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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승총(鈍筆勝聰)
무딘 붓이 더 총명하다 또는 재치 없는 글이 더 총명하다는 뜻으로, 서툰 글씨라도 기록하는 것이 기억보다 낫다. 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말이다.
鈍 : 무딜 둔(金/4)
筆 : 붓 필(𥫗/6)
勝 : 나을 승(力/10)
聰 : 총명할 총(耳/11)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수 백권의 저서를 남겼다. 일생동안 73세까지 장수했지만, 유배기간 중에 대부분의 저서를 집필하면서 1년에 평균 30권 가까운 저서를 남겼다. 이런 다작의 비결에 대해 다산 연구가들은 하나 같이 그의 '메모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다산이 이와 관련해 남긴 명언이 '둔필승총(鈍筆勝聰)'이다. '무딘 붓이 더 총명하다'는 뜻이다. 넓게 해석하면, 어설프고 서툰 기록이라도 기억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그는 "책을 읽을 때도 눈으로만 보지말고 손으로 읽으라"고 했다.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고 부지런히 기록하라고 강조했다. 기록으로 알맹이를 잘 추려 분류하던 그의 습관이 다작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정약용 외에도 메모 습관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인물들이 많다. 노예 해방을 실천한 링컨 대통령을 비롯해 노력하는 천재 발명가 에디슨, 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등이 대표적인 '메모광'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늘 메모하고 이를 계속 보완하는 데 힘썼다.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으로, 곧 서투른 필적이라도 글씨로 써서 남기는 것이 사람의 기억보다는 훨씬 오래 보전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정약용 선생은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말로 기록이 지닌 힘을 설명했다. "둔한 필기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고 말씀을 하셨다. 정약용 선생님뿐만 아니라,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위대하신 분들은 거의 메모(필기)를 습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선생 기념관 비문에 적힌 글이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해라.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이것은 바로 메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다산 선생의 말이다. 이처럼 다산 선생은 메모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수많은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이 공평한 것은 부지런하고, 메모를 잘하면 비록 총기가 부족해도 살아갈 방도가 있다는 것이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만 살아가는 세상은 아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성실성으로 채우면 된다. 능력과 근면성을 두루 갖추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남다른 총명함을 가지지 못했다면 귀 담아 듣고 눈 여겨 보고 성실히 적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훌륭한 작품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고 만다.
SNS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서 메모하는 사람을 찾기란 그다지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이유와 개인적인 습관 때문 일수도 있겠지만, 메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을 둔필승총의 사자성어가 잘 말해주고 있다.
메모하는 습관은 자기 자신의 지적인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모든 위대함의 바탕은 바로 메모의 힘에서 나온다. 생각은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쉽게 빠져나간다. 달아나기 전에 붙들어 두어야 내 것이 된다. 들을 때는 끄덕끄덕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둔필승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는 습관을 생활화 해보자.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고 했다.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이 한 말이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정보가 넘칠수록 기록하고 자료를 정리해 보존해야만 뒷날 크게 쓸 수 있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고려청자의 신비한 빛깔에 세계가 놀라지만 만들 당시 사용했던 유약, 흙, 가마 불에 사용한 나무의 종류 등 청자의 제작과 관련한 기록물이 드물다보니 재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 않는가. 기록의 중요성은 비단 고려청자뿐만 아니라 여러 사례가 일깨워 주고 있다.
사기(史記)는 3000여년을 기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택이 낳은 완벽한 인간학 교과서이다. '사기'의 탄생 배경을 보면 한나라 시대 저자 사마천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 4000여명에 직업 수만 1300여개에 이르는 그 방대함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교훈은 오늘에도 생생한 가르침을 안긴다.
