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마다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평소처럼 OTT를 둘러보다 한 드라마를 발견했다. 제목은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 ‘아기 순록’이라는 귀여운 제목과 달리, 이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포스터는 필자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영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로, 무명 코미디언 ‘도니’에게 어느 날 자신이 일하는 곳에 나타난 ‘마사’라는 여성에게 차 한 잔의 호의를 베푼 후 나타나며 생기는 일련의 사건을 7부작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평소처럼 평범하게 동네 작은 펍에서 일하던 ‘도니’ 앞에 침울한 표정의 여자 ‘마사’가 등장한다. 순간 그녀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도니는 따뜻한 차를 마실 것을 권유한다. 마사는 이에 돈이 없다고 대답하자 도니는 무료로 차 한 잔을 내어준다. 그러자 눈에 띄게 밝아진 마사는 자신이 사실 유명한 변호사이며, 정계 인사들과도 막역한 사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고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펍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와서 온종일 도니를 쳐다보고 말을 걸며 도니를 ‘아기 순록(Baby Reindeer)’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도니의 메일함은 마사가 보낸 메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이메일 4만 1,071통, 음성 메시지 350시간, 트윗 744개, 페이스북 메시지 46개, 손 편지 106페이지, 순록 장난감 등 선물은 4년간 마사가 도니를 스토킹하며 남긴 목록이다. 또한, 이 영화는 작가이자 주연배우를 맡은 '리처드 개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는데, 도니를 연기한 리처드 개드가 실제로 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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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는 피해자?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왜 도니는 마사를 내버려두는 거지?”
실제로 드라마를 보다 보면 도니는 마사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그런 행동을 유도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해할 수 없는 도니의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다. 도니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건 도니의 모습이 우리가 아는 ‘피해자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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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후반부에서 도니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던 상황이 그려지며, 왜 이렇게 깊은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난다. 도니는 20대에 한 페스티벌에서 유명한 각본가였던 ‘대런’을 만나 서서히 그에게 조련당하기 시작한다. 도니는 대런에 의해 갖가지 마약에 노출되고, 마약에 취한 사이 그에게 성폭행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니는 대런이 자신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이후에도 대런을 스스로 찾아가고 계속해서 자신은 파괴되어 간다.
이 시기를 겪으며 깊은 자기혐오를 갖게 된 도니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는 마사의 존재는 어쩌면 조금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후 마사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실형을 살게 되고, 마사가 곁에서 없어지자 외로움을 느끼던 도니는 대런을 다시 찾아간다. 사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그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등의 격한 대립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도 짧은 시간에 처참히 부서져 버렸다. 새로운 쇼에서 같이 일하자는 대런의 제안에 도니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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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결말은 도니가 트라우마에 극복하지 못하고 대런에게 조종당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리처드 개드는 이전에 그려지지 않았던 학대의 한 모습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그려내었다고 밝혔다. 심각한 학대를 당한 후에도 피해자 상당수가 그 과정에서 비틀어진 애착을 형성하게 되고, 결국은 그가 필요하다고 느껴 다시 가해자의 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도 언급했다. 도니가 대런에게 스스로 다시 찾아가는 장면을 통해 범죄 이후 제대로 된 대처와 치료가 아닌 방치의 끝은 ‘학대의 순환’이라는 것을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경고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첫댓글 이거 재밌어 실화바탕인게 소름..
이런거 진짜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면서도 느껴ㅠ이상하게 사람에게 집착하는 도라이들 진짜 많아
이거 철학적임..
범죄스토리 좋아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엄청 무겁고 생각할 거 많아지는 드라마였어 재밌으면서도 남주 답답하단 생각 들었는데 그러니까 실화지 싶고 진짜 가감없이 날것 그대로 보여준 거 같아서 기분 묘했어
본문에 비틀어진 애착 진짜 맞는 말... 아니 거길 왜 가!!! 싶었는데 사실은 우리도 가끔 toxic한 관계 못끊어내니까...
보면서나도같이미칠거같은기분 오짐..
헐 이거 실화라며... 그럼 저 남주는 본인 성착취 내용을 다 가감없이 드러낸건가...? 대단하다ㅠㅠ 아니면 결말정도는 비튼거길..
근데 궁금한게 스토킹 얘기라고만 들어서 실제인물 여자분 조리돌림 당한단거 들었는데 그럼 저 성착취하는 남자남은?ㅡㅡ
마지막까지 봤는데 묘하게 힐링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