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관 입사동기 이종희 친구와 무전여행으로 함께 한 1974년 여름
MVL 1966, 산낙지 추억
그때가 1974년 여름이었으니, 어언 42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해 전에 국가공무원 9급인 검찰서기보 시험에 합격해서 그해 10월 1일자로 대검찰청 총무과에 초임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한 지, 10개월을 됐을 때쯤의 일이다.
여름 휴가철이 되어 다들 어디론가 휴가를 떠날 때, 나는 특별한 계획을 하나 짜고 있었다.
무전여행 계획이었다.
다들 손사래 쳐 거절하는 판에 딱 한 친구가 동행하겠다고 나서줬다.
검찰수사관 입사동기인 이종희 친구였다.
여행 동선은 서해안으로 내려가서 남해안을 돌아 울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해안길 중심으로 짰다.
스물일곱 나이인 그때까지 바다 구경이라고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이 전부였던 나였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동경이 참 컸었는데, 그 중에서도 충남 대천 바다가 늘 그리웠다.
젊은이들의 축제가 있다 하면, 그곳은 늘 대천해수욕장이었기 때문이다.
무전여행이라고 해서 아주 빈손으로 무턱대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배낭과 텐트, 그리고 덮고 잘 모포와 코페 버너 등 조리를 할 수 있는 간단한 취사 준비를 했고, 어디 얻어먹기가 마땅하지 않을 때는 사먹기라도 해야 해서, 돈 몇 푼도 준비를 했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치 않던 때여서 교통편은 기차와 버스와 배 등, 닥치는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맨 먼저 들른 곳이 대천이었다.
해변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는 사이에, 조수가 밀려들어와 허겁지겁 언덕위로 대피했던 웃기는 추억이 거기에 있고, 해변의 그 반짝이는 모래가 돌이 깨진 모래가 아니라 조개껍질이 부서져 쌓인 모래인 것을 내 그때 처음 알게 된 추억이 또 거기에 있다.
장항에서 연락선을 타고 군산으로 건너가면서 금강 그 하류의 물살이 거세다는 것도 알았고, 전주지방검찰청군산지청에 근무하는 검찰수사관 입사 동기가 청사 앞쪽 어느 한정식집에서 베푸는 저녁을 얻어먹으면서 호남 음식상이 푸짐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 다음 목적지가 전남 여수였다.
사흘째 목적지로 잡은 것이 여수였는데, 그 이유는 오동도라는 섬에 동백꽃이 좋다 해서 그 동백꽃 구경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동도를 가기 위해서는 육지와 그 섬을 잇는 방파제를 걸어서 건너가야 했다.
가는 도중에 방파제 아래쪽 어느 횟집에 내걸린 깃발 하나가 내 시선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 깃발에 쓴 글자 석 자 때문이었다.
바로 이 석 자였다.
‘산낙지’
참 궁금했다.
낙지는 바다에서 잡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산낙지’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산에서 잡는 낙지가 있나 봐.”
동행하는 친구에게 내 그리 물어봤다.
“그런가 봐.”
그 친구도 그리 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확인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횟집을 찾아들어갔데, 결과는 절반도 못 먹고 그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한 편으로는 쪽팔리고, 또 한 편으로는 징그러워서였다.
산낙지 좀 달라고 주문했더니만, 상 위에 차려진 것은 살아있는 낙지를 그대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온 것이었고, 젓갈로 집으려니 잘 집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우 잡아서 입에 넣으면 척척 입속에서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으니, 먹기가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었다.
목구멍에서 척 달라붙으면 어떡하나 겁까지 날 정도였다.
그래서 해삼이니 멍게니 해서 젓가락으로 잘 집히는 다른 것만 집어먹고 산낙지는 반도 안 먹고 그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내게 있어 여수는 그렇게 웃기는 추억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 여수를 두 번째로 찾았다.
42년 만인, 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밤 9시 30분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