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심사 (외 2편)
차도하
천국은 외국이다. 어쨌든 모국은 아니다. 모국은 우리나라도 한국도 아니다. 천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국할 때 모든 엄마를 버려야 한다. 모국을. 모국어를.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법을. 맘-마음-맘마를. 먹으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밥그릇을. 태어나고 길러진 모든 습관을.
살아가며 했던 모든 말이 적힌 책을 찢어 파쇄기에 넣는다. 나풀나풀 얇은 가루가 된 종이를 뭉쳐 날개를 만든다. 날개를 달면 거기 적혔던 모든 말을 잊어버린다. 날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사람들은 천사를 보았다 말하겠지만 천국의 주민들은 천사라는 단어를 모른다. 그것은 깃털의 일부가 되었을 따름이고 다른 단어와 같은 무게를 지녔다.
때로는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가진 게 없거나 이미 버리고 온 사람들. 울지 않는 아기. 비쩍 마른 노인.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 버릴 게 생기면 다시 오세요. 천국은 그들의 머리를 떼어 지상으로 힘껏 던진다.
비가 오려나. 어떤 사람이 물방울을 맞았다. 그날 비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물방울을 맞은 사람이 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이고 이 시도 파쇄기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쓸 것이다. 많이 쓸 것이다.
오늘의 구름은 양떼구름 외국에서는 물고기의 비늘이라고 부른다.
그래, 천국에서는 하늘과 초원과 바다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양과 물고기는 있다.
양몰이 개와 그물은 없다.
세련
이국적인 문양을 갖고 있는 접시를 잘 닦아서 유리장 안에 넣어놓듯이 시를 쓰세요 그녀의 시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방치된 공원의 쓰레기통 같은 오래된 병원에서 재사용하기 위해 주사기를 모아놓는 상자 같은 질염 찌꺼기가 가득한 보지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요즘 젖가슴이라는 말을 누가 쓰나요? 중년 남성이 쓴 시를 놓고 트위터 사람들이 욕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시에 젖가슴을 쓰기로 결심했다 모유가 나오지 않는 엄마의 젖가슴을 악착같이 빨던 그때처럼 아직도 자신의 젖가슴이 얼마만 한지 모르고 작은 브래지어를 입는 할머니처럼 부드러움이라곤 모르고 젖가슴을 마구 주물러대던 남자친구처럼 그녀의 시를 합평할 때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난감해 보였다 도발적이네요, 하지만 이게 꼭 필요한 표현일까요, 누구누구의 시를 읽어보셨나요, 그런 말이 오가다가 어떤 학생이 결심했다는 듯 이건 이미, 끝난 시예요 이렇게 말했을 때 유리장에 금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유리장 따윈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개근했다 사람들이 추천한 세련된 시집을 사서 읽어보았다 좋아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세련된 시집에는 빛이 너무 많이 나와서 눈이 멀 것 같았다
미래의 손 이 시에는 공원이 등장하지 않고, 시인이 등장하지 않으며,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에는 공터가 등장하고, 중학생이 등장하며, 등장할 수 없는 사랑이 등장한다.
중학생은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공원은 금연구역이기 때문에, 공터는 비어있는 터이기 때문에 공터, 그렇다면 중학생의 마음도 공터, 공터인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사랑할 것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중학생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떠올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는 아빠에게서 훔친 것. 아빠는 사랑할 수 없는 것. 가족이란 사랑할 수 없는 것. 친구도 애인도 사랑할 수 없는 것. 선생과 제자라면, 신과 신도라면 더더욱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을 떠나서. 그 모든 관계가 아닌 관계가 존재할 수 있는지 중학생이 생각하는 동안 담배는 필터까지 타들어 가고. 중학생이 고개를 조금 숙이고 담배와 연기를 바라보는 동안. 세상의 필터도 조금씩 타들어 가고, 세상의 모든 관계가 지워지고, 그리하여 모든 공간이 지워지고. 비어있는 곳 빼고 모든 것이 지워져서. 세상엔 공터만이 남았다. 공터에 덩그러니 혼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울거나.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만이 남아 세상은 한층 조용해졌고. 중학생이 문득 고요를 느끼고, 담배를 버리고 신발로 그것을 짓이기고 하늘을 바라볼 때, 하늘은 저녁에서 밤으로 색깔을 바꾸고.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원래란 뭐지?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중학생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되고. 중학생은 담배 냄새가 빠질 때까지 산책을 좀 하다가 집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담배 냄새는 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학생이 하는 질문은, 혼을 낼까? 혼을 내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체벌. 중학생의 마음을 공터로 만들게 한. 그러나 우선은 공터에서 빠져나와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중학생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다가 주머니 속에서 어떤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 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하지만 지금 이 시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중학생이 당신을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시집 『미래의 손』 2024.5.31. --------------------- 차도하 / 1999년 경북 영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재학 중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산문집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2021), 2023년 가을 타계한 뒤 시집 『미래의 손』(2024) 출간됨. |