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던지기
김 상 립
싱그러운 연(蓮)으로 가득 찬 제법 큰 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나무 다리를 건너고 있었을 때, 저만치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놀라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자세히 보니 다리 위에 중년쯤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모여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동전을 연 잎에 올린 사람에게 단단히 한 턱 쏘기로 했는지 열기가 대단했다. 차례로 나서서 신중한 자세로 던져보지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드디어 동전 한 개가 연 잎에 올라 앉았나 보다. 일제히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터졌다. 그는 마치 큰 일이나 해낸 듯 두 손을 번쩍 치켜들어 만세를 불렀고, 곧장 그를 에워싸고 웃고 떠들며 자리를 떠났다. 뒤따라 내가 그 연 잎 가까이로 조심스레 다가 갔을 때, 바람 한 점 없었는데도 잎이 옆으로 슬쩍 기울더니 동전을 그만 흙탕물에 빠뜨리고 만다. 그만한 크기의 연 잎이라면 동전 몇 개도 올려놓고 거뜬히 버틸 수 있으련만 한사코 몸을 비틀어 내다버린다.
내가 젊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나 관광지. 공원주위에 흔하게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물 속에 놓여있는 자연석이나 시멘트 설치 물들은, 누구라도 동전을 던지면 딱 좋을 그런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길 겨냥하고 동전을 던졌던지 가는 곳마다 그릇 주변은 어지러울 정도로 돈이 흩어져 있었다. 아마 여럿이 모여 각자 무슨 소원을 빌었거나 다가올 운을 점쳤든지, 아니면 오늘처럼 끼리 끼리 모여 내기라도 했을 터이다. 나도 한창때 직원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런 흥미로운 장소를 만나면 자주 동전을 던졌다. 곁에서‘왜 그렇게 던지기에 집중하냐’고 물으면‘재미로 그런다’고 웃으며 말 했지만, 숨겨진 나의 속내는 그런 게 아니었다. 만약 내가 목표로 삼았던 곳에 동전이 정확하게 떨어지면, 생각지도 않았던 행운이 올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또 복잡하게 엉킨 일이라도 있을 때면 속 시원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어떤 비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심지어 나는 로마에 가서도 다시 오게 해달라는 염원을 실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몇 개씩이나 던져 넣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여태껏 동전을 던지며 기원했던 많은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어려웠던 문제의 해결은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차분히 다시 시작했을 때 서서히 풀리곤 했다. 생각해보면, 지난날 내가 살아 온 삶이 마치 물 속에 동전을 던지며 은근히 요행을 바랐던 헛된 몸짓은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다. 또 예상외로 잘 안 풀리는 일은 남 핑계나 재수로 돌리고, 목표이상으로 잘 되면 순전히 나의 능력 때문이라고 혼자 억지를 써가며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할까, 내가 청년시절 도저히 이해 못할 이유로 실패의 쓴 잔을 몇 번이나 들었던 탓에 나는 중년을 지나면서 내 인생사전에서 아예 공짜와 요행이란 단어를 빼버렸다. 그 후 나는 어떤 모임에 가서도 보물찾기나 행운 권 추첨 같은 자리는 슬쩍 피해버렸고, 가까운 지인끼리 벌이는 화투 판이나 포커, 기타 내기를 하는 데는 무조건 끼지 않았다. 누가 무엇이건 공짜로 주는 것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 사심 없이 도와준다 해도 내 마음이 찜찜하면 한사코 도움을 받기를 거절했다. 한 번은 아내가 간밤에 좋은 돼지꿈을 꿨다며 꼭 복권을 사야 한다고 계속 졸라도 꿈쩍도 안 하자, 온 식구들을 다 동원하여 구입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건만 아내는 아직도 잊지 않고 나를 별난 사람으로 취급한다.
사실을 말하면 삶에는 순수한 공짜도 없고, 앞뒤 안 따지고 찾아와주는 요행도 없다. 여태 자기가 살아 온 발자취만큼만 열매가 주어지는 게다. 평생을 떵떵거리며 잘 지내던 사람도 말년에 비운에 빠져 비참한 꼴을 보이기도 하고, 내내 빌빌거리던 사람이 어느 날 아침 쨍 하고 해 뜨는 날을 맞아 어깨를 쭉 펴기도 한다. 인생 전부를 두고 볼 때, 지난날 어떤 부귀를 누렸느냐 보다는 얼마나 오래 앓다가 죽느냐가 더 심각하게 당사자에게 와 닿는 희한한 세상이다. 100세 인생이 가져다 준 쓰디쓴 선물이다.
사람이 미래에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산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냥 하루하루 마음을 다해 살아보는 게다. 그래, 바로 지금 하는 행위에 더욱 집중하자. 어떤 일을 시작하며 결과를 먼저 기대한다든지, 바라는 게 너무 많으면 될 일도 안 풀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나도 기회만 온다면 다시 동전을 던져볼 심산이다. 생각하기 따라 동전던지기도 순간적인 재미와 위안이 제법 쏠쏠하다. 괜한 걱정에 다가온 즐거움 앞에서 굳이 마음을 닫고 망설일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소소한 일상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첫댓글
저 역시 세상에는 공짜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 흔한 바겐세일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 선생님께서 동전 던지러 가신다면 저도 따라가 볼랍니다.
소소한 즐거움앞에서까지 굳이 마음을 닫고 망설일 필요는 없으리라 보니까요.
건강하세요.
그래요. 내가 좀 나아져
바같 나들이 가게되면
그래 봅시다.
마음을 내려 놓으면 내려
놓은 만큼 즐거움이 따는다는 것을...너무 뒤에사
실감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