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도 모르는 좌파들이 어이없는 선동을 하면서 선거판에서 흑색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 좀해서 대적합시다.
이하는 공부를 위하여 퍼왔습니다.
1. 김지태라는 친일파가 있음.
-1908년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도 친일파였으며 그 자신도 일본 유학 후
1927년 일제 동양척식회사에 들어가 농민들의 땅을 수탈하고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울산에 2만평의 땅을 불하받음.
-이걸 기반으로 일본 군대에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공장을 차려 거대한 부를 축적함.
-1934년 부산진직물공장, 1935 조선지기회사, 1943 조선주철공업회사 등
일본군에 납품하는 군수업체를 운영하며 부산경남지역 제일의 부자로 등극함.
- 해방후 1950년대 이 부를 기반으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등을 인수함.
2. 1961년 6.25후 극심한 좌우대립속에 육군소장 박정희가 군사정변 일으킴
- 혁명공약으로 부정축재처리법을 제정하여 친일파들을 처벌하고 재산 몰수키로함.
- 김지태 구속, 징역 7년 선고. 이때 재산반환각서를 쓴 부정축재자들은 풀어줌. 김지태도 그중 1인.
- 환수한 부정축재금으로 12개 공장 건설, 국가 기간산업 건설
- 이때 김지태 개인소유의 부일장학회를 국가가 헌납받아 정수장학회의 전신을 만듦.
- 후일 이를 국가소유의 재단법인화하였고, 재단 재산의 84%는 박정희 자신, 이병철,
재미교포 등 수많은 국민들의 기부금으로 조성되었으며 김지태 헌납분은
15%에 불과해 완전히 다른 장학재단으로 탈바꿈함.
3. 노무현이 정권을 잡자 김지태 후손들이 김지태 재산기부는 강압에 의한
것이므로 땅과 정수장학회를 돌려달라고 주장
- 정수장학회를 정치적 이슈로 만든 장본인은 노무현인데
노무현은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닌 덕에 '김지태 덕에 내가 있다'고 밝히며 김지태와의 친분을 강조.
- 1982년 김지태 사망시, 김지태 유속의 상속세 소송을 담당한 변호사가 바로 노무현이었음.
- 이때 부산의 유명한 조세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며 큰 돈을 벌게 된 노무현은
상속세 100억대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김지태의 유족과 계속 인연을 쌓음.
(80년대초반 100억대 소송은 현재 가치 5000억대에 가까움)
- 노무현이 정권을 잡자 노무현과 좌파세력은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정수장학회를 국가가 강탈한 것처럼 호도함.
- 이러한 사실들에 선동되어 마치 박정희가 선량한 국민의 재산을 강탈한 것처럼
조작된 역사에 수많은 국민들이 '광우병'때처럼 선동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태.
제발, 역사를 모르면 함부로 떠들지좀 말자.. 광우병때 피켓들고 길거리
헤매던 불쌍한 인간들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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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박근혜 후보 캠프와 우리들이 해야겠죠.
김지태는 친일파였다.
동척에서 불하 받은 땅으로 일본에 군수 물자를 공급하는 군수회사를 세워 엄청남 부를 축척했다.
정수장학회의 김재태 재산은 15%에 불과 했다.
정수장학회 100% 돌려 달라는 유족은 도독놈이다
첫댓글 그런데 김지태의 얘비하고 할애비 그리고 부자였다는 김지태 처갓쪽 자료는 전혀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이완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것 같은데... 김지태 그 사람 박정희 시절 수출공로상도 받고 한것으로 보아서 정부로부터 엄청 많은 특혜를 보았을 듯합니다. 하여튼 이 장학회건에 불지피고 있는 문재인이 이건으로 쫄딱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 1908년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하여 설립한 특수국책회사.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 된 후 우리나라 산업자본의 조장(助長)과 개발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국의회(帝國議會)에서 회사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고 서울(京城)에 본점을 두어 1천만 원의 자금으로 회사의 발족을 보게 하였다.
여기서 근무하던 김지태는 적산재산을 불법으로 쓸어모아 농민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연유와 근원을 확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뇌무현이 정말 암적 존재구만
선량한 사람들 선동하는데 이골이 난 인간, 부엉이 바위는 그래서 준비됬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