사마천은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눈 뒤 역사서 편찬에 마음을 굳힌다. "제후들은 서로 다투어 나라를 넓히는 일에만 몰두해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명맥이 끊기게 됐다(諸侯相兼 史記放絶) … 내가 태사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논평하여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천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폐하고 말았구나(余爲太史而弗論載 廢天下之史文) … (사마천이) 소자가 불민하나 선조들이 정리해 놓은 옛날의 기록들을 논해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小子不敏 請悉論先人所次舊聞)."
여야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사초(史草)에 해당하는 남북 정상의 대화록이 사라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싸움식 정쟁은 하지 말고, 대화록 실종의 진상을 차분하게 밝혀야겠다.
10세기에 중국 후진의 유구(劉昫) 등이 편찬한 중국 당나라 왕조의 정사(正史)인 구당서(舊唐書)는 이렇게 경책하고 있다. "옛것으로 거울을 삼는 바는 흥망성쇠의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以古爲鏡 可以知興替)."
둔필승총(鈍筆勝聰)
책을 읽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가둬 두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 나중에 다시 떠올리려고 해봐도 그 분명했던 생각이 쉽게 되살아나지 않는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좋은 생각이나 스쳐가는 영감을 붙잡아 두기가 어렵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간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 엄청난 저술을 가능하게 한 뒷심이 뭘까.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고립이 주는 여백이 아닐까. 그가 나랏일에 정력을 빼앗기고 당쟁에 휘말려 기력을 소진했다면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외적 환경이 저절로 저작으로 이어졌을 리 없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다산의 위대한 학문 뒤에는 체질화된 메모 습관이 있다"고 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熱河日記)'와 같은 저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메모의 힘이다. 그는 연행(燕行)을 떠나면서 벼루와 붓, 먹과 공책을 먼저 챙겼다. 낯선 여정에서 만날 예측 불가의 상황, 그 보다 더 큰 기복(起伏)을 겪게 될 심리적 변화를 담아 낼 준비가 돼 있었다. 그가 이처럼 촘촘한 메모의 그물망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최고의 여행기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말이 있다. 천재의 기억력보다 둔재의 메모가 낫다는 것이다.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요즘에도 메모의 위력을 실감한다. 시인의 25년 전 일기가 성 추행 의혹사건 중요 증거로 인정됐고, 쇼트트랙 선수의 메모가 코치의 성폭력 혐의를 인정하는데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당시의 정황과 심리를 기록한 흔적이 없었다면 법원의 판결도 달랐을 것이다.
얼마 전 공개된 미국의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메모에 부담을 느낀 일화가 눈길을 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참모 10여 명이 메모 기록을 제출했고, 특검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때문에 옛 참모들이 트럼트의 보복을 걱정한다고도 한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 메모다. 그 위력을 어떻게 대하느냐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
전달되지 못한 말은 소리일 뿐이다
아버지는 필기구를 셔츠 주머니에 꽂았다. 양복주머니에서 꺼내면 늦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메모는 생각이 퍼뜩 날 때 바로 적어야 한다고 했다. 때로 거꾸로 꽂은 볼펜에서 새 나온 잉크로 옷을 망치기도 해 어머니 잔소리를 들어도 고치지 못했다.
필기구 꽂은 셔츠 주머니가 해져 덧대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필기구도 그렇지만 메모지도 닥치는 대로 썼다. 잠에서 깨면 주머니마다 구겨 넣은 메모지를 꺼내 다급하게 휘갈겨 쓴 난필을 해독하며 잡기장에 옮겨적는 게 아버지의 평생 중요한 아침일과였다.
휴가 나왔다가 귀대 인사하러 회사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회의 주재 중이었다. 비서가 중간에 보고하자 회의실에 들어오라 했다. 직원들 발언을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메모했다. 30분 정도 더 지나 회의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그날 회의 결론을 지었다.
아버지는 쓰던 메모지를 참석자에게 돌려 모두 자기 이름을 쓰고 서명하라고 했다. 내가 의아해하자 전무가 “사장님은 중요한 회의 때는 꼭 저렇게 메모하고 참석자 사인을 받아 바로 품의하라”고 지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고칠 것도 없어요. 저걸 결재판에 끼우고 정서해서 올리면 바로 결재 나고 시행에 들어가니까요”라고 보충설명도 했다.
