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디자인
&
디자인공원
포털 사이트엔 독일 디자인 유학을 묻고 답하는 열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은 자동차와 디자인산업 세계 최강국이니 자동차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그 나라를 찾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마이카 시대를 연 현대자동차 포니를 몰았던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직도 현대자동차가 독일에서 디자이너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기술로 시작한 원자력발전은 세계최강 기술력으로 발돋움해 한국이 지구촌 원전건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도 국내 디자인산업 현실은 여전히 반세기 전 그대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포니 차 디자인은 당시로선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120만 달러 디자인료는 경쟁업체들마저도 비아냥거릴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를 통해 독자모델의 꿈을 이루어 아름다운 디자인과 성능이 좋은 포니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포니 디자이너는 폴크스바겐과 알파로메오 로터스 포드 머스탱뿐 아니라 니콘 F4카메라까지 맡았던 디자인계의 거장이었다. 그의 디자인은 직선적 느낌의 박스형태 구조와 선적인 느낌의 조화가 특징이었다.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으로 화려함보다는 기능과 실용적 측면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결과 포니의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당시 국제적인 자동차 디자인 흐름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국내 최초 독자모델 포니는 첫해 만대 넘게 판매하며 당시 중형차가 대부분이던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40%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포니가 우리나라 소형차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포니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외국모델을 부품으로 들여와 조립생산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포니는 현대자동차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모델이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은 두 번째, 세계적으론 16번째로 만들어진 고유모델이었다.
뿐만 아니라 포니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개발을 시작한 지 겨우 1년 만인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해 12월엔 울산에 연간 12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운 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포니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해치백 스타일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자동차회사 제품에 비해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을 자랑했던 포니는 1976년 7월 한국 최초로 에콰도르에 수출하면서 국내시장 점유율도 60%를 기록했었다.
5년 전 여름, 독일여행에서 폐광지역에 들어선 디자인박물관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 에센은 폐광 촐퍼라인을 허물지 않았고 1997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여 2001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디자인이라는 문화에 접근하여 지금은 디자인성지로 불리는 에센이 되었다. 투박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탄광설비가 부드럽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디자인을 만나 새롭게 부활했던 것이다. 처가식구 4부부가 나선 여행길. 처남이 네비게이션 안내대로 차를 몰아 촐퍼라인이 있는 에센 인근 뒤스부르크까지 접근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닿은 곳은 폐쇄한 철강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환경공원이었다.
박물관이 에센의 촐퍼라인탄광에 들어섰기 때문에 더욱 더 만나보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1963년 제1진 광부로 촐퍼라인에 파견된 L형이 봉함엽서를 자주 보내와 익숙한 광산이름이었다. L형은 군에서 막 제대하여 나와 같은 하숙방에서 지냈고 대전시민관 옥상에다 삼학소주 애드벌룬 광고를 띄우는 일을 했었다. 그가 당시로선 경쟁률 높았던 파독광부로 갔는데도 서울 양재동 파독광부기념관을 찾아갔을 때 관장은 L형이 귀국하지 않고 바로 캐나다로 건너간 사실만을 확인해주었다. 그런 후 국제전화를 받았다. 내가 보낸 수필집과 편지를 받은 캐나다 L형이었다. “선생님, 저는 그 이영수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책은 돌려보낼까요?”
대전 하숙 동기생 L형의 투박한 경북 성주 말씨가 아닌 전형적인 서울 말씨로 상냥한 그는 동명이인이라고 했다. 에센은 1997년 폐광 촐퍼라인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여 2001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로 디자인이라는 문화에 접근하여 지금은 디자인성지로 불리는 에센이 되었다. 투박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탄광설비가 부드럽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디자인을 만나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7백 쪽 가까운 독일여행 책자에도 축구와 음악 다음으로는 디자인을 꼽을 정도다. 독일 4개 디자인박물관 중에서도 디자인 어워드의 양대 산맥이 레드닷과 IF디자인이다.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과 오스카상이라 불릴 정도로 두 시상식 모두 고유의 권위를 가지고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한다. 흔히들 독일 디자인을 실용성에다 유럽식 정교함과 균형미가 더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뿌리는 가내 수공업이 산업화에 힘입어 기업생산으로 넘어가면서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디자인 제품을 양산한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유럽엔 독일제품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었다. 이런 평판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해서 위기를 극복한 제품이 실제로 심플하고 튼튼한 디자인이었다. 독일에서 보름 머물면서 박물관을 찾지 못한 때문에 유명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은 물론 최신 유행하는 생활용품 디자인도 만날 수 없었다.
