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언제나 털털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안방에서 남편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남편은 핸드폰을 안방에 그냥 놓아두고 다른 일을 볼 때가 많지요.
“여보, 전화 왔어!” 내가 소리치자 남편은 태연한 목소리로 “응, 받아 봐!” 하고 답합니다. 전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하니 누군지 뚝 끊어 버렸습니다. ‘이런 예의 없는 사람 같으니.’ 말없이 끊긴 핸드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숨겨진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1번 단축번호에 내가 등록되어 있겠지, 하고 기대하면서 조심스럽게 번호를 눌러보니 이럴 수가…. ‘마누라’라고 저장된 내 번호는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닌 3번이었습니다. 달리기 경기에서도 3등한테 공책 한 권은 준다지만 어쩐지 서운했습니다.
영광의 1번은 남편을 낳아 지금껏 키워 오신 어머님 댁 전화번호였지요. 그래, 어머님이라면 내 기꺼이 1번 자리를 내 드릴 수도 있지. 그렇다면 2번은? 발끈하여 눌러보니 ‘우리집’이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3번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세상에서 어머님을 제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남편도 쉰을 앞두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늙으신 어머니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고, 나한테는 보여 주지 않는 세심한 배려까지 아끼지 않습니다.
가끔은 그런 남편이 서운하고 야속할 때도 있지만 나도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나중에 내 아들이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늙은 엄마에게 소홀하다면 슬플 것 같아 이해한답니다. 번호가 3번이면 어떻고 30번이면 어떠랴? 나는 어머니와 우리 가족 모두가 남편 마음속에서 1번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니까.
김용순 / 충남 계룡시 두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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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찬양이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