모두 나가자 아버지가 덧붙인 말이다. “전달되어야 말이다. 전달되지 못한 말은 소리일 뿐이다. 전달되지 못한 말은 말한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 말 잘한다는 건 내용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다 알아듣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젊은 시절부터 훈련받아 대중연설에 익숙한 아버지는 “1분 넘어가는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니다”라면서 “사람들은 네 말에 1분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열 명이 들으면 두 명만 집중한다. 들은 사람도 25%만 제대로 듣는다. 그러니 네 말을 들은 사람이 다른 네 사람에게 전달하면 네가 한 말은 없어진다”고 했다. 아버지는 회의록을 만들어 사인을 받는 특이한 회의 기술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날 말씀하신 고사성어가 ‘둔필승총(鈍筆勝聰)’이다.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천재의 기억력보다 둔재의 메모가 낫다”라는 이 말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즐겨 썼다고 했다.
다산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즉시 기록해 두는 ‘수사차록법(隨思箚錄法)’을 썼다. 그가 18년 유배 기간 500여 권에 이르는 위대한 저작을 남길 수 있었던 데는 방대한 메모가 밑거름됐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기록해야 생각도 건실해진다.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와 기억을 복원한다. 본능적으로 써라”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말의 전달력은 말로 네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다. 전달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어 듣는 사람의 관심을 끌고 설득할 수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심리학자 메라비언은 메시지 전달에 있어 자세, 태도, 표정 등 비언어적 요소가 무려 55%를 차지하고, 음성, 억양 등 목소리가 38%, 말은 단지 7%만 차지한다고 했다. 비언어적 요소가 말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총명함에 기대지 마라. 듣는이들을 원망하지 마라. 말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거다. 말은 듣는 사람에게 이해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말을 해도 듣는 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말의 전달력의 생명은 명료성이다. 그걸 담보하는 게 기록이다. 전달력을 높이는 연습을 꾸준히 하라”라고 그날 말씀을 맺었다.
IMF 외환 위기 시절 뉴욕에서 근무할 때 미국인들과 하는 회의는 고역이었다. 알고 보면 별 거 없는 말도 책임감으로 긴장이 겹치면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알아들은 대로 적어 회의 끝나고 이렇게 말한 게 맞냐며 사인하라고 하자 모두 제대로 고쳤다. 다음 회의부터는 그들이 할 말만 했다.
기록이 말의 전달력을 끌어올린 결과다. 손주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반드시 분명한 전달력을 갖추게 훈련시켜야 할 습성이다. 굳어지면 고치기가 배우기보다 더 어려운 게 말버릇이기 때문이다.
▶️ 鈍(둔할 둔)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屯(둔)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鈍(둔)자는 '둔하다'나 '무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鈍자는 金(쇠 금)자와 屯(진 칠 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屯(진 칠 둔)자는 초목이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鈍자는 본래 칼이나 도끼의 날이 무뎌진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무디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뎌진 칼날처럼 섬세하지 못한 사람에 비유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鈍(둔)은 ①둔하다(鈍--) ②무디다 ③무디어지다 ④무디게 하다 ⑤우둔하다(愚鈍--) ⑥미련하다 ⑦굼뜨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의어로는 快(쾌할 쾌), 敏(민첩할 민), 銳(날카로울 예, 창 태, 사발 열) 등이다. 용례로는 어리석고 둔함을 우둔(愚鈍), 예민하지 못한 무딘 감각 또는 감각이 둔함을 둔감(鈍感), 점점 둔하여 짐을 둔화(鈍化), 성질이 둔하고 혼탁함을 둔탁(鈍濁), 성질이나 동작이 둔하고 느림 또는 그 모양을 둔중(鈍重), 굼뜬 글씨나 서투른 글씨 또는 필적이 서투른 사람을 둔필(鈍筆), 무딘 날붙이로 잘 들지 않는 연장을 둔기(鈍器), 우둔한 사람을 둔부(鈍夫), 둔한 말이란 뜻으로 발걸음이 느린 말 또는 스스로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둔마(鈍馬), 말하는 입이 둔함을 구둔(口鈍), 몸이 뚱뚱하여 행동이 굼뜸을 질둔(質鈍), 세상 사람을 격려하여 인재를 진작함을 이르는 말을 여세마둔(厲世摩鈍) 등에 쓰인다.