인구 10만을 넘긴 물금신도시엔 공원이 참 많다. 낙동강 고수부지에 들어선 초대형 황산공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근린공원이 들어섰고 쌈지공원도 여럿이다. 워터파크를 비롯하여 구두공원 수학체험공원 디자인공원까지. 13년 전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하자 그때 워터파크도 개장했었다. 분수공원이나 물의정원 같은 우리말 이름을 두고 외래어로 붙인 이름이 난 못마땅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이번엔 거북산 들머리에서 구두공원을 만났다. 아파트단지 끝자락에 생긴 쌈지공원이었으나 구두 조형물은 보이지 않았다. 구두공원을 접하자 모자공원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구두공원의 구두가 거북머리龜頭란 것을 안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공원 이름을 작명한 공무원이 국어사전이라도 한 번 펼쳤더라면 이런 오류를 저지르진 않았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파트단지 한복판에서 만난 수학체험공원은 그나마 나은 이름이라 할만하다. 물론 어느 날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수학은 마스터했으니 이제 국어 영어 물리도 공원을 만들어달라고 시위를 벌이면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공원은 새로 들어선 성당 옆 동산이다. 동산엔 충혼탑과 애국열사 묘지까지 들어있지만 명찰이 보이질 않았다. 그랬다가 어느 날 디자인공원이 되었다. 그 이름이 참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공원 바로 옆에 디자인센터가 들어선 것이었다. 공식명칭은 미래디자인융합센터. 센터건물은 왕복 8차선 도로를 양쪽으로 물고 있었지만 몇 년을 난 까맣게 모르고 지나쳤다.
시멘트 색상으로 만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삼각형이어서 내 눈에는 그게 건축물로 보이지 않았던 것. 다닥다닥 옆으로 붙여놓은 초대형 구조물을 난 토목공사용 거푸집인 줄 알았다. 외관만 보고 착오를 일으킨 사람들이 많았던지 센터 건축물은 ‘디자인창고’라는 콘셉트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 몇 년이 지난 뒤에 붙었다. 디자인센터가 들어선 후 몇 년이 지난 게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디자인창고는 앤디 워홀과 비틀스 그리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젊은 날 혁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머물렀던 헛간과 창고 차고와 같은 공간이 비정상적이었지만 창의적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영감의 밑바탕이 됐다는 걸 들먹인다.
한국디자인진흥원 부속기관으로 6년 전 들어선 디자인센터는 그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던 국가 디자인산업을 전국 4개 지역으로 분산시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디자인산업을 견인하고자 출발했다고 한다. 디자인산업은 의상과 공산품 건축물 등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작품의 설계나 도안을 만들고 제작한다. 디자인관련 연구실 및 연구 인력을 갖추지 못해 체계적인 연구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은 이곳 지원이 필요하게 된다. 고가장비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이 수행하기 힘든 디자인연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디자인센터는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과 디자인개발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돕는 경영노하우 전수도 직접 맡고 있다니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원전산업처럼 전국으로 퍼진 디자인센터가 도약하는 역할을 맡아 한국 디자인을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디자인공원엔 황소 조형물도 등장했다. 조각가 말을 따라 황소라고 했지만 사실은 백소였다. 뉴욕 맨해튼 금융가나 부산 국제금융센터 그리고 청도휴게소엔 전부 황소인데 왜 이곳엔 백소를 설치했을까. 맨해튼처럼 황소에 맞서는 또 다른 조형물을 세운다면 더욱 인기를 끌 것 같았다.
☞ 포토에세이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https://cafe.daum.net/goodsanzigi/AvVC/2059?svc=cafeapi
첫댓글 항상 정확한 부연 설명을
정확히 겯들여 주신는 세심함에
존경과 감사함을 표합니다.
따뜻한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