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시즌 신인왕 타이틀은 쌍둥이의 집안싸움이었다. 중반에는 서용빈 유지현 김재현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가 막판에는 유지현 김재현으로 압축됐다. 90년 김동수 이후 4년만의 신인왕 배출이었고 전신 MBC를 포함하면 4번째 신인왕이 탄생한 것.
신인왕후보로는 이들 3명외에도 투수 인현배와 13승을 거둔 태평양의 최상덕, 18살의 고졸투수 롯데 주형광(11승)이 올랐다. 그러나 다른 팀 선수들은 LG 야수 3총사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LG구단과 코칭스태프는 생애 단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신인왕 경쟁이 집안싸움으로 압축되면서 혹시 태평양 최상덕에게 어부지리가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가진 게 사실이었다.
이들 LG 신인왕 후보들의 활약은 올시즌 잠실구장을 뜨겁게 달군 절대적 요소였다. 19살의 김재현, 23세의 서용빈 유지현등 소위 X세대스타들은 지역구인 잠실을 발판으로 전국을 휘젓고 다녔다. 사직, 대구, 광주, 전주에서도 X세대 스타들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지난해까지 가장 많은 여성팬을 확보했던 김동수는 졸지에 신인 4인방에게 밀려 인기차트 5위로 주저앉았다.
전반기만을 놓고 신인왕을 뽑으면 단연 서용빈이 주인공이었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주전1루수로 떠오른데다 타격의 기복이 전혀 없었다. 80게임을 치른 전반기에 타율 0. 362(3위)를 마크하면서 해태 이종범과 함께 벌써 1백안타(115개)를 넘기고 있었다. 거칠게 없는 질주였다. 동정표가 나올 소지도 많았다.
서용빈이 반환점을 1위로 돌 때 김재현과 유지현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뒤를 쫓는 주자들이었다. 김재현은 비록 서용빈에게 뒤처져 있었지만 전반기 성적이 후반기 대약진을 예고하고 있었다. 공격 전부문이 10걸안에 랭크됐던 것. 야구천재 이종범을 제외하곤 그런 고른 활약을 보인 선수는 19살의 김재현이 유일했다. 홈런 장타율 5위, 최다안타 타점 6위, 타율 출루율 도루가 7위였다.
서용빈은 홈런과 도루가 10걸 안에서 빠져 있었고 톱타자 유지현은 장타율과 타점, 홈런이 랭킹에서 빠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김재현의 타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전반기만 놓고 보면 분명 서용빈이 우세했다.
투수 인현배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행운을 몰고 다닌 그는 전반기에 9승1패를 기록, 주목을 받았다. 이때까지의 성적이면 신인왕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인현배는 2차지명 1순위로 뽑혀 LG 유니폼을 입은 선수. 군문제가 걸려있어 계약금은 4천5백만원에 불과했다. 서용빈과는 선린중―선린상고―단국대학교를 함께 거친 11년지기.
대학4년간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명 당시의 이름값은 쌍방울이 뽑은 김민국이나 유현승, 태평양 곽병찬보다 한수 아래였다. 그러나 인현배의 대학경기를 지켜본 이광환감독은 투구폼이 부드럽고 컨트롤이 좋은 점을 높이 사 2차지명 1순위로 지명해줄 것을 구단에 요구했다.
인현배 스카우트는 단연 성공작이었다. 그는 선발요원으로서 일각을 맡아 팀이 선두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시즌초 선발로 내정됐다가 부진한 김기범의 공백을 인현배가 거뜬히 메운 것이었다.
그러나 신인의 한계가 후반기에 드러났다. 전반기 9승1패 방어율 2. 64. 후반기 1승4패 방어율 6. 80. 팀내에서 유일하게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 선수다.
체력이 약한 인현배가 장기 페넌트레이스에서 얻은 교훈은 ‘요행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반기에는 특유의 슬로커브와 변화구 컨트롤이 좋았지만 후반기에는 구질의 특성이 알몸을 드러내면서 난타당했다.
후반기들어 인현배가 신인왕 경쟁에서 가장 먼저 손을 털고 일어섰고 서용빈도 반환점을 돌고난 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유의 부채꼴타격이 사라졌다. 타율은 영하의 수은주처럼 뚝뚝 떨어졌다. 본인은 잠시 오는 슬럼프라고 강변했지만 전반기 타격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강력한 후보 서용빈이 처지는 사이 유지현과 김재현이 뛰쳐나갔다. 유지현은 시즌 내내 굴곡이 없었다. 수비부담이 많은 유격수라는 포지션과 톱타자 역할 때문에 코칭스태프는 유지현의 체력저하를 걱정했다. 유지현은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종횡무진 활약했다. 구단의 연봉고과평점에서 유지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팀내 MVP였다.
