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플라워 (외 2편)
이소연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니까 사 오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들이 더 좋아" * 댈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 나는 이 말을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 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 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 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 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 눈 뭉치 속에 숨겨 놓은 돌멩이를 믿고 싶다 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 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 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 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 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가 휘어지는 밤 흰 눈을 퍼 먹는 기분으로 동영상을 끝까지 본다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09
오목놀이 오목은 사실 탱고 춤이야 너와 내가 발끝을 들고 싸우는 춤이야
봄꽃 피는 몽돌해변 위에서 너는 흰 돌, 나는 검은 돌이 되었지
검은 물새는 흰 알을 낳고 흰 물새는 검은 알을 낳는 몽돌해변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말이라고 믿고 싶어
밤가 낮이 나누어진 것도 저 오목놀이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몰라
돌을 놓을 때마다 작은 파도를 벼린 모서리를 생각했어
왜 모서리가 둥글까 오목은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야 너와 내가 주고받는 노래야 그러니까 잘게 갈라치는 돌싸움이라고 부르지 마
오늘 나는 흰 돌을 오늘 너는 검은 돌을 호주머니 가득 주워 왔지
나와 너는 더운 숨을 불어 넣듯 툭툭, 흰 돌 하나 놓고 검은 돌 하나 놓고 자유로운 다섯을 위해 뒤꿈치를 그리듯 툭툭, 한개의 세계를 빚었지 악담과 비난마저 돌 속에 가두면서
휴 그랜트의 아내 코번트리 부인이 퓰리처상을 받았다
엄청 큰 무대에서 내려온 코번트리 부인은 수많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며 기쁨의 인사를 나누었다 테드 휴스 또한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얼굴을 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테드 휴스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모자라서를 모라자서로 쓰셨어요" 오타를 발견한 것이다 이 좋은 순간에 축하를 받는 이 기쁜 순간에 그녀는 손을 잡힌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끔찍한 꿈이로군!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마감한 원고에서 꽃 이름을 잘못 쓴 걸 발견했다
실수를 축하하는 문명이 있다면 나무도 원숭이에서 떨어진다
작가님, 골드매리는 매리골드가 바른 표기입니다 규범 표기는 마리골드입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착각하기 좋은 꽃 이름 연구회에 자동 가입되었으며 부상으로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소설집을 보내드릴게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비행기가 떠났어요 취소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나간 날짜의 항공권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비행 날짜 확인 어플 개발원에 탑승자 이름으로 해당 항공비만큼 후원되며 축하의 마음을 담아 5성급 호텔 숙박권 두 장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실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다
그를 옹호해야 살아남는 세계를 알아버렸으므로 실수를 축하하는 문명까지 만드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것도 좀 너무하다 싶은데 꿈에서조차 여성의 실수에 주목한 것을 반성한다
나는 단지 여성의 성공을 조명하고 싶다 오롯이 축하하고 싶다
꿈에서 본 문장은 틀렸다
코번트리 부인은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휴 그랜트의 아내가 아니었고 (코번트리 부인은 코번트리와 결혼했겠지) 어쨌든 그녀는 실수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 시집 『 콜리플라워 』 2024.6 -------------------------- 이소연 /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 『거의 모든 기쁨 』, 산문집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