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3일 연중 제3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였다(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한다.
▦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며 하느님의 말씀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한마음 한 몸이 되어, 해방과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행복한 매일이 되십시오.
나는 어려서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행복(幸福)이란 말이었습니다. 어려서 내 스스로 많이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없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초조해 하면서 그런 행복을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행복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다는 '오복'에 대해서 아주 골똘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하는 이 '오복'은 상서(尙書) 홍범(洪範)이 말한 데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그 뒤 다른 경전이나 문헌에도 인생에서 온갖 복을 갖추었다고 할 때 오복이란 말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행복한 삶을 말할 때 ‘오복을 갖추었다’는 말을 자주 해왔으며, 새로 집을 건축하고 상량(上梁)할 때 대들보에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쓰고 그 밑에 ‘응천상지삼광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備人間之五福)”이라고 쓰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입니다. 이 말은 <하늘의 세 가지 빛을 받아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라는 말로 여기에서 하늘의 세 가지 빛이란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빛을 말하지요. 곧 해와 달과 별빛인데 하늘에서 내리는 음양(陰陽)의 모든 빛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壽)란 장수하여 천수를 누리는 것을 말하고,
부(富)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강녕(康寧)이란 강(康)은 육체적 건강을 말하고 영(寧)은 정신적 건강을 말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좋아하는 일상적 태도로서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남을 도우는 것을 좋아하며, 건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고종명(考終命)이란 일생을 깨끗하고 덕을 좋아하며 가진 바를 나누며, 주변에 많이 베풀어 주고 너무 오래 살지 않고 건강하게 적당히 살아서 죽을 때에는 아주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통속편에 나오는 오복은 다르게 보기도 하는 데 '이'[치아 : 齒牙]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는 오복에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속편(通俗編)》에 나오는 오복은 상서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데 곧 수 ·부 ·귀 ·강녕 ·자손중다(子孫衆多)로 되어 있어 두 가지가 다른데, 서민층이 바라는 오복은 오히려 이 통속편의 오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덕을 베푼다는 유호덕보다는 귀(貴)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귀한 사람은 결국 인덕이 높은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천수(天壽)대로 사는 고종명보다는 자손을 많이 두는 것 “자손중다(子孫衆多)”를 더욱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세 가지 빛이 음양으로 내리면 이에 응답해서 땅에서는 오행으로 이에 응답하여 오복으로 내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들보에 상량문으로 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오복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수명도 적당히 살기를 바라고 욕되게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는 말이 있지요. <장수(長壽)하면 욕(辱)이 많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오복을 지향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오복을 무척 탐내면서 어쩌면 그렇게 살 수 있을지를 항상 마음 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교리를 공부하면서 복음을 말씀하시는 주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사람들에게 해방을 ,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시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신다는 것이 바로 환상의 오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천주 성삼위의 그 빛을 받아 행복한 축복을 가득히 받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해방이며, 눈을 다시 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죄에서 해방되며, 억압에서 해방되며,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듣는 것이 복음(福音)이라는 데에서 정말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말씀이 “너는 오복을 받게 되었구나.” 라는 말로 알아들었기에 지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받았으니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임종 직전에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하신 말씀이 모든 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오복을 누리지 못했어도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또 우리는 행복한 매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축일1월 23일 성 클레멘스 (Clement)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 지역 : 안키라(Ancyra)
활동 연도 : +309년경
같은 이름 :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성 클레멘스(Clemens)는 자원하여 어린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에 헌신하였고, 불과 20세의 나이로 갈라티아(Galatia, 오늘날의 터키 중앙 내륙 고지대) 지방 안키라(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의 주교로 활약하였으나 즉시 체포되어 무수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아가탄젤루스(Agathangelus)는 성 클레멘스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된 개종자인데, 부제품을 받고 성 클레멘스 주교를 돕다가 스승과 함께 순교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클레멘스 (Clemen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