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혁신도시 난맥상 현장르포
살라고 특별분양해준 집까지 전매로 팔아 수억 남긴 직원도
혁신도시 주거여건 개선 시급
25일 오후 1시쯤 중부고속도로에서 금왕꽃동네IC로 나와 충북 혁신도시(음성.진천군)로 가는 원중로를 따라갔다.
거리마다 '미분양 아파트를 판다'거나 '저렴한 임대료로 세입자를 찾는다'는 등의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2014년 이곳으로 이전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앞에 있는 6층짜리 신축상가 건물 한 동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바로 옆 다른 건물 1층 점포 유리에도 '임대.분양' 현수막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국소비자원 인근 공터는 성인 가슴 높이만큼 자란 잡초밭이었고, 그 사이로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도시 계획상 '상업 지역'인 곳이다.
퇴근 시간이 되자 공공기관 건물에서 직원들이 쏱아져 나와 서울로 가는 통근버스에 몸을 길었다.
마루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유령도시가 된다'고 했다.
A중화요리집 주인은 '주말이면 그나마 기러기 아빠.엄마들 마저 서울로 떠나 가뜩이나 적은 매출이 반 토막난다'며
'이웃 식당은 5월에 가게를 내놨는데 나가질 않는다'고 했다.
혁신도시난맥상은 통계로 확인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강훈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재출받은 자료를 보면,
혁신도시로 옮겨간 공공기관의 직원 가운데 가족과 함께 현지에 정착한 이는 둘 중 한 명도 안 된다.
정부가 '가족과 함께 살라'며 특별 분양해 해 준 아파트는 열 채 중 한 채 이상 준공 전에 되팔았고,
공공 기관들도 당초 정부에 보고한 숫자보다 수백 명 더 많은 직원을 수도권에 남겨 뫃고 있다.
가족 동반 정착률 48%
공공 기관 이전은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며 시작됐다.
2012년 12월 국토해양인재개발원이 제주로 옮겨간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전 대상 153개 기관 중
147개 기관이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주했다.
6월 기준 전국 혁신도시에서 일하는 공공기관 기혼 직원은 2만8706명,
이 가운데 가족과 함께 혁신도시로 이사한 이는 1만3791명이다.
가족동반정착률은 48%다.
1만2847명(44.8%)은 평일에 혼자 살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가는 '기러기 가족'들이다.
2068명(7.2%)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한다.
가족 동반 정착률이 가장 낮은 곳은 충북(이하 '혁신도시' 생략)과 강원이었다.
충북은 21.9%만 가족과 함께 옮겨왔고, 54.9%는 출퇴근을 한다.
상대적으로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버스로 편도 약 2시간 걸린다.
법무연수원은 직원 89.2%가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강원도 공공 기관 직원 37.5%만 가족과 함께 살고 50.8%가 '기러기 생활'을 한다.
작년 국토부 설문 조사에서는 혁신도시 공공 기관 직원 54.4%가 거주환경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충북은 이 비율이 72.3%였다.
'다 간다'더니...수십명씩 서울 남겨
지방 혁신도시로 가기 싫은 건 직원들만이 아니다.
공공 기관들은 혁신도시 이전 과정에서 정부에 수도권 잔류 인원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6월 기준 147개 기관 중 71개 기관 직원 584명이 당초 계획과 달리 수도권 등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근로복지공단, 한전KDN(주) 등은 당초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내려가겠다'고 보고했지만,
각각 139명, 69명, 47명이 서울 등에서 근무 중이다.
LH 측은 '국토부 위탁 업무 등 처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잔류 인력이 생겼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혁신도시의 인프라 부족 등이 이유'라고 했다.
특별분양 아파트 팔아 수억원 남기기도
정부는 혁신도시에 새 아파트의 최대 70%를 공공 기관 직원에게 우선 분양했다.
'가족과 함께 정착하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렇게 분양된 아파트 1만1300가구 중 1300가구(11.5%)가 입주도 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되팔렸다.
특히 직원 분양권 전매 비율이 높았던 곳은 최근 2~3년간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부산(27.1%)과 제주(16.7%)였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직원들은 분양받은 32채 중 21(65%), 영화진흥위원회 직원은 70채 가운데
41채(58%)를 각각 전매했다.
억대 차익을 남겼다.
부산 혁신도시 내 '힐스테이트푸르지오' 전용 84m2때는 2013년 입주 직후 3억3000만원에 팔렸지만,
올해는 최고 6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강훈식 의원은 '이전한 직원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주거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상진 기자 음성 이송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