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갑작스러운 화는 버릇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불안이 넘쳐흐른 것일 수 있습니다."
Q.중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작년부터 손을 너무 자주 씻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을 전부 갈아입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해요. 잠들기 전에는 문이 잠겼는지 몇 번씩 확인하고, 저에게 "엄마, 진짜 잠갔지?"라고 같은 질문을 계속 합니다.
더 힘든 건 그다음이에요. 제가 "아까 확인했잖아, 이제 그만해"라고 하거나 손 씻는 걸 말리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문을 쾅 닫으며 폭발합니다. 원래는 순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화를 내고 나서는 "엄마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라며 울어요.
강박증에 분노조절장애까지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이의 행동을 받아 줘야 하는지, 막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A.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이가 보이는 반복적인 손 씻기와 확인 행동은 강박증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강박증은 원하지 않는 걱정이 자꾸 떠오르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상태예요. 그리고 강박증을 겪는 아이들에게 분노 폭발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소아 강박증 연구에서는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분노 폭발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고, 중국의 강박증 환자 9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열 명 중 세 명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분노 폭발을 겪었어요. 그러니 아이가 성격이 나빠졌거나 별개의 병이 하나 더 생겼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강박증과 함께 나타나는 어려움으로 이해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화가 날까요? 같은 연구에서 분노 폭발은 머릿속에 원치 않는 생각이 자꾸 맴도는 정도, 그리고 불안이 클수록 더 심했습니다. 아이에게 손 씻기와 확인은 불안을 겨우 붙잡아 두는 방법이에요. 그걸 갑자기 막으면 아이는 불안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 느끼고, 그 감정이 분노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특히 확인 행동은 아무리 반복해도 완전히 안심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함과 짜증이 쌓이기 쉽다고 해요.
또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강박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화를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속으로 꾹 눌러 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강박증을 겪는 사람들은 책임감이 지나치게 커서, 화가 나도 '내가 나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하며 참는 경우가 많아요. 순하던 아이가 참고 참다가 한 번에 터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분노가 우울한 기분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으니, 아이가 요즘 무기력하거나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지도 함께 살펴봐 주세요.
집에서는 아이가 화를 낼 때 그 순간에 맞서기보다 먼저 가라앉기를 기다려 주세요. 진정된 뒤에 "아까 많이 불안했구나", "확인 못 해서 무서웠지?"라고 화 밑에 있는 불안을 알아봐 주시면, 아이도 자기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화를 낸 것 자체를 크게 꾸짖기보다, 미안하다고 말한 아이의 마음을 받아 주세요.
받아 줘야 할지 막아야 할지 고민하셨는데, 이 부분은 조심스럽게 접근하셔야 합니다.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해 주거나 아이 대신 확인해 주는 것은 당장은 아이를 편하게 하지만, 길게 보면 강박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모두 끊으면 지금처럼 폭발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함께 계획을 세워 아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강박 행동에 하루 중 많은 시간이 들거나, 분노 폭발이 잦아지거나, 아이가 우울해 보인다면 꼭 상담을 받아 보시길 권해 드려요. 강박증은 인지행동치료 등 효과가 알려진 치료가 있어서,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분노는 어머님을 향한 미움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 터져 나온 모습이에요. 어머님이 그 불안을 함께 알아봐 주시면, 아이도 화 대신 마음을 말로 꺼내는 법을 배워 갈 수 있을 거예요.
"화를 멈추게 하는 것보다, 화 밑에 숨어 있는 불안을 먼저 알아봐 줄 때 아이의 마음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해결 방안 3가지
① 화가 터졌을 때는 혼내기보다 먼저 진정을 도와주세요
아이가 강박 행동을 방해받거나 불안이 커진 순간 화를 터뜨렸다면, 그 자리에서 다그치거나 논쟁하지 말아 주세요. 불안이 가장 큰 순간에는 어떤 말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지금 많이 불안하구나, 조금 진정되면 이야기하자"라고 말하고 아이가 숨을 고를 시간을 주세요. 화가 가라앉은 뒤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났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면, 아이의 화를 건드리는 계기를 알 수 있습니다.
② 화를 참기만 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려 주세요
강박증을 겪는 아이는 화가 나는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고 감정을 꾹 눌러 참곤 합니다. "화가 나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화난 생각을 한다고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아"라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답답해", "속상해"처럼 화를 말로 표현했을 때는 꼭 알아차리고 인정해 주세요. 참아온 감정을 조금씩 꺼낼 수 있어야 한꺼번에 터지는 일도 줄어듭니다.
③ 강박 행동에 대한 대응은 전문가와 함께 계획해 주세요
아이의 강박 행동을 계속 맞춰 주면 강박이 굳어질 수 있지만, 갑자기 못 하게 막으면 큰 분노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박 행동을 어떻게 줄여 나갈지는 치료자와 함께 단계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아이가 부쩍 처지거나 의욕이 없어 보인다면 우울감이 함께 있을 수 있으니, 화뿐 아니라 아이의 기분 변화도 함께 살펴 상담 시 꼭 공유해 주세요.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까지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잔소리만 할 것인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회성에 대해 20여 년간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온 이향숙 박사의 오랜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소개 中)
*참고문헌
Whiteside, S. P., & Abramowitz, J. S. (2004). Obsessive–compulsive symptoms and the expression of anger. Cognitive Therapy and Research, 28(2), 259–268.
Zhang, Y.-Y., Gong, H.-F., Zhang, X.-L., Liu, W.-J., Jin, H.-Y., Fang, F., Schneider, S., McIngvale, E., Zhang, C.-C., Goodman, W. K., Sun, X.-R., & Storch, E. A. (2019). Incidence and clinical correlates of anger attacks in Chinese patients with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Journal of Zhejiang University-SCIENCE B, 20(4), 363–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