▶️ 筆(붓 필)은 ❶회의문자로 손에 붓을 쥔 모양의 聿(율)과 자루가 대나무인 것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해 竹(죽)을 붙여서 쓴다. 즉 대나무로 만든 붓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筆자는 '붓'이나 '글씨', '필기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筆자는 竹(대나무 죽)자와 聿(붓 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聿자는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붓'이라는 뜻은 聿자가 먼저 쓰였었다. 하지만 소전에서는 붓의 재질을 뜻하기 위해 竹자를 더해지면서 지금의 筆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筆(필)은 논, 밭, 임야(林野), 대지(垈地) 따위의 구획(區劃)된 전부를 하나치로 하여 세는 단위이다. 필지(筆地)의 뜻으로 ①붓 ②글씨 ③필기구(筆記具) ④필법(筆法) ⑤가필(加筆) ⑥획수(劃數) ⑦필획(筆劃) ⑧글자를 쓰다 ⑨글을 짓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붓을 꽂아 주는 통을 필통(筆筒), 손수 쓴 글씨의 형적이나 그 솜씨를 필적(筆跡), 글씨를 씀을 필기(筆記), 붓의 끝을 필두(筆頭), 글씨 쓰는 법을 필법(筆法), 글씨의 획에 드러난 힘을 필력(筆力), 글씨의 획에 드러난 기세를 필세(筆勢), 말이 통하지 아니할 때에 글을 써서 서로 묻고 대답하는 일을 필담(筆談), 글로 써서 대답함을 필답(筆答), 붓과 혀로 곧 글로 씀과 말로 말함을 이르는 말을 필설(筆舌), 붓과 먹을 필묵(筆墨), 글씨 특히 한자를 쓸 때에 붓을 놀리는 순서를 필순(筆順), 생각하는 바를 글로 나타냄을 필술(筆述), 옛 사람의 필적을 모아서 엮은 책을 필첩(筆帖), 글 또는 글씨를 쓴 사람을 필자(筆者), 베끼어 씀을 필사(筆寫), 어떤 양식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는 산문 문학의 한 부문을 수필(隨筆), 붓을 잡고 시가나 작품 등의 글을 씀을 집필(執筆), 뛰어나게 잘 쓴 글씨를 명필(名筆), 손수 쓴 글씨를 친필(親筆), 임금의 글씨를 어필(御筆), 자기가 직접 씀 또는 그 글씨를 자필(自筆),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림을 윤필(潤筆), 옛 사람의 필적을 고필(古筆), 남을 대신하여 글을 씀 또는 그 글씨를 대필(代筆), 붓을 휴대하는 것을 잠필(簪筆), 붓을 대어 글씨를 고침을 가필(加筆), 두드러진 일을 특별히 크게 적음 또는 그 글을 특필(特筆), 벼루를 밭으로 삼고 붓으로 간다는 뜻으로 문필로써 생활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필경연전(筆耕硯田), 붓과 먹으로 징벌한다는 뜻으로 남의 죄과를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통해 글로써 공격함을 이르는 말을 필주묵벌(筆誅墨伐), 붓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문장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필한여류(筆翰如流), 시문을 짓는 붓끝이 비바람이 지나가듯이 빠름을 일컫는 말을 필단풍우(筆端風雨), 확인하거나 또는 잊어버리지 아니하기 위하여 글로 써 둠을 일컫는 말을 필지어서(筆之於書), 문장을 자유자재로 잘 지음을 이르는 말을 필력종횡(筆力縱橫), 동호의 붓이란 뜻으로 역사를 기록함에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써서 남기는 일을 이르는 말을 동호지필(董狐之筆),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 함을 이르는 말을 대서특필(大書特筆), 한숨에 글씨나 그림을 줄기차게 쓰거나 그림을 일컫는 말을 일필휘지(一筆揮之),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뜻으로 글을 짓는 것이 빠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하필성장(下筆成章) 등에 쓰인다.