김재현은 팬들의 뇌리에 강인하다는 이미지를 심어놓는데 성공했다. 바로 홈런이었다. 체구는 그다지 크지 않으면서도 홈런은 터졌다 하면 대형이었다. 구장이 넓은 잠실, 사직, 수원 스탠드에 꽂는 홈런은 보는 이들의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홈런이 공격의 꽃이라는 말을 실감시켰다. “홈런왕은 캐딜락을 몰고 수위타자는 포드를 끈다”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듯했다.
8월 중순에는 유지현과 김재현이 시소를 벌였고 태평양 최상덕도 10승을 넘어서면서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태평양 구단에서는 최상덕도 15승을 거두면 신인왕 향방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8월20일. 김재현이 잠실구장에서 한화 이상목으로부터 시즌 첫 만루홈런을 빼앗아 19호홈런을 기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도루를 이미 21개를 쌓아두었던 터라 20―20클럽(홈런―도루) 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신인왕을 결정짓는 무게의 추는 김재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나이가 팀내 라이벌들보다 4살이나 어린 점, 신인 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한다는 점 등이 선배들보다 득표에 유리한 점이었다. 타율도 3할을 유지했고 호쾌한 홈런은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서용빈이나 유지현도 동생 뻘되는 김재현의 기세에 눌리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3파전을 지켜보며 어느 특정인을 지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던 이광환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김재현이 막판 스퍼트를 올리자 오히려 홀가분했다.
신인왕 경쟁은 골인지점을 앞두고 또다시 선두주자의 얼굴이 바뀌었다. 유지현은 꾸준히 페이스를 지킨 반면 20―20 초읽기 들어간 김재현은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홈런을 노리다 보니 스윙이 커졌고 상대투수들은 김재현의 약점을 파악, 바깥쪽 볼로 농락했다. 정신적 압박은 타격슬럼프로 이어졌다. 야구 문외한이 봐도 당장 알아낼 수 있었다. 구단은 8월20일 경기이후 덕아웃에다 20―20을 축하하려는 꽃다발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게 어린 김재현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꼴이 됐다.
8월23~25일까지 전주서 쌍방울과 3연전이 예정돼 있었다. 김재현에게는 20―20 외에도 또하나의 기록이 걸려 있었다. 전구장홈런이었다. 이때까지 김재현은 대전 인천의 보조구장인 청주와 수원에서도 아치를 그린 바 있어 전주에서만 홈런을 뽑으면 홈런내용이 완벽했다.
김재현으로서도 구장규모가 작은 전주에서 홈런을 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였다. 그러나 뜻대로 될리가 없었다. 어깨에 힘이 잔뜩들어가자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가 비로 연기돼 8타석에서 희생플라이로 타점 하나를 건진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안타도 없었다. 결국 전주구장 홈런은 다음해로 넘기게 됐다. 김재현이 만루홈런이후 얼마나 타격슬럼프에 빠졌는지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19호홈런이후 2안타 이상을 몰아친 경기가 전무했다. 타순은 2, 3, 6, 7번으로 오락가락. 20홈런이 터지기 전까지 46타수 7안타(0. 152)였고 타점은 겨우 3개를 보탰다.
그렇게 ‘사경’을 헤매던 김재현은 9월7일 잠실서 고졸입단 동기 이호준(해태)에게서 가까스로 홈런을 뽑아 20―20클럽에 가입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진기록을 작성하기까지는 너무나 희생이 컸다.
김재현의 타율이 0. 313에서 0. 295로 떨어지는 사이 유지현은 자신의 페이스를 고스란히 유지했다. 9월7일 현재 0. 311이던 타율이 0. 313으로 약간 점프했다. 그러면서 유지현은 톱타자의 척도인 득점에서 남들에 월등 앞섰다. 홈런도 15개나 쳐 장타력도 만만치 않음을 과시했다. 잠실서만 11개.
이감독은 9월9일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은 후 김재현에게 타점부문 경쟁을 돕느라 4번타자로 타순을 옮겨주었다. 이감독이 올시즌 LG 선수들에게 타이틀경쟁을 위해 노골적으로 배려한 것은 이것 뿐이었다. 그러나 유지현의 눈치를 봐야 할 수밖에.
9월30일 KBO에서 실시된 신인왕 투표에서 매우 근접한 접전을 벌인 끝에 영광은 유지현에게 돌아갔다. 코칭스태프나 구단은 시즌내내 LG의 이름을 드높이고 팀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이끈 이들 모두에게 신인왕 왕관을 씌워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인왕 수상의 영광이 한사람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야속할 정도로 LG 신인들의 활약은 너무나 눈부셨다.
첫댓글 94년 정말 대단했었죠..^^
신인3총사가..모이니..두려울게..없었던..한해였죠..꼭 영화 '친구' 처럼..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