잘 아시니 저희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하루를 더 머물다가 파도가 좀 잦아들면 그때 떠나겠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큰비와 폭풍이 와서 그 아주머니의 조언을 무시하고 그날 출발한 사람들은 죽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은 사람들은 살았다.
지금 우리 주님의 마음이 바로 그 민박집 주인의 마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 한 번밖에 없는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진정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인생의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신앙 가운데 구원의 필수적인 것이 무엇일까?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9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말씀한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내용, 기독교의 근본 진리이자, 복음의 본질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는 이들 중에서는 그의 육체적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믿음 그 자체가 헛된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명확하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부활 신앙은 우리의 속죄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무덤에 봉인하고 파수를 보던 경비병들이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새벽녘 어두움이 채 가시지 전에 천사가 내려와 지진 가운데 무덤 문을 열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장면이었다. 그만 놀라 도망친 경비병들의 보고를 듣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경비병들에게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라고 거짓말을 하게 했다(마 28:13). 그러자 이 말이 유대인들 가운데 두루 믿어졌다(마 28:11-15). 진실한 소수의 증언보다 거짓된 다수의 증언이 우세한 경우가 있다. 어떤 한 사람이 물건을 훔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재판관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이 4명이나 있습니다” 했더니 그 혐의자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그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할 사람 40명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소수의 증인보다는 못 보았다고 말하는 다수의 증인이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경비병들이 뇌물을 받고 거짓 증언을 한 대로 그들이 무덤을 지키다가 잠들었고 그동안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것이 사실이라면 경비병들은 처형당했을 것이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무덤 문에 봉인하고 지키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다.
무서워 떨며 다락방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부활을 증거 하며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라고 말했다. 위협이나 채찍질, 그리고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당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여러 다른 경우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내 보이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셨다(고전 15:4-8).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도마가 빠진 부활주일 저녁에, 도마가 함께 있던 다음 주일 밤에, 갈릴리 바닷가의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500여 명 성도에게, 그리고 승천하시는 날에 모인 120여 명의 사람에게 각각 나타나 보이셨다. 만일 자신이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겠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20:19). 울며 예수님을 찾는 여인들에게 천사는 빈 무덤을 보이며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예언이 확실함을 증명했다(마 28:6).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사도들도 거짓 증인일 일 것이다(고전 15:15).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한 후 성령 충만한 베드로 사도가 행한 첫 설교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며(행 2:24, 32),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계속하여 그의 부활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은 일 년 중 고난주간에 하루를 지킨다. 하지만 52주 동안을 축하하는 것이 부활이다. 영국의 회중 교회 목사였던 로버트 데일(Robert W. Dale, 1829~1895) 박사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체험한 후에 매 주일 아침 예배 때에 부활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그 교회를 방문한 한 성도가 11월의 어느 주일 아침에 부활 찬송을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 데일 박사가 “저는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며 우리의 기쁨이 되시고, 일요일은 그가 살아나신 날이라는 영광된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부활 찬송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입을 통해 매 주일 불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성도의 부활을 보증하셨다(요 11:25).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일,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 뺏기고 통곡하는 일도, 부활 이후에는 없을 것이다.
애청자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 받을 것이니(고전 15:51-52), 비록 우리 상황이 힘들더라도 위로부터 오는 놀라운 부활의 믿음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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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