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자유게시판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어서 여기 올립니다.
저는 부산 출신이고, 2008년 초 벤쿠버로 오기 전에, 서울 여행을 잠시 했습니다.
출장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이유로는 그 후 처음으로 저번주에 서울을 방문했는데
많이 변했더군요.
서울만 잘 구경해도, 유럽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삼청동을 지나 북촌 한옥마을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버스커들을 만났습니다.
한 남성분이 노라존스의 don't know why를 부르는데,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도 감명 깊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직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듯 했지만, 그래도 "원곡보다 좋아요!!!" 하고 큰 소리로 외쳤고
그분도 가슴 뭉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공연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는데,
이렇게 엄청난 것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의 야경을 보러 가려던 길에 발걸음을 사로잡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깊은 감성과 자연스러운 영어 발음, 범상치 않은 옷차림
아델의 someone like you를 많이 들었지만, 어쩌면 후배들이 카피한 걸 더 많이 들었을 수도...
이 노래가 바로 그 노래였다는 걸 깨달은 것은 클라이막스에 가서야 였습니다.
원곡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본인을 노래한 것이겠지요.
혼신을 다한 열창에 숙연해질 무렵
적어도 재미교포일 것이라고 생각한 그 분이 유창한 한국어로 감사의 인사를 하시고
곧바로 이어서 샹송을 부르십니다.
프랑스어는 전혀 못하는 제가 듣기에도 ㅋ 막힘이 없는 발음으로요.
샹송이 멋있어서 몇 번 따라해 보았지만, 한국인이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완벽하게 제 것으로 소화하십니다.
깊은 정서에도, 주체할 수 없는 흥이 느껴져서
뛰쳐나가 춤을 추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 눈 버릴까봐 참고 있는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어여쁜 아가씨 세명이 연달아 즉석에서 춤판을 벌입니다.
무용과 학생들 이라고 하더군요.
노래에 심취한 여자분은, 이 환상의 콜라보가 끝날 때 즈음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습니다.
모두의 요청으로 환상의 콜라보 앵콜 공연이 펼쳐집니다.
목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 여성분은 (그럼 좋을 땐 어떻다는 거?)
마지막으로 몇 곡을, 역시 혼신을 다 해 부릅니다.
저는 깔 것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감상합니다.
그 유명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을
일어서서 열창하는 것으로 공연은 끝이 납니다.
https://youtu.be/fnwj9D2vYPw
https://youtu.be/wAi3WT1Bfrw
에필로그
가진 돈이 십만원이든 백만원이든 다 털어넣고 싶었지만,
마침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사동에서 산 양말 두 켤레를 드렸더니
이렇게 귀한 걸 받아도 되냐며 좋아하셨습니다.
명함만 받아서 가려고 했는데, 시간있으면 차 한잔 하자며 저를 부르십니다.
감정의 교류는 저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원래는 일평생을 미술에 바치신 분이시랍니다.
염료 공예로 자기 분야에서 인정 받고 있을 때
독한 염료 때문에 호흡기가 안 좋아진 것인지 심각한 천식을 앓게 되셨다고 합니다.
천식하면 흔히 떠올리는 헐떡거리면서 스프레이를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몇 시간 동안이나 숨을 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눈 앞에 있는데, 죽는것 보다 더 괴로워서, 차라리 죽기를 신께 청하는...
그런 상황에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힘겨운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힘겹게 눈을 뜨고
유투브에 올라온 가수들의 노래하는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까 공연이 끝나고 어떤 아주머니가 non je ne regrette rien 을 어떻게 그렇게 잘 부르냐고 묻는 질문에
천번을 연습했다고 대답하시는 걸 듣는데,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non je ne regrette rien 을 잘 부르고 싶었지만, 한 3번정도 따라해 보고, 단념했거든요.
저도 만약 천번을 따라했다면 저렇게 내 것으로 소화해서 부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깨달은 건데,
천번을 하면 된다는 것은, 사실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동이 트는 것을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라비앙로즈에서 에디트 프아프가 non je ne regrette rien 을 부르는 것을 보고, 저는 고작 몇 번 따라하다 말았지만
이 분 처럼 노래할 수 있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따라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렇게 할 겁니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분은 영어도 프랑스어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영어 발음에 민감한 제가 들으면서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허허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투브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알게된 건데,
알고보니, 유명인사셨습니다.
코리아 갓 탤런트 2, 아시아 갓 탤런트 2015에 출연하신 한복희 님 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고,
무대가 없어, 길에서 노래하시는 한복희 님
하지만 유명 전통 찻집에서 비싼 대추차를 제 것까지 계산하실 만큼 마음이 넉넉하신 분
존경합니다.
제목처럼 제 생애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꼭 보셔서 감동과 위안을 받아가세요.
한복희 님께도 작은 힘이나마 실어드리기 위해,
유투브 동영상 두개 다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저의 얕은 수보다,
여러분의 진심이 더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유투브에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하늘기차님
신합니다.
한 행사가 있어
제가 이 글을 이 새벽에 만난 사실이 참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마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하늘기차님처럼 어떤 제스쳐를 취했을거예요.
어제 저는 교회에서
어떤 청년에게 싸인을 받았지요.
사실 이름 세글자
유명해질거라
글쎄 싸인을 자지고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싸인을 빨리 만들라고 조언했지요.
보스턴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청년인데 방학이라 잠시 귀국했어요.
교회에 특
특송을 했는데......
제가 맨 앞자리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들었지요.
초입에서 눈물이 주르르....
감동적인 노래였어요
한복희님을 잘 기억할게요
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폰으로는 댓글을 어떻게 쓰는지요
빠담빠담
제가 넬라판타지아를 100번 넘게 불렀는데...
그리고 You raise m up을 200번 정도...
1000번이라니
춤추는 여대생들이 나옵니다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이글 쓰신분도 글을 너무 감동적으로 잘쓰셔서 가슴이 뭉클하도록 글쓴이의 감동이 전해옴을 느낍니다...
영상을 보면서 한복희씨의 노래가 또한번 저의 마음을 애절하게 적시네요.
아름다운 춤을 춘 처녀들도 너무 감동적이구요.
유투브 올려 주셔서 정말 좋은 공연 구경 했습니다...그리고 영상도 펌했습니다.
로그인이 안되서 유투브에는 댓글을 못달았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