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사는 것인가?.
“내 족인族人 김현감은 집이 인왕산 밑에 있는데, 경치가 몹시 좋고 뜰 앞에는 장미화 나무가 있어 온 뜰이 환하게 바쳤다. 김공은 이것을 완상玩賞하다가 안석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갑자기 황의黃衣를 입은 장부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절을 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귀택貴宅에 몸을 의탁한지가 이미 여러 대가 되었으므로 문호門戶를 보호하여 근심과 즐거움을 같이 해왔는데, 이제 주인의 아들이 무례하기가 자못 심하여 자주 더러운 물을 내 얼굴에 끼얹고 온갖 더럽고 욕된 것을 다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아들에게 화를 입힐까도 생각해봤지만 주인을 위해서 차마 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엄하게 가르쳐서 그렇게 못하도록 해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서 그는 장미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김공은 꿈에서 깨자 놀라고 이상히 여겨서 혼자 생각해도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는데 조금 있다가 누군가가 나타났다. 김공의 첩의 아들 중 에 나이가 많은 자가 꽃나무 밑에 오더니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터여서 오줌 줄기가 꽃나무 가지 끝까지 올라가더니 남은 방울이 꽃이 떨어져 꽃이 모두 시들어 버렸다. 김공은 그 꿈이 맞는 것을 깨닫고 첩의 아들을 불러 몹시 꾸짖은 다음, 계집종을 불러서 물을 길어다가 친히 꽃에 뿌려 그 더러운 물을 씻어주고 꽃나무 밑을 깨끗이 씻었다.
김공은 본래 시에 능했다. 그래서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사과했다. 나는 이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한음 이덕형이 지은 <죽창한화>에 실려 있다.
모든 자연은 다 영혼이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서 모든 사람들을 바라 볼 때다 경외감을 표시했다
하물며 강과 산은 물론이거니와 오래 된 나무나 돌이나 사물들은 말해서 무엇 하랴. 옛 사람들은 산에서 나무 한 그루 베는 것도 산신령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고, 강가나 바닷가에서는 강의 신, 바다의 신에게 매년 제사를 지냈다.
“나는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은 비록 한포기의 풀과 한 그루의 나무의 작은 것일지라도 자연의 이치가 깃들여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흥망興亡 득실得失이 모두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무화사화 때 희생된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무를 베고 산을 없애고 산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도 그들이 섬기는 신이나 자연의 이치를 들먹이며, 말도 안 되는 말이다.
自然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모든 것 다 지상에 두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숙명이 아닐까?
2024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