▶️ 勝(이길 승)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힘 력(力; 팔의 모양으로, 힘써 일을 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朕(짐)으로 이루어졌다. 근육(月)을 써서 힘써 싸운다는 뜻이 합(合)하여 이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勝자는 '이기다'나 '뛰어나다', '훌륭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勝자는 朕(나 짐)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朕자는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천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朕자는 천자가 자신을 뱃사공에 비유하여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力자가 더해진 勝자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천자가 힘을 발휘한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즉 勝자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나라를 훌륭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기나'나 '뛰어나다', '훌륭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勝(승)은 (1)일부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승리(勝利)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이기다 ②뛰어나다 ③훌륭하다 ④경치(景致)가 좋다 ⑤낫다 ⑥승리를 거두어 멸망시키다 ⑦넘치다 ⑧지나치다 ⑨견디다 ⑩바르다 ⑪곧다 ⑫기회(機會)를 활용하다 ⑬뛰어난 것 ⑭부인(婦人)의 머리꾸미개 ⑮훌륭한 것 ⑯이김 ⑰모두, 온통, 죄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극(克), 견딜 감(堪), 참을 인(忍), 견딜 내(耐),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패할 패(敗), 질 부(負)이다. 용례로는 겨루어 이김을 승리(勝利), 이김과 짐을 승패(勝敗), 이김과 짐을 승부(勝負), 송사에 이김을 승소(勝訴), 꼭 이길 만한 좋은 꾀 또는 가망을 승산(勝算), 경기나 내기 따위에서 이겨서 얻은 점수를 승점(勝點), 경치가 좋은 높고 밝은 곳을 승개(勝塏), 뛰어나게 좋은 경치를 승경(勝景), 경개 좋기로 이름난 곳을 승지(勝地), 경치가 좋음 또는 좋은 곳을 경승(景勝),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승(名勝), 크게 이김을 압승(壓勝), 운동 경기 등에서 이기고 짐을 마지막으로 가림을 결승(決勝), 성미가 억척스러워서 굽히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기승(氣勝), 경기나 경주 등에서 첫째로 이기는 것을 우승(優勝), 힘이나 가치 따위가 딴 것보다 썩 나음 또는 크게 이김을 대승(大勝),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통쾌한 승리 또는 시원스럽게 이김을 쾌승(快勝), 잇달아 이김을 연승(連勝), 완전하게 이김 또는 그런 승리를 완승(完勝),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한 번도 지지 않고 전부 이김을 전승(全勝), 승전의 결과를 적은 기록을 일컫는 말을 승전보(勝戰譜), 재주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함을 일컫는 말을 승기자염(勝己者厭), 이기고 짐을 판가름하는 운수를 이르는 말을 승패지수(勝敗之數),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백전백승(百戰百勝), 어떤 일에 앞장서는 자나 맨 먼저 주창하는 자를 이르는 말을 진승오광(陳勝吳廣),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한다는 뜻으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임을 이르는 말을 자승자강(自勝者强), 나은 자는 이기고 못한 자는 패함 또는 강한 자는 번성하고 약한 자는 쇠멸하는 적자 생존을 일컫는 말을 우승열패(優勝劣敗), 한 번 이기고 한 번 짐을 일컫는 말을 일승일패(一勝一敗),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약한 것을 보이고 적의 허술한 틈을 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능승강(柔能勝剛), 교묘한 꾀로 먼 곳의 싸움을 이기는 것을 이르는 말을 결승천리(決勝千里), 이름난 지구와 경치 좋은 곳을 이르는 말을 명구승지(名區勝地),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하도 