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같은 맥락으로 쓴 수필이 <어우동 회견기>이다. 음 란녀의 대명사로 알려진 어우동을 통해서, 당시의 상류사회 가 안고 있는 이중적인 의식을 드러내 보자는 것이 나의 의 도였다. 오늘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쓰려고 했다. 그런 의도 가 독자에게 읽혀진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읽어 보기로 하자.
<어우동 회견기>
미투 운동으로 세상이 어수선하니 문든 성性 문제로 조 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어우동於于同씨를 만나보고 싶었 다. 틀림없이 하고 싶은 말이 많으리라. 그 말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 시간 마차를 타고 500년을 거슬러 달려갔다. 어 우동은 치마의 허리춤을 바싹 조여메고서는 버드나무가 줄 지어 서 있는 개울가에서 엉덩이를 살랑거리면서 어슬렁거 리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도 말을 붙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미색으로 따진다면 사내들의 마음을 뻬 앗고도 남을 정도였다. 나이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몇 대인지도 모를 만큼 아득히 올라가지만, 그래도 시간 여 행을 하여 만나니 새색시 같은 모습이라서 할머니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흘깃 나를 돌아보았다. “뉘시오? 행색을 보니 여기 사람은 아닌 듯 한데.”
“아닙니다. 여기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람 은 아닙니다.” “왜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녀요. 당신도 내 몸둥아리가 탐이 나오. 몸만 주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거짓말을 할 참 이었어요?”
“저어, 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가씨, 아니 할머니께 서, 이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어우동 씨’라고 부르겠습니 다. 신문사라는 것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매일매일 글을 써내야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어우 동 씨에 관한 글을 쓰려고 너무 멀어 이렇게 아득하기만 시 간을 지나서 여행 온 것입니다.”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네, 나도 바빠요. 바빠. 여기서 님을 만나기로 해서 기다리는 중 이니 요점만 물어보세요.” “남자와 몸을 섞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별 사람 다 보겠네. 왜 못 살아 사람은 밥만 먹으면 사는 거지.” “왜 바람을 피우다 목숨을 잃었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나는 무척 억울하다네. 당신이 찾아 온 것을 보니 내가 요녀妖女라는 이름으로 수 백 년을 살았다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다면 그렇게 알게나. 글쟁이들이 지들 밥 먹으려고 나를 요녀로 만들어서 뜯어먹고, 울거 먹고 하였 었나 보네. 내가 요녀라면 글이 팔리니까 말이지. 당신도 나를 팔아서 밥줄을 지키려 이 수작을 부리는 것 아니냐?”
“그렇기는 하지만.” “먼 시간 여행을 왔다니 가상하여 말함세. 이 나라는 어인 일인지 사내란 종자들은 밤낮없이 기집 처마 밑을 들쑤시고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아. 나처럼 반가班家에 시집 간 여자는 일 년 중에 사내의 손길을 몇 번이나 맛보는지 알아?”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우동 씨는 사내 밝힘이 좀 심하다고 소문이 났던데요.” “소문이 나라면 나라지. 내가 잘못이 아니고 여자는 사내 를 찾아다니지 말라는 이 나라 법이 잘못 된 것이지. 맨날 독 수공방이니 사내가 그립더라구. 그래서 찾아나셨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었어. 저승 관보에 의하니 당신이 사는 세상은 여자들도 큰 소리를 치고 산다면서?”
“우리 세상도 그렇지는 않아요.”
“한 마디 더 하리라. 자기들은 마음대로 여자를 건드리고 다니면서 자기 마누라는 족쇄를 채워둔다는 게 말이 되는 가? 말이 되느냐고. 저항하는 여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내가 본보기가 된거지. 나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요녀로 만들어 놓고는 ‘어우동을 봐라. 네 년들도 죽을 수 있 어.’ 경고장을 보낸거지.”
“그렇겠네요.” “나보다 더 재미있는 년이 있어. 내가 소개장을 써 줄테니 거기를 찾아가 보게나.”
“누구인데요.”
“젊은 기생년이야.” 나는 어우동 씨가 써 준 소개장을 들고 초가집의 사립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제법 아리따 운 자태를 한 여인네가 걸어서 나왔다.
“어우동 씨가 찾아가 보라고 해서….”
소개장을 내밀었다.
“그 언니 웃기네. 폐업한 나에게 사내를 보내다니. 이제는 기생짓 안 하는데.”
“그게 아니고, 절개를 지키려다 매를 맞았다고 해서. 어떤 연유인가 하여.”
“아. 그 일. 아 글쎄 곰보든, 곰배팔이든 양반 부스레기이 면 덮어놓고 수청을 들라지 않소. 나도 어우동 언니처럼 멋 진 사내를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다면 수청을 들었지요. 개 차반 같은 사내 꼴에, 권력을 쥔 양반이라고 거들먹거리면 280 내 글을 내가 읽다 서 수청을 들라지 않소. 그래서 거절한 죄밖에 없소.”
“명령 불복종죄로 매까지 맞았다면서요.”
“억울해서 한마디 했지요. 세상에 법이란 것은 모든 사람 들에게 꼭 같이 적용해야지. 어우동 언니는 음란하다고 목 숨을 빼앗고, 나는 절개를 지키겠다고 하였더니 매타작을 하잖소. 이게 무슨 법이요. 개떡이지.”
“그 시대에도 당신의 말을 옳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나 봐 요. 성현이라는 양반이 자기가 쓴 ‘용제총화’란 책에 당신 이 야기를 써 놓았더라고요.”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네깐 기생년이 반가 여자 처럼 절개를 말하다니, 하는 가소롭다는 뜻으로 썼을 수도 있었잖아요”
그 기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렸 다.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성현 선생도 만나볼까 하다가. 젊 은 기생의 말이 떠오르니 준비해 두었던 질문거리가 쑥 들 어가 버려서 그만두기로 했다.
시간 마차를 타고 다시 우리 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문학 모임에 갔다. 남자분이 여자 회원들에게 둘러 싸여 열심히 조선시대 남자들의 멋진 풍류를 퍼트리고 있다. 벽 계수도 있었고, 떠돌이로 살던 환쟁이도 있었고, 시인 묵객 도 있었다. 남자의 욕망을 멋으로 포장한 것이 풍류라면 풍류의 뒤에는 어우동도, 매를 맞은 기생도 있을 것이다. 연 극계의 대부도, 유명 배우도, 시장님도, 도지사님도 시대를 잘 만났으면 풍류객이 되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텐데. 시대를 잘못 만나서 얼마나 억울하실까
(2021, 소소담담). - 《우린 친구가 맞지》, <어우동회견기> 전문全文
수필을 쓰면서 답답하게 여긴 것이 소재의 폭이 너무 좁아 서다. 사실이니, 내면의 독백이니 하니까 소재를 찾기가 더 어려웠다. 그 제한된 소재로 재미있게 글을 쓰려니 더더욱 글이 써지지 않았다. 요즘 언어 이론에 어차피 글로써는 자 신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소재를 나의 상상력으로까지 확대하고, 상상력이 닿는 세계를 소재 의 대상으로 한다면, 표현 기법도 소설 형식을 차용하고. 그 런 생각으로 글을 써본 것이 수필집 《우린 친구가 맞지》의 1 장章에 실린 글들이다. 그리고는 전통 수필답게 내 주변 이야기를 쓴 글도 많이 실려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코로나와 사회 분위기 를 쓴 글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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