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일치] 한반도 평화의 길 / 이원영
발행일2018-12-02
[제3122호, 22면]
지난 11월 22일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남북한 군사도로 연결 작업이 있었다. 남북한 간에는 2007년 경의선과 동해선을 연결하고 시험 운행한 바 있다. 동해선의 경우 시험 운행 이후 운행되지 않았지만, 경의선은 10·4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문산에서 봉동 구간까지 화물열차를 정례적으로 운행하기로 합의했으며, 제한적으로 운행됐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군사도로의 연결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처음 진행된 일이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 이후 전면적으로 남북한 간의 교류 협력이 중단된 이후 군사도로가 연결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필수적 전제가 될 군사적 협력에 대한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군사도로 연결과 더불어 추진되고 있는 남북의 철도 연결에 대한 공동 조사 사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제 남북의 철도와 도로가 완전히 연결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새롭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길은 사람과 물자를 운송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교류 협력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 문화적 소통이 이뤄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먼 옛날 그토록 멀었던 동서양의 교류가 가능하게 됐던 것도 바로 길을 통해서였다. 기원전이었던 전한(前漢) 시절 장장 6400㎞에 달하는 ‘비단길’을 통해 중국은 서역이라고 불렸던 중앙아시아와 서구 세계와 연결됐다.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거란, 몽골족등 북방 유목민족들은 만리장성 북쪽의 ‘초원길’을 통해 정복과 교역을 진행했다. ‘비단길’과 ‘초원길’을 통해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됐던 것이다. 고구려 시대 고분인 각저총의 씨름하는 벽화에 서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거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지역의 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하는 것도 이 길을 통해서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소설가 루신(魯汛)은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라고 했다.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해 38도선을 넘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나,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길이 없었던 때에 먼저 한반도 평화를 향해 걸어간 사람들이었다. 이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평화를 향해 걸어간다면 곧 한반도 평화의 길이 생길 것이다.
11월 22일에 비무장지대 내에서 연결된 군사도로는 남한 쪽 도로 기준으로 길이 1.7㎞, 최대폭 12m의 아주 작은 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욥 8,7)이라는 말씀과 같이, 이 작은 길이 동서양을 교류할 수 있게 했던 ‘비단길’과 ‘초원길’처럼, 먼 옛날의 동서양보다 더 멀어진 남북한이 교류, 협력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길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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