수가 많아서 이루 셀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불가승수(不可勝數), 명승과 고적 즉 훌륭한 경치와 역사적인 유적을 일컫는 말을 명승고적(名勝古跡), 남과 겨루어서 꼭 이기기를 즐기는 성벽을 일컫는 말을 호승지벽(好勝之癖), 매우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일컫는 말을 희부자승(喜不自勝), 이길지 질지 분간이 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분승부(不分勝負), 스스로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버릇을 일컫는 말을 자승지벽(自勝之癖), 공은 사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공적인 일에도 사사로운 정이 끼여들게 마련이라는 말을 공불승사(公不勝私), 싸울 때마다 빈번이 이김을 일컫는 말을 연전연승(連戰連勝), 지세가 좋아서 승리하기에 마땅한 자리에 있는 나라를 일컫는 말을 형승지국(形勝之國),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땅을 일컫는 말을 형승지지(形勝之地), 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호승지심(好勝之心), 승부가 서로 같음 즉 서로 비김을 일컫는 말을 상승상부(想勝相負), 재주는 있으나 덕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재승덕박(才勝德薄), 재주는 있으나 덕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재승박덕(才勝薄德), 수효가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지불승굴(指不勝屈),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길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중승천(人衆勝天),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승가강(自勝家强), 싸움에서 이긴 기세를 타고 계속 적을 몰아침을 일컫는 말을 승승장구(乘勝長驅), 기묘한 계략을 써서 승리함을 일컫는 말을 출기제승(出奇制勝) 등에 쓰인다.
▶️ 聰(귀 밝을 총)은 ❶형성문자로 聡(총)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잘 통하다의 뜻을 가지는 悤(총)으로 이루어졌다. 귀가 잘 통하다, 사람의 말의 뜻을 잘 분간(分揀)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聰자는 '귀가 밝다'나 '총명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聰자는 耳(귀 이)자와 悤(총명할 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悤자는 사람의 머리와 심장을 함께 그린 것으로 '총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총명하다'는 뜻을 가진 悤자에 耳자가 결합한 聰자는 '귀가 밝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귀가 밝다'고 하는 것 이해력이 빨라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聰자는 그러한 의미에서 '똑똑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聰(총)은 ①귀가 밝다 ②밝다 ③총명(聰明)하다 ④듣다 ⑤살피다 ⑥민첩(敏捷)하다 ⑦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슬기롭고 도리에 밝음을 총명(聰明), 총명한 기질을 총기(聰氣), 총명하고 민첩함을 총민(聰敏), 총명하고 지혜가 있음을 총지(聰智), 총명하고 준수함을 총준(聰俊), 총명하고 슬기로움을 총혜(聰慧), 총명하고 영민함을 총령(聰靈), 슬기롭고 명달함을 총달(聰達), 슬기롭고 기억력이 좋음을 총기(聰記), 사물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영리함을 총오(聰悟), 총명하여 사물에 밝음을 총찰(聰察), 슬기로운 꾀를 총모(聰謀), 슬기롭고 말을 잘함을 총변(聰辯), 총명하고 사리에 밝음을 총량(聰踉), 생각이 미처 이르지 못한 곳을 일깨워 도와 줌을 보총(補聰), 여러 가지 자잘한 일을 잘 기억하는 총기를 잡총(雜聰), 듣지 못한 것이 없고 보지 못한 것이 없으며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성인의 네 가지 덕을 이르는 말을 총명예지(聰明睿智), 총명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생을 그르친다는 말을 총명자오(聰明自誤), 총명하고도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을 총명호학(聰明好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