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국, 독일 등 해외의 고교학점제 운영사례를 탐색한다
고교학점제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구원투수로 등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연구학교, 시범학교의 숫자만도 올해로 600개가 넘는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0년 벽두부터 고교학점제와 관련한 연속토론회를 기획, 주최해왔어요.(현재 몹쓸 코로나 때문에 예정됐던 토론회를 연기하고 있지만요.)
지난 토론회 주제를 살펴보면
1차, 고교학점제는 왜 필요한가
2차, 고교학점제의 추진과정 진단 및 보완책을 모색한다(연구학교를 중심으로)
이어 ‘해외 사례를 통해 고교학점제의 핵심 요소를 탐색한다’라는 주제로 3차 토론회가 열렸어요(2020년 1월 22일) 이날 살펴 본 싱가포르, 미국, 독일 3개국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고교학점제에 시사점을 찾아볼까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계열이 나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고등학교는 JC(Junior College)라고 불리는 인문계고등학교와 기술학교, 직업계인 폴리테크닉으로 나뉩니다. 놀라운 점은 초등학교 졸업 일제고사를 통해 중학교부터 계열이 나뉜다고 해요. 물론 이후에 계열간 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졸업고사가 우리나라 수능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부모가 휴직을 하고 학생의 시험을 도와줄 정도라니까요. 단, 대학입학을 목적으로 JC에 진학하는 학생 비율이 15-20%밖에 되지 않는 게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이에요. 우리나라의 특성화고와 전문대가 결합된 형태의 폴리테크닉이나 기술학교를 나와도 취업이 잘 되기 때문에 학업부담이 큰 JC에 굳이 가지 않는다는 거죠.

2년간 10-12학점을 낙제 없이 이수해야 하는 JC의 고교학점제는 과목별 난이도가 3단계로 구성돼 있고, 가장 높은 H3은 대학 학점을 선이수하는 미국의 AP와 유사해요.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이니만큼 당연히 대입에 유리한 과목 조합이 존재하고 수월성 위주의 교육이 이뤄집니다. 각 고등학교마다 리더십, 문화교류, 발명대회 등 특색 있는 비교과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이는 대입에 정성평가로 반영돼요.
고교학점제가 수업혁신을 담보하지는 않아
발표자인 노진아 교수(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는 싱가포르가 교육선진국이라지만 고등학교 수업현장을 들여다보면 지식 전달을 위한 강의식 수업, 암기식 공부가 주를 이룬다고 전합니다. 대입에 고득점을 받기 위해 사교육도 많이 하고 학생들의 학업 부담도 매우 크다면서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학업 부담과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거나, 수업 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어요.
다양한 과목보다 수준별 과목 개설이 활성화된 미국
미국의 사례를 소개한 임광국 사무국장(재, 우리교육연구소)이 예로 든 학교는 플로리다 주, 코랄 스프링스 시에 위치한 공립고등학교입니다. 백인은 22%에 불과하고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코랄 스프링스 고교는 미국 대입시험인 SAT 랭킹으로 보면 중상위권 학교라고 합니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일반적으로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제로 운영돼요. 일부과목을 제외하고는 많은 과목들이 학년과 무관하게 자신의 수준과 선택에 따라 수강할 수 있고요.
개설 가능한 과목이 매우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지만, 실제 그토록 많은 과목이 개설되지는 않아요.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기보다 자기 진로에 맞는 코스(취업 혹은 진학 계열을 뜻함)를 선택하기 때문이죠. 이 학교에는 코스 상담가가 15명 상주하고 있어요. 난이도별로는 과목이 세분화돼 있는데, 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고려한 제도예요.
또 미국 고등학교 교육은 일정 수준의 학력을 보장할 것을 목표로 하는데 C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학점 취득으로 인정이 돼요. 기준 미만의 점수를 받은 과목은 온라인 강좌나 학점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재이수가 가능하고요.
우리나라 수업 시수, 미국에 비해 과중한 편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업 시수는 204단위인데 반해, 미국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3년으로 환산한다 해도 180단위 정도예요. 발표자는 우리나라 수업 시수가 상당히 과중하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정리하면 미국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특징은 수준별 과목 구성을 통해 영어가 취약한 이민자 학생들에게는 최소 성취 학력을 보장하고, 상위권 학생들은 고급 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구성해놓은 것이에요. 학생들은 다양한 수업에 의미를 두기보다 대학진학에 유리한 과정으로 설계하는 것을 고민하게 돼요. 우리나라도 결국 비슷한 양태로 흐르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참고하기에는 너무 다른 독일의 교육환경
독일은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독일에서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받고, 실제 고등학생 자녀를 독일에서 기른 정수정 연구원(서경대학교 인성교양대학)은 우리나라와 독일의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독일의 고교학점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어요.
독일의 모든 교육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이 지나면 능력과 적성에 따라 중등1단계 교육만 시행하고 직업교육으로 진입하거나, 우리나라 인문계고등학교가 결합된 형태의 김나지움에 진학하는데 이 비율이 50% 정도예요. 모든 시험은 서술형인데, 교권이 매우 강해서 교사의 평가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독일의 대입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준비하는 3년간의 중등 2단계 교육과정(오버슈투페, Oberstufe)에 진입하는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수강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대입에는 내신이 2/3, 아비투어 시험 성적이 1/3 반영돼요.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모두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과를 선택하느냐 고민할 뿐이고요. 다른 나라에 비해 고교학점제가 입시에 맞춤 설계되는 현상도 적어 보여요. 보편적인 독일 학생과 학부모들은 집 근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가까운 대학에 가는 것을 희망하니까요.
독일 고교학점제를 좀더 들여다보면 너무 쉬운 과목만 선택하지 않도록 2년 동안 수학과목은 필수예요.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필수과목도 많은 편입니다. 과목선택에 대한 설명회를 학교에서 많이 개최하고 코디네이터를 두고 있는데, 관심 있는 부모와 학생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해야 해요. 요청하지 않는데 알아서 알려주지는 않는다니까요.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와 같은 사교육은 없지만, 부모의 학력과 열의가 자녀의 대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대입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될 고교학점제
정리하면, 싱가폴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예요. 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죠.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럼에도 학업 부담이 별로 없는 독일을 제외하면 싱가폴과 미국 고교학점제는 대학진학에 유리한 조합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질 거예요.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과목을 개설하는 학교에 학생들이 몰리면서 고교서열화가 다시 야기될 수 있고요.
마침, 다음 토론회 주제가 ‘고교학점제에 따른 고교체제 어떻게 갖춰야 하는가’예요. 일정이 확정 되는대로 알려드릴게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기 전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철저한 분석과 대책이 마련돼야겠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교학점제가 수많은 우려를 넘어서 우리 고등학교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사진 : 고교학점제에 마라톤 회의하는 정책국 연구원들, 2020